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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여성, 자연 그리고 치유 Women, nature and healing
  • 비영리 CC BY-NC
ABSTRACT
여성, 자연 그리고 치유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omplex relations between women, nature and healing in Refuge: An Unnatural History of Family and Place written by Terry Tempest Williams, in light of healing effect of writing. Interestingly she gives the account of her mother’s struggles and eventual death to cancer and the parallel destruction of the Bear River Bird Refuge to the rising waters of the Great Salt Lake. In the process of dealing with pain and loss, she shifts from the observer to the passionate activist. With her loss and suffering, nature becomes refuge and offers hope of healing and more importantly, writing this book itself becomes the essential aspect in the process of embracing the changes in nature, her family, the female body, and her own identity. Through the storytelling of her past, saturated with healing effects of nature, she has rejected the masculine tradition which would encourage her silence and the obedience to religion and community. Refuge shows how nature can inform and heal a life but also the writing itself performs the healing effects, in spite of the dangers of the narcissistic rationalizaton of the self and of igniting another challenge.

KEYWORD
『안식처』 ,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 , 여성 , 자연 , 치유 , 이야기 , 글쓰기
  • I. 들어가며

    1983년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Terry Tempest Williams)는 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그 시점에 그레이트 솔트 호(Great Salt Lake)의 수위가 최고를 기록하면서, 그녀가 인생의 척도로까지 여기는 중부리도요, 올빼미와 같은 새들의 안식처(refuge)는 수몰 위기에 처한다. 상호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어머니의 유방암 선고와 안식처의 수몰이라는 두 가지 사건을 전경화시키면서, 그녀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죽음과 자신에게 위안과 평화를 안겨주던 안식처의 수몰로 인한 비극의 기억을 『안식처』(Refuge)에서 복원시킨다.1) 환경의 변화 속에서 위협받는 한 인간이 겪는 화해와 치유를 위한 뼈아픈 깨달음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상실을 경험한 여성의 슬픔과 극복의 과정으로서의 『안식처』는 여성과 자연, 정체성, 자전적 글쓰기 그리고 환경운동과 같은 주제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키면서 대표적인 자연기(自然記 Nature Writing)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다.2)

    『안식처』에 관한 연구는 정체성, 여성과 자연, 그리고 정치성의 관점에서 주로 이루어져왔다. 특히 칼라 암브루스터(Karla Armbruster)는 자서전적 주체와 글쓰기의 상관관계에 대해서(209-20), 브룩 리비 (Brooke Libby)는 자연과 정체성과의 관계에 대해서 살피면서 의인화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한다(251-64). 카산드라 커처(Cassandra Kircher)는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함으로써 생기는 문제점을 탐색하면서, 여성과 자연의 이분법적인 관계를 윌리엄스가 어떻게 전유하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158-71). 정치성의 관점에서 티나 리차드슨(Tina Richardson)은 『안식처』를 암환자의 정치적인 선언으로 파악하면서 그 선언의 의의를 분석하고(229-38), 칼 줄크(Karl Zuelke)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정치철학에 기대어 『안식처』의 정치성을 탐색한다(239-50). 이러한 일련의 연구들은 『안식처』의 전면에 부각되는 정체성과 여성성의 문제가 에코페미니즘적인 정치성의 문제와 결합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변주와 그 의의에 대해 명쾌하게 밝혀주고 있다.

    하지만 『안식처』에서 자연에 대한 이해, 글쓰기와 스토리텔링이 개인적 상처의 치유에서 사회적 치유로 전개된다는 점을 고려해보았을 때, 이러한 치유적 관점에 대해서는 연구가 미흡한 듯하다. 특히 그녀가 『안식처』의 부제인“가족과 장소의 부자연스러운 역사”(an unnatural history of family and place)를 종국에는 자연 속에서의 개인적 치유와 글쓰기를 통한 사회적 치유를 지향하는 갱생과 변화의 역사로 바꾸어 놓는다는 점에 있어서, 특히 그녀의 글쓰기와 스토리텔링은 개인적, 사회적 치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자서전적 글쓰기에서는 개인적인 상실감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고통과 상실의 이야기 속에 자신을 위치시킨 후,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객관화 시키면서 고통과 상실을 극복하려하는데(Allister 170), 그녀는 『안식처』라는 글을 통해, 실제로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경험을 언어로 부활시킴으로써 상처의 치유를 시도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다음의 일련의 문제들, 즉 그녀가 유타지역에 뿌리내리고 살아 온 작가로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특히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고통과 상실을 경험 하면서 어떤 변화를 겪으며, 그 변화와 자연과의 관계는 어떠하며, 그것이 시사 하는 점은 무엇인가? 내면적 고통과 불안을 이끌었던 사건들을 이해하고, 통제하게 되면서, 과거의 상처를 치유로 이끄는데, 『안식처』에서 드러나는 자서전적 글이 지닌 치유적인 기능은 무엇인가? 또한 사회적 병폐의 치유를 위한 그녀의 노력과 글쓰기와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답을 구하고자 한다.

    1)텍스트로는 Terry Tempest Williams의 Refuge: An Unnatural History of Family and Place (New York: Vintage Books, 1991)를 사용했으며, 모든 인용은 별도의 표기가 없는 한 괄호 안의 쪽수를 표시하는 것으로 대신함.  2)‘Nature Writing’은 국내에서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다. 신문수는 Nature Writing을 자연기(「미국의 자연기」『문학과 환경』2005년 4권, 7-35)로, 신두호는 자연문학(「자연문학의 에지효과와 생태비평적 방법론」『문학과 환경』2010년 9권, 145-171)으로 지칭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용어의 번역에 있어서 두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고, 보다 농밀한 용어에 대한 정의는 추후 과제로 남겨두면서, Nature Writing을 자연기(自然記)로 번역하고자 한다.

    II. 자연, 여성 그리고 치유

    『안식처』의 구성적인 측면과 내용적인 측면 모두에서 전경화되면서 작품전체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자연과 여성이다. 우선 그녀는 『안식처』 각 장의 제목으로 새의 이름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해발수면고도를 사용하는데, 첫째 장은 「굴파기 올빼미(해발 수면고도 4204.70)」, 두 번째 장은 「중부리도요(해발수면고도 4203,25)」로 제목 붙임으로서 『안식처』의 플롯을 이끌어가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새와 호수임을 외연화 시킨다. 이런 방식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H. D. Thoreau)가 『월든』(Walden)에서 「숲속 생활의 경제학」, 「독서」, 「고독」 등을 각 장의 제목으로 삼은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하나의 기교적 장치라기보다 는, 새들과 수위의 변화가 그녀 인생 여정의 구성적인 측면에서 핵심적인 척도 임을 부각시키는 장치다.

    이러한 자연중심적 구성과 함께 그녀는 자연과 자신의 경계마저도 희석화 시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전통적으로 여성을 자연과 동일시함으로써, 여성에게 수동적이며, 정적인 역할을 부여하여 여성과 자연을 고립시키는 전략과는 다르다. 그녀는 사막의 모래 언덕을 알몸으로 누운 여성의 등과 허리, 가슴, 엉덩이로 묘사하는데(109), 여성과 자연을 성적 대상화시켜, 여성의 권위와 힘을 박탈시킬 우려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커처가 『안식처』가 자연을 여성화하는 전통적인 태도와는 단절된 새로운 관계를 보여준다고 평한 것처럼(164), 여기서 자연의 여성화는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을 통해 잊혀져 왔던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치유의 힘을 복원하는 계기가 된다. 즉 자연의 여성화는 이러한 외형적인 요소와 함께 보다 내재적인 모습을 띠면서, 자연이 어떻게 희망과 치유의 장소가 되는지, 또한 그 치유가 어떻게 사회적 변화의 추동력이 되는 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권위와 힘은 인간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적 자연관에 의해 오랫동안 잊혀져왔던, 여성과 자연의 교감 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녀는 세상만물이 각자 정해진 영향권을 차지하며 존재의 위치와 목적을 갖는다고 믿는다(14). 이러한 교감을 그녀가 어릴적 솔트 레이크 호수에서 수영하면서 마치 자신의 영혼을 호수에 담근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면서 깨닫게 되는데, 특히 새들과의 관계에서이 교감은 매우 잘 드러난다(33). 마치 매일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거주지 근처 새들의 서식처를 찾아서 주위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새들의 이름을 크게 외치기도 한다(88). 이러한 외침과 교감에 대한 갈망 속에서, 그녀는 새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자신을 “날개를 단 여성”(I am a woman with wings 273), “새가 되기를 원하는 인간”(wanting to be a bird when I am human 266)으로 묘사하면서, “새들과 나는 자연의 역사를 공유”(The birds and I share a natural history 21)함을 깨닫게 된다. 자연과 작가 자신의 동일시는 서부 자서전 (Western autobiography)에서 드러나는 특징이기도 한데(Boardman and Woods 3), 이러한 동일시를 통해 그녀는 더 이상 인간의 우월적 지위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녀가 서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메리 올리버(Mary Oliver)의 「기러기」(‘Wild Geese’)에서 “당신의 보금자리를 선언합니다 / 만물의 가족 사이에서”(announcing your place / in the family of things ix)”라는 기러기의 외침처럼, 그녀는 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는 모든 구성물들과의 관계성을 겸허하게 인지하고 받아들인다.

    그녀의 이러한 인식형성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바로 여성들이다. 자연 속에서의 경험 자체는 강요된 것이 아니라,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들에 의해 서서히 키워진 것으로, 그녀는 할머니와 함께 물새 보호구역인 베어 강 철새 보호구역에서 새 관찰하는 법을 8 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하면서 자연과의 교감을 형성시켰다. 자연스럽게 철새보호구역은 철새에게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안식처”이면서 성스러운 곳으로 각인되어간다(15).

    정복의 대상이 아닌 배움의 터로 인식되는 자연 속에서, 그녀는 더 이상 자연에 대한 낭만적 투사가 아니라, 관찰과 교감을 통해, 새들이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터득한다. 예를 들어 흰물떼 새가 생존을 위해, 소금물에 몸을 적신 후 알이 있는 둥지로 돌아가 젖은 깃털을 세워 알 위로 물을 뿌려주는 모습 속에서 자신이 이 지형에서 어떻게 생존할 지에 대한 암시를 얻기도 한다(260).

    또한 그녀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사막은 그녀에게 겸손, 아름다움, 그리고 자아로의 탐색 기회도 제공한다.3)

    사막에서 삶의 간절함과 자연의 신성함을 읽어내고, 사막의 고독을 자아로의 탐색여정으로 파악하는 그녀에게 사막은 더 이상 척박하고 메마른 불모의 땅이 아니라 앞서 지적한 것처럼,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으로 가득찬 여성화된 대지이다. 그 아름다움에 겸손히 무릎꿇는 그녀의 모습은 많은 생태작가들, 예를 들면 카타딘(Katahdin) 산에서 소로 가, 야크 계곡(Yaak Valley)에서 릭 베스(Rick Bass)가, 눈표범(Snow Leopard)을 찾기 위해 올라간 수정산(Crystal Mountain)에서 피터 메티슨(Peter Matthiessen)이 아름다움과 숭고함 속에서 무릎꿇었던 것처럼, 그녀에게 사막은 숭고함은 아닐지라도 아름다움으로 인간의 자기중심 적인 자연관을 해체시킴으로써 자연의 일부분으로 자신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한다.4)

    이러한 가운데 그녀는 자연의 치유적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자연이 제공하는 무한한 자유 속에서 황홀경에 빠지면서 그녀는 자연이 제공하는 은총과 위안을 경험하게 된다. 그녀에게 있어서 자연 속에서 느끼는 자유는 사회적 규율처럼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규율과 야생성의 대비를 통한 자연의 근원적 모습과의 만남이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얻게되는 치유적 경험은 그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머니가 암으로 진단받았을 때에도, 어머니가 의학적인 치료를 받기 전에, 그리고 가족들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기 전에, 치유와 고독을 찾아 그랜드 캐니언으로 피정을 시작한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머니가 그랜드 캐니언으로 피정을 결정하게 된 것은 자신의 몸에 자리잡은 암세포를 적대시하고 몰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자기 자신과 암세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얻게된 평정심 속에서 암세포 는, 그녀 몸에 찾아온, 그녀가 지니고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순화시키고 길들이는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병마와 싸우고 있던 그녀에게 심리적인 위안과 치유를 제공한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그녀는 어머니와 자연, 그리고 자연의 치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성찰에 이른다.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원초적인 자연으로서의 어머니의 자궁에 대한 에코페미니즘적인 성찰은 사막으로의 칩거와 마찬가지로 현대문명이 홰손한 자연과의 일체감을 회복하고 치유의 주체로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해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여성적 부드러움과 위안을 그녀는 자연에서 그대로 느끼게 되는데, 만월은 어머니처럼 그녀를 감싸주며(189), 바람은 그녀의 얼굴을 만져준다(19). 또한 어머니의 임종 무렵, 어머니의 무릎에 자신의 머리를 얹고 눈을 감았을 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어머니의 손가락인지, 바람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은 어머니처럼, 그녀를 위로해준다(156). 즉 그녀는 첫 번째 자연으로서의 어머니의 자궁과 그 원초적인 자연의 영향력을 치유와 성장의 관점에서 인식하게 된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치유는 이처럼 여성성과 밀접한 관계성 속에서 이해되는데, 이런 밀접성은 자연과 여성, 특히 어머니와 동일시의 수준으로 전개된다.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고, 점점 그 증상이 악화되는 것과 병렬적으로, 호수의 수위는 점차 상승하여 안식처는 침수될 위기에 처한다. 어머니가 암으로 진단받았을 당시, 호수는 안식처를 거의 수몰 시키면서 최고 수위까지 도달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베어강의 새 안식처는 그녀 삶의 기준점과 같은 장소로, 수사적으로도 수위의 “상승”(rise 22)과 어머니의 좌측 복부의 “부어오른”(rise 22) 상태를 묘사할 때, 혹은 “어머니의 건강이 안정된다. 솔트 레이크 호수도 안정된다”(Mother's health seems to be stable. Great Salt Lake seems to be stable 108)와 같은 병렬적 문장구조와 동일한 용어의 반복적 사용은 어머니와 수위의 연관관계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구조를 통해서 그녀는 호수의 범람으로 헝클어진 호숫가를 걸으면서 호수 가운데 떠있는 “섬은 불안 속에 떠도는 어머니의 몸이다”(It is my mother’s body floating in uncertainty 64)라고 여긴다.

    자연을 통해 형성되고 교감을 이룬 어머니와의 유대감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자연을 통해 그녀에게도 전달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홀로 안식처를 방문했을 때 그녀가 흠모하고, 동경한 것들, 그리고 어머니의 숨결과 사랑, 온기 조차도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서 그대로 그녀에게 전해진다(214). 이러한 교감 속에서 그녀는 그녀가 사랑했던 것들을 앗아간 변화의 힘들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녀는 할머니와 함께 처음 굴파기 올빼미들을 발견한 장소를 방문하는데, 그 새들이 있던 자리에 이제는 “캐나다 기러기 사격클럽”과 “출입금지” 표지판만 남아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과 기억이 삭제된 것과 같은 상실감을 느낀다(11). 완전히 변화된 환경을 목격할 무렵 그녀는 자신이 의지하던 어머니의 죽음과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자연의 변화에 직면하게 되자, 이제까지 자신을 지탱해오던 것들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된다.

    3)메리 올리버의 시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여성작가들 사이의 상호텍스트성을 잘 보여준다. 메리 오스틴(Mary Austin)의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땅』 (The Land of Little Rain 1903)의 서문에서 그녀는 오스틴을 자매이자, 영혼의 파트너이며 그녀의 작품이 대지와의 직접적인 관계에 대한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고 고백하고 있다(Introduction X).  4)Henry David Thoreau의 The Maine Woods (Penguin: NY, 1988), Rick Bass의 The Book of Yaak (Houghton Mifflin Company: NY, 1996)와 Peter Matthiessen의 The Snow Leopard (Penguin: NY, 2008) 참조.

    III. 활동가

    어머니와 자연의 정체성,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의 밀접한 연관성에 대한 그녀의 각성은, 종국에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깨닫게 해준다. 안식처의 상실은 그녀의 기억과 근원의 상실이다. 자연을 자신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그녀에게, 어머니의 죽음과 수위의 상승에 따른 안식처의 수몰은 자연과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버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러한 위기감으로 그녀는 지금의 위기상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해 탐색하고, 어머니의 유방암과 호수범람이라는 사건의 부자연스런 연관성의 퍼즐을 서서히 풀게 된다.

    어머니의 유방암은 과거 핵실험에 노출됨으로써 발병된 것으로, 그녀는 어릴 적 가족과 함께 사막을 가로질러 여행 중, 한밤중 사막에서 섬광을 보았던 기억을 생생히 지니고 있다(283). 그 당시 핵실험에 반대하는 사람은 공산주의자로 치부되던 상황에서, 미국정부는 네바다 사막에서 핵실험을 감행했고, 바로 그 섬광은 핵실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매국노로 불릴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핵실험에 관한 공지를 무시했고, 결국 이러한 두려움과 무시는 개인과 자연에 막대한 위험을 초래했다. 바로 그 피해자가 그녀의 가족들과 사막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인 것이다. 원자력 위원회가 핵 실험이 행해진 지역을 “사실상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 지역”(virtually uninhabited desert terrain 287)으로 묘사했을 때, 그녀의 가족과 그레이트 솔트 호에 살고 있는 새들도 사실상 없는 존재로 여겨진 것이다.

    그녀는 핵실험의 치명적인 결과를 출산의 경험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출산시 신체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핵폭발의 장면은 새로운 생명의 출산이 아니라 사산아를 출산한 고통받는 대지의 모습, 그 자체와도 같다. 사산아의 출산을 연상시키는 핵실험의 대상이 된 자연의 고통받는 모습 은, 핵실험이 인간과 자연사이의 일체적 교감을 단절시키고 파괴하고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자연에 대한 파괴는 바로 인간 자체에 대한 파괴인 것이다. 자연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지만, 이 폭탄 들은 사산아를 상징하면서 인간이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그대로 전해준다.

    그녀는 피폭을 그대로 견뎌내야만 했던 사막처럼,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문화 속에 갇힌 여성들의 희생을 전경화시킨다.

    피폭된 집안 여성들의 투병과 죽음의 현장에서, 그녀들이 묵묵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죽음을 맞이하는 일련의 과정을 함께 하면서, 그녀는 자신 역시 비슷한 운명에 처할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침묵하고 있던 다른 집안 여성들과 달리 그녀는 핵실험이 상징하는, 자연에 가해진 폭력과 유린이 그대로 여성에 가해진 폭력과 유린에 진배없음을 인식하고 더 이상 이를 좌시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을 자연과 분리시키며, 삶의 자연스런 변화를 왜곡시키는 현 사회의 틀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서, 정신적인 지주로서, 또한 자연과의 관계를 통한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어머니는 그녀에게 “풍파를 일으키지 말라”(not to make waves 285)고 타이르며, “그냥 흘러가게 두렴 . . . 네가 너 자신의 느낌을 아는 것, 그게 중요한 거란다.”(Just let it go . . . you know how you feel that’s what counts 285)라고 충고한다. 어머니의 충고와 자신 내면의 목소리 사이에서 결국 그녀는 어머니의 충고를 따르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없게 된다.

    애국심, 신앙,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충고조차 거스를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어머니를 비롯한 여성들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자연을 위한 싸움은 여성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이러한 싸움을 위해서, 그녀는 자연을 약탈하는 문화적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여성들에게 맹종을 강요 하는 모르몬교의 가부장적인 체제는 “싸움, 전투, 적의 침투, 방어 전략”(the fight, the battle, enemy infiltration, and defense strategies 43)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 피폭에 의한 유방암을 치료하려는 의사들의 방식은 어머니가 암에대해 대처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정치인들이 수위 상승을 통제하려는 시도 역시, 자연스런 흐름에 역행한다. 그들의 계획 대로라면 호수물을 밖으로 펌프질 하고, 물의 흐름을 바꿔, 공항과 도로 등을 구해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호수에 인위적으로 물길을 열어 수위상승을 막는 데는 반대한다. 왜냐하면 수위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내려 갈 것이며 수위의 상승에 따라 안식처가 수몰되는 것은 안타깝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지질학적으로 밝히고 있다(30). 또한 안식처가 수몰의 위험에 처했을 때, 그 위협에 대응하지 못하는 새들의 부적응성 역시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부자연스러움의 이면에는 과거에 다른 안식처를 찾을 수 있었던 상황과는 달리, “고속도로나 계속 확장되고 있는 공항으로 밀려나가는 방법이 외에 새들은 다른 방법을 선택할 여지가 없다”(They don’t have those options today, as they find themselves flush against freeways and a rapidly expanding airport 112)는 사실이 강조되면서 안식처의 수몰이 상징하는 바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즉 인간중심적, 남성중심적 자연관과 이의 확산이 자연과 인간사이의 관계성을 약화시키고, 인간과 자연의 파국으로 치닫게 했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다.

    그녀의 저항은 『안식처』의 마지막 장 「가슴이 한쪽밖에 없는 여인 족」 (‘The Clan of One-Breasted Women’)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녀는 9명의 다른 여인들과 핵실험 통제구역에 불법 침입한다.

    핵실험 통제구역을 무단 침입하는 행위는 일종의 비폭력적 저항의 형태로 핵무기의 확산과 핵실험이 인간과 자연에게 미치는 파괴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시도이다. 은유적으로 미래의 생명을 상징 하는 듯 한 자궁 속의 나비를 지닌 그녀들의 춤은 자연과의 화해를 위한 춤이며, 투명한 가면을 쓴 것은 자연을 도구로만 여기는 인간중심주의의 탈을 덮기위한, 마치 앞서 언급된 「기러기」의 시구처럼, 만물가운데서 자신의 위치를 관계적으로 파악하려는 생태적 인간의 얼굴이다.

    IV. 치유의 글쓰기

    비폭력 저항가로서, 남성 중심적 자연관에 저항하는 그녀의 또 다른 무기는 장화 속에 감쳐둔 볼펜과 수첩이다(290).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에게 붙잡힌 그녀에게 있어서, 무기로 표현되는 볼펜과 수첩은 『안식처』와 같은 글쓰기와 이야기를 통한 자연과 자신과의 화해와 왜곡된 관계의 치유를 위한 도구이면서, 자연 속에서 자신의 자리 찾기의 도구가 된다. 그녀는 가계도를 다시 쓰는 여성으로(241),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두려움과 직면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녀 자신의 변화를 보듬어 안고서 치유, 평화, 그리고 안정을 되찾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그녀 만의 안식처를 찾게 된다.

    어머니, 할머니, 안식처 등 그녀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린 상황에서, 그녀는 더 이상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과거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상실의 아픔에 대한 글쓰기와 이야기를 통한 토로와 고백은 그녀로 하여금 다른 안식처로 인도한 것이다. 이러한 인도 속에서 사랑하는 것들을 복원하고, 지키려는 노력의 결실로서의 『안식처』의 집필 목적은 분명해진다.

    따라서 안식처는 외부에 존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장소를 초월한 내면적 힘의 집약체인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 세상으로 나감이라는 그녀의 인식은 『안식처』라는 글쓰기의 의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그녀는 자신이 처한 고통, 분노와 불안을 글로써 발산하면서 감정의 순화와 정서의 회복을 도모한다. 즉 자신의 상황과 문제에 대한 성찰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과 해방감을 경험하면서, 『안식처』를 통해 타인과 세계로 열린 소통을 하고자한다.

    치유와 세상으로의 나감의 결과물이 바로 『안식처』인 것이다. 그녀는 『안식처』를 집필함으로써 모르몬교 공동체와 가족으로부터 비판에 직면할 수 도 있다. 그녀는 핵폭탄의 제조와 실험행위는 그녀의 어머니, 할머니 등 집안 여성들의 목숨을 앗아 갔으며, 다른 수많은 여성들과 이름 모를 동식물들이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연관관계들을 폭로하고, 이를 멈추기 위한 노력을 경주한다. 가족과 종교가 지켜온 전통에 대해 도전하고, 모르몬 교회에서 허용되지 않는 여성들만의 축복 행위를 의도적으로 폭로하며(158), 아픈 상실의 기억까지도 되살려내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안식처』는 감정의 해소와 정서의 순화라는 극복으로서의 치유적 글쓰기와는 다른 식으로 전개된다.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개인적 감정의 순화에는 도달할 수는 있지만, 그녀에게 글쓰기를 통한 “이야 기”의 전파는 새로운 단계의 타자와 세계와의 소통의 시작이다. 이야기를 통한 치유는 그녀가 다른 책에서 “치유가 바로 우리 자신들, 지구와 야생과의 관계 속에서 시작되어야한다”(Red 71)고 주장한 것처럼, 자연 과의 관계성 회복이라는 전제아래서 가능한 것이며, 또다른 갈등과 모순에 대한 정면도전이며 종국에는 세상과의 화합과 안정을 지향한다.

    V. 나오며

    그녀는 『안식처』를 통해 가족과 장소의 부자연스러운 역사를 치유와 도전의 서사로 바꾸어 놓는다. 어머니의 유방암이 위중해지는 것과 수면이 높아져 안식처가 수몰되는 것을 병치시키면서 그녀는 자연과 인간 운명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또한 유방암의 원인을 추적하면 서, 그녀는 유방암과 과거 그 지역에서 실행된 핵실험과의 인과성을 발견하고, 유타지역 자연의 역사는 곧 그녀 가족의 역사이기도 함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어머니와 할머니의 자연관은 그녀에게 전수되었고, 이는 그녀가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녀가 깨닫게 된 것은 그녀가 속한 사회의 규율에 침묵과 순종하는 것이 결국은 그녀들의 죽음과 자연의 죽음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각성은 그녀로 하여금 남성주의적 전통을 거부하고 새로운 결단과 변화를 추구케 한다.

    깨달음, 변화 그리고 치유의 증언으로서의 『안식처』는 개인사와 자연사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서 어머니의 죽음, 자연, 그리고 자신 속한 사회의 관계를 외연화시킴으로서, 과거의 변형이나 왜곡이 아니라, 과거의 재발견을 통해서 문제를 파악하고 과거 그녀를 지탱해 주었지만 도전해 야했던 공동체로 다시 연결시켜준다. 하지만 이야기를 통한 그녀의 사회적 치유로서의 나아감은 치유적인 동시에 모순적일 수 있는 가능성도 안고 있다. 사회로의 새로운 도전과 직면은 고백과 토로를 통해 정서의 안정화된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통한 세상으로의 나감은 자연기의 자기위안적이며 내면화된 영역을 확장시키고, 이야기의 치유적 가능성과 변화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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