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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판례 분석을 통한 기록의 성립 요건 검토: ‘남북정상회담회의록 삭제’ 판례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Established Requirements for Records through Precedent Analysis: Focusing on “Inter-Korean Summit Meeting Minutes Deletion” Cases
ABSTRACT
판례 분석을 통한 기록의 성립 요건 검토: ‘남북정상회담회의록 삭제’ 판례를 중심으로
ABSTRACT

This study aims to analyze the court ruling on “Inter-Korean Summit Meeting Minutes Deletion,” identify how the established requirements, concept, and scope for the records prescribed in the Public Records Management Act are applied in actual cases, and summarize the future tasks. It analyzes the “approval theory” as the point of establishment for records by the ruling means and how the meaning of approval is determined, and examines the difference between the e-jiwon System and the On-Nara System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ruling clearly. Moreover, it analyzes how the “Invalidity of Public Documents Crime” in Article 141 in the Criminal Act influences record management. Based on such comprehensive case analyses, the study proposes what tasks the administrative agencies such as the National Archives of Korea and the Ministry of the Interior and Safety should perform.

KEYWORD
기록관리판례 , 결재 , 대통령기록관리 , 공용전자기록등 손상죄 , 기록물무단폐기 , e지원시스템 , 행정정보데이터세트
  • 1. 서 론

       1.1 연구의 배경 및 필요성

    2020년 12월 10일 대법원1)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삭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백○○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에 대해 판결하였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작성된 지 13년, 2013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이 시작된 지 7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 1심2), 2심3) 무죄판결에 이어 사건을 접수한 대법원은 5년간의 심리 끝에 사건을 유죄 취지로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하였다. 이후 고등법원은 대법원의 유죄 취지에 따라 판결을 하게 될 것이다. 대법원의 유죄판결을 바꿀 결정적인 증거가 더 이상 제시되지 않는 한 대법원의 유죄판결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 판결의 대상인 일명 ‘NLL 대화록 삭제’ 사건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록의 관리가 어떻게 사회적인 쟁점이 될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2012년 정문헌 의원의 ‘NLL포기발언’4)에서 시작하여, 기록물 폐기 논란으로 이어진 이 사건은 정치, 사회적 쟁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공기록관리 분야에도 여러 시사점을 남겼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기록의 공개 문제부터 대통령 기록물의 이관 및 보존에 관련된 쟁점에 이르기까지 우리 기록관리 제도가 갖는 여러 허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사건은 공공기록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인 ‘무엇이 기록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던졌다. 이 판결을 통해 처벌의 범주에 들어가는 기록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판례가 형성되었고, 그것은 공공기관의 기록을 관리하는 데 하나의 기준점이 될 것이다.

    그간 기록의 개념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설문원(2019)은 기록에 대한 정의(definition)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살펴, 기록의 정의를 증거, 정보, 활동의 재현물이라는 가치 측면에서 정리하였다. 또 기록의 개념과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제프리 여의 “활동의 지속적 재현물”이라는 정의를 중심으로 논의를 분석하는 연구를 하였다. 이젬마, 오경묵(2020)은 진본성, 신뢰성이라는 공신력 있는 기록이 가져야 할 품질을 분석하여, 공공기록관리 실무에서 법적으로 관리해야 할 기록에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보다 더 넓은 차원에서 아카이브와 기록관리의 지향을 ‘기억’의 차원에서 재정의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장대환, 김익한(2019)은 그간의 아카이브가 ‘세계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라는 담론을 실천하기 위해 존재되었다면, 앞으로의 아카이브는 ‘어떤 과거의 세계를 기억할 것인가’라는 담론을 다루는 기관이 된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논의에 따라 기록이 가지는 개념적 정의도 달라질 수 있음을 논했다.

    실무적인 차원에서 기록관리 주무기관인 국가기록원에서 기록의 개념에 대해서 연구한 기록관리 이슈페이퍼(이젬마, 2019; 임신영, 2019)는 주목할 만하다. 이 연구는 기록의 정의, 기록 생산의 개념에 대한 법적인 해석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이론적인 배경과 논거를 찾기 위해 작성되었다. 해외의 사례 등을 검토한 후, 공공기록물법령 상에 나타난 기록의 개념과 기록의 성립요건을 검토해 보고, 처벌 조항의 과도한 적용을 피하기 위해 기록물과 기록물 생산 규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함을 제안하였다. 이들 연구는 기록의 개념 등에 대해 해외의 다양한 사례를 검토하고, 깊이 있는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였음에도, 공공기관에 직접적인 구속력을 갖고 있는 관련 판례에 대한 분석이 깊이 있게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한계를 보충하기 위해 시도되었다. 먼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1심, 2심, 3심 판결문이 공공기록관리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분석을 시도하였다. 이와 함께 ‘공용전자기록등 손상죄’가 공공기록관리와 어떤 관련을 갖는지 관련 판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였다. 또한 회의록 초안을 생산한 당시 e지원시스템이 행정기관에서 사용하는 업무관리시스템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비교하여, 이번 판결이 업무관리시스템을 사용하는 공공기록관리 일반의 사례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였다. 향후과제에서는 판례가 판단의 근거로 삼은 기록관리관련 법령, 행정 효율과 협업 촉진에 관한 규정, 전자정부법 등의 각종 규정을 분석하여, 기록물의 생산, 관리 등과 관련된 제도를 정비하는 등의 과제를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제시해 보았다.

    2. 사건의 경과5)

    2007년 10월 2일 ~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된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회의인 만큼 당연히 회의록을 작성한다. 조○○ 당시 비서관은 2007년 10월 9일 e지원시스템(당시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 문서관리카드를 통해 회의록 초안을 생산하고 결재권자인 대통령에게 상신한다. 같은 해 10월 2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e지원시스템을 통해 회의록 초안이 담긴 문서관리카드를 ‘열람’하고, 상세한 지시사항을 적은 hwp파일을 첨부하는 방식으로 검토의견을 붙여, 회의록 초안 내용에 대한 수정·보완을 지시한다. 또한 ‘보완 후 국정원에 보내고, e지원에서는 삭제하라’고도 지시한다. 같은 해 10월 21일 조○○ 비서관은 수정·보완에 대한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확인하고, 이후 국정원과 협의하여 새로운 회의록을 작성한다. 이후 국정원은 이 회의록은 1급 비밀로 관리하게 된다. 회의록 생산이 완료되었음에도 조○○ 비서관은 2008년 1월 30일까지 회의록 초안 문서관리카드에 대해 ‘종료처리’ 하지 않고, ‘계속검토’ 상태로 두었으며, 2008년 2월 14일 ‘회의록 수정보고’라는 이름의 ‘메모보고’를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이후 2008년 2월 임기 말, 중복문서, 테스트문서 등을 e지원시스템에서 인식할 수 없도록 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조○○ 비서관은 회의록 초안 문서관리카드에 대한 삭제를 시스템 관리부서에 요청하였으며, 그 요청에 따라 회의록 초안 문서관리카드를 e지원시스템에서 삭제하고, 대통령에게 메모보고 된 최종본은 대통령기록물 이관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후 ‘NLL포기 발언’ 등이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면서, 당시 새누리당 ‘영토주권포기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들은 대통령기록관에 보존 중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 대한 열람을 요구한다.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2013년 6월 24일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회의록 발췌본 전문을 보도자료를 통해 전격적으로 공개하기에 이른다. 2012년 7월 2일 국회 본회에서 국가기록원 소장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및 관련 기록물 열람에 대해 의결하고, 7월 15일 당시 새누리당과 민주당 각각 5명씩 10명의 국회의원들이 국가기록원에 보존 중인 관련 자료를 열람하고자 하지만, 대통령기록관에서 해당기록 원본을 찾지 못하고 ‘대화록 실종’을 발표한다. 이후 회의록 실종에 대해 시민단체 활빈단은 대검찰청에 수사를 의뢰하고, 새누리당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은닉·폐기·삭제·절취 등의 행위에 가담한 불특정 피고발인 전원을 대통령기록물법 위반죄로 고발한다.

    고발에 따라 2013년 8월 16일부터 11월 11일까지 진행된 대통령기록관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결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에 검찰은 대통령기록관에 보존 중이던 봉하마을 e지원 복사본에 대한 복원을 시도하고, 삭제된 문서관리카드 및 메모보고를 발견한다. 검찰은 수사 끝에 비정상적 방법으로 기록이 삭제되었다고 판단하고, 2013년 11월 백○○ 전 실장과 조○○ 전 비서관을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및 공용전자기록등 손상 혐의로 재판에 넘긴다.

    3. 기록 생산시점에 관한 판례 검토

    법원이 기록물의 생산시점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1심, 2심, 3심의 판단과 그 근거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1심, 2심, 3심은 모두 기록물의 ‘생산’은 ‘등록’과 다른 개념이며, ‘생산’은 ‘등록’ 직전의 개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6) 이에 대해 피고인은 ‘결재’가 있다고 해도, ‘등록’을 해야 대통령기록으로 생산된다는 ‘등록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일관되게 피고인이 주장한 ‘등록설’을 부정하고 ‘결재’에 의해 기록물이 생산된다는 ‘결재설’을 인정한다. 1심 재판부는 구 전자정부법7) 제17조(전자공문서의 성립 등) 제1항,8) 전자정부법 시행령9) 제8조(전자적 결재의 수단)10)의 규정을 ‘결재설’의 근거로 제시한다.

    2심 재판부는 결재 이전 ‘보고’된 것만으로 기록물이 생산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는다. 각종 법규에서는 ‘생산’과 ‘보고’를 구분하고 있으므로, ‘결재권자의 결재가 예정된 문서’의 경우에도 ‘대통령에게 보고 된 때 바로 대통령 기록물로 생산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11) 또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6조(기록물 생산의 원칙)12)의 의미는 공공기관이 기록물을 관리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지, 생산요건을 정의하는 내용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또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6조(기록화 및 기록관리대상)13)의 규정도 모든 ‘과정문서’가 결재여부와 상관없이 기록으로 생산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즉, 2심 재판부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이야기하는 ‘업무수행의 모든 과정 및 결과를 기록관리 하라는 것’의 의미는, 공공기관이 결재를 통해 기록으로 생산된 기록물을 철저하게 관리하라는 뜻이지, 결재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과정문서를 기록물로 관리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14)

    대법원의 판단도 기록의 생산 요건으로서 ‘결재’에 대해서는 하급심과 크게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다. 1심, 2심과 같이 ‘생산’과 ‘결재’를 구분하며, ‘공문서(기록)’는 결재권자가 서명 등의 방법으로 결재하여 성립한다고 1심, 2심의 판단을 인정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기록물의 ‘기안 - 상신(보고) - 결재(생산) - 등록’의 과정 중 ‘결재’를 기록의 생산시점으로 보는 ‘결재설’은 1심, 2심, 3심에 걸쳐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의 생산요건 및 시점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그간 국가기록원이 견지한 기록의 생산요건과 차이가 있다. 국가기록원 이슈페이퍼에 따르면 기록물 생산이란 “공공기관이 업무와 관련하여 작성·취득한 기록정보를 결재, 접수, 보고, 검토 등을 수행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이젬마, 2019). 이는 명백히 ‘결재설’을 취하고 있는 법원의 판례와는 다른 입장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국가기록원 연구보고서에 담긴 주장은 학문적으로 분명 논의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만, 문제는 사법기관과 행정기관의 판단차이가 그저 학문적인 견해차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록관리 업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학문적으로 관리해야 할 기록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와 별개로, 처벌의 대상이 되는 기록의 개념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법령해석 담당기관의 명확한 입장 정리 및 배치되는 부분에 대한 법령 개정이 요구되는 이유다. 국가기록원에서도 “공공기관이 생산·보유한 기록물과 관련하여 제기되어 온 크고 작은 이슈들은 기록 여부 및 성립 요건 등을 보다 명확히 하여 기록물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들을 해소할 필요가 있음”이라고 기술하며, 이러한 논란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임신영, 2019).

    4. 기록의 생산요건인 ‘결재’의 의미

    1심, 2심과 대법원이 기록물 생산요건으로서 ‘결재’를 인정하고 있음에도,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는 것은 바로 ‘결재’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르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2심은 결재에 있어서 ‘결재권자의 내심의 의사’라는 개념표지는 결재와 불가결한 요소라고 판단하였다. 즉, 1심에서 말하는 ‘결재할 권한이 있는 상관이 부하가 제출한 안건을 검토하여 허가하거나 승인함’은 ‘승인의 의사표시’를 전제하는 것으로, ‘문서관리카드에 대한 결재’란, ‘결재권자가 문서관리카드의 내용을 승인하여 공문서로 성립시킨다는 의사에 기하여 결재권자의 전자문서서명 등을 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이러한 논리에 기초하여, 회의록 초안 문서관리카드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대로 공문서로 성립시킨다는 의사가 아닌, 수정·보완을 지시한 것이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문서관리카드를 대통령기록으로 승인할 의사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즉, 문서관리카드를 ‘열람’하고 수정·보완을 지시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결재권자의 기록물 승인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결재 요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먼저 대법원은 당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6조 제1항은 ‘업무수행을 위해 업무의 입안단계부터 종결단계까지 업무수행의 모든 과정 및 결과가 기록물로 생산관리 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당시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7조 제1항은 ‘대통령의 보좌기관 자문기관의 장 등은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한 모든 과정 및 결과가 기록물로 생산·관리되도록 하여야 함을 원칙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제시한다. 또한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8조에 따라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한 모든 과정 및 결과가 전자적 기록물로 생산·관리되어야 하며, 전자적 형태로 생산되지 아니한 기록물에 대하여도 전자적으로 관리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거론한다. 대법원은 이러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과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의 취지 아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19일 회의록 초안을 검토하며, ‘문서처리’ 방법 5가지(열람, 시행, 재검토, 보류, 중단) 중 결재의 방법 중 하나인, 전자서명이 표시되는 ‘열람’을 선택함으로써 기록물을 ‘생산’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1심, 2심이 대통령이 이 회의록 초안을 기록물로 승인하지 않았다고 본 근거인 대통령의 수정·보완지시가 담긴 hwp 형식의 검토의견은 ‘열람하고, 그 내용을 확인하였다는 의사’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여기서 대법원은 주목할 만한 판단 이유를 밝힌다. 대법원은 1심, 2심과 달리 ‘회의록 기록’의 특성에 대해 설명한다. ‘회의록은 개최된 회의의 일시, 장소 및 회의에서 이루어진 발언 내용 등 객관적인 정보를 담은 문서’15)이며, ‘의사결정기록’과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즉, ‘문서에 담긴 정책을 승인’한다는 의미를 갖는 일반 기록물과 달리, 회의록은 그저 객관적인 내용을 확인하는 것으로 족한 기록이라는 판단이다. 이러한 회의록 기록의 특성 때문에, 회의록 기록에 대한 결재의사는 ‘그 내용을 열람하고 확인하는 의사’인 것이다. 다시 말해, 노 전 대통령은 이 사건 회의록의 내용을 열람하고, 그 내용을 확인하였다는 취지로 ‘문서처리’ 및 ‘열람’을 선택하였으므로, 회의록 초안은 기록물로 성립하였다는 것이 대법원의 논리다. 만약 대상 기록물이 회의록이 아니라 정책 결정 내용을 담고 있는 ‘의사결정기록’이었다면, 대법원의 판단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이번 대법원의 판단을 모든 기록에 대해 결재의 의미를 ‘열람하고 확인하는 의사’로 확장한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또 기록이 담고 있는 내용에 따라 ‘결재’의 의미를 달리 판단하는 법원을 판결에 따라 공공기록의 유형별 ‘결재’의 의미를 명확히 규정하는 제도 및 절차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결재의 의미를 1심, 2심과 다르게 해석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모든 공공기록에 대한 결재의 의미 확장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번 판결이 공공기록과는 다른 생산 환경 및 특성을 갖고 있는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당시 기록물생산시스템인 e지원은 공공기록물 생산시스템인 온나라 시스템 등과는 차이가 있는 시스템이다. e지원시스템은 문서의 생산부터 의사결정 전 과정을 관리하여 행정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증대시킨다는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e지원시스템은 문서관리카드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인 ‘경로부’에 문서에 대한 검토자들의 처리 의견 등을 반드시 남기도록 하여 최종검토자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지원하도록 하였다.16) 대화록의 최종 결재권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화록 초안에 대한 의견을 상세히 첨부한 것도 이러한 e지원시스템의 개발자로서 그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e지원시스템의 목적은 e지원시스템을 모체로 만든 업무관리시스템인 온나라시스템을 정부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왜곡되었다. 앞서 언급한 시스템의 핵심인 경로부의 작성과 관련해서 검토자·협조자의 의견을 필수로 지정하지 않아, 내용을 입력하지 않고 그저 문서의 결재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시스템 및 관련 규정을 수정하였다(조영삼, 2011, pp. 96-97). 즉, e지원시스템의 개발 목적 자체가 ‘결재’를 중심으로 한 공공기관의 문서생성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e지원시스템 개발 이후 정부로 시스템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결재 등과 관련된 규정이 개정되었으며, 그 개정에 맞춰 현재 정부가 사용하는 ‘결재’ 중심의 업무관리시스템이 개발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러한 e지원시스템과 업무관리시스템의 차이는 이번 판결의 대상인 대화록 초안이 기안 및 유통되는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두 시스템은 문서가 기안되고, 검토자, 협조자 등 중간결재자를 거쳐 최종 결재자가 문서를 결재하는 큰 틀은 유사하지만, e지원시스템은 최종 결재자인 대통령에게 상신될 문서를 사전에 확인하는 제1부속실 행정관이 별도로 존재하여 문서를 점검하고 상신하는 과정이 있었다. 또한 결재자인 대통령이 열람 등의 처리를 한 후, 그대로 문서가 등록되고 완료되는 것도 아니었다. 대통령의 문서처리(열람, 시행, 재검토, 보류, 중단) 이후 사전에 문서를 점검하는 역할을 했던 제1부속실 행정관의 문서함으로 이동한 후, 확인을 거쳐 다시 기안자에게 돌아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 등은 정부 업무관리시스템의 문서생산 프로세스와는 다른 모습이다.17) e지원시스템과 업무관리시스템의 프로세스 차이는 〈그림 1〉과 같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e지원시스템의 경우 대통령에게 상신된 문서가 결재됨과 동시에 시스템에 등록되는 것이 아니라, 문서점검자에 의해 기안자에게 하행처리 된 후 계속검토 및 종료처리를 선택하게 된다.18) 이와 달리 온나라 업무관리시스템의 경우 최종결재자가 결재함과 동시에 문서가 등록(문서등록번호 부여)된다. e지원시스템은 문서의 결재행위를 중심에 둔 시스템이 아니라 기안자와 중간결재자, 최종결재권자의 의사소통 행위에 중심을 둔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최종결재자가 결재 시 남긴 의견을 문서에 담긴 내용을 집행할 기안자가 확인하고, 종료처리 하는 순간에 해당 문서관리카드가 담고 있는 정책에 대한 의사소통이 종료된다. 실제로 대통령이 ‘열람’ 처리한 회의록 초안에 대한 문서관리카드를 돌려받은 기안자(조○○ 비서관)는 국정원과 회의록 완성본 등을 만드는 과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종료처리’하지 않고, ‘계속검토’ 버튼을 눌러 ‘회의록’ 작성에 대한 e지원을 통한 의사소통이 종료되지 않았음을 표시하였다. 이런 과정에 ‘회의록을 청와대 내에 두지 말고, 국정원에서 관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으므로, 의사소통이 종료되지 않은 회의록 초안에 대해서는 ‘삭제’하고, 완료된 회의록을 다시 대통령에게 메모보고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이번 판결에서 말한 기록물 생산시점의 정의를 e지원시스템과는 다른 업무관리시스템을 사용하는 공공기록관리에 적용하는 것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e지원시스템 환경에서 생산되었고, 회의록이라는 특수한 기록유형에 한정해서 내린 판결을 공공기록관리 전반의 기록개념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처벌조항을 갖고 있는 기록관리법령의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19) 이번 판결이 공공기록관리 전반에 결재의 의미 등을 다시 정립해야 하는 필요성을 말하고 있고, 앞으로 많은 문서를 포함한 기록의 무단 폐기 관련 사건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과는 별도로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이 어떤 배경에서 생산된 기록물에 대한 것인지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5. ‘공용전자기록등 손상죄’와 기록관리의 관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삭제’ 판결은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과 함께 형법 제141조의 ‘공용전자기록등 손상죄’에 대한 판결도 함께 이루어졌다. 형법 제141조 제1항은 공무소의 전자기록 등의 효용을 해하는 자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20) 이러한 규정을 근거로 1심에서 검찰은 ‘대통령기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공용전자기록등 손상죄에 해당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피고인 측은 ‘본 기록은 초안이므로 당연히 삭제되어야 할 대상이며, 삭제했다고 하더라도 손상 또는 은닉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의록 초본이 속성상 당연히 삭제되었어야 할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인지, 초본을 삭제할 때 정당한 권한을 가진 자에 의해서 삭제되었는지 하는 점이다. 그간의 판례는 ‘형법 제141조 제1항은 정당한 권한 없이 서류의 효용을 해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므로, 정당한 권한이 있는 자의 정당한 처분에 의한 공용서류의 파기는 적용의 여지가 없다’21)고 판시하였다.

    1심은 이러한 검사와 피고인 측의 주장에 대해 ‘이 사건의 최종 회의록은 국정원에서 생산되어 관리되므로, 이 사건 파일은 더 이상 가치가 없으며, 초본으로서의 속성 및 비밀관리 관련 법령의 취지에 비추어 폐기가 맞다. 또한 피고인은 삭제를 했더라도 ‘공무소의 전자기록’을 훼손한 것이 아니며 ‘정당한 권한’을 갖고 있으므로 공용전자기록등 손상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22)고 판시하였다. 2심도 ‘최종 회의록이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으므로, 삭제된 회의록은 초본임이 확실하며, 또한 회의록 최종본을 국정원에서 1급비밀로 관리하도록 하고, 청와대 내에 회의록을 남겨두지 말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삭제한 것이므로 무단으로 유출하거나 폐기하려는 증거가 없어, 형법 제141조를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23)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삭제된 문서관리카드를 대통령기록이라고 판단한 대법원은 ‘공용전자기록등 손상죄’에 대해서도 1심, 2심과 다른 판단을 내렸다.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 기타 물건 또는 전자기록은 공문서의 효력이 생기기 이전24)의 문서도 포함되기에, 미완성의 문서라도 죄의 성립에 영향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삭제될 기록이기에 ‘공용전자기록등 손상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은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전자기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있다고 보았다.

    ‘공용전자기록등 손상죄’를 공공기록관리 분야에서 의미를 두고 분석해야 하는 이유는 ‘공무소’, 즉 공공기관에서 결재, 접수 등의 여부와 상관없이, 작성되었거나, 작성 중인 모든 문서가 그 범위에 들어갈 만큼 대상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판례25)는 ‘형법141조 제1항의 공용서류는 정부공문서 규정에 따라 접수되고 결재된 것에 한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그 범의(犯意)에 있어서도 ‘피고인에게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라는 사실과 이를 은닉하는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다는 사실의 인식이 있음으로써 족하다’고도 판시하였다. 심지어 판례는 ‘사인(私人)이 공무소에서 처리하는 업무와 관련하여 정식접수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제출한 사문서나 혹은 최종 결재를 얻지 못한 공무소 내부의 문서라고 하더라도 공용서류무효죄의 객체이다’라고 판시26)한 적도 있다.

    이러한 판례를 종합해보면 형법 제141조 ‘공용전자기록등 손상죄’는, 그 대상이 ‘결재 받은 기록’인지 따지지 않으며, 범의(犯意)에 있어서 문서의 효용을 해한다는 의식만 있으면 족하다. 즉, 그 문서의 성립여부와 상관없이, 그 문서가 공무소에서 사용하고 있는 어떠한 형태의 서류이기만 하면 범죄의 대상으로 인정된다고 본다. 실제로 최근 월성 1호기 원전과 관련한 내부 자료를 대량 삭제하는 데 관여한 혐의 등으로 검찰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에 대해, 검찰은 자료 삭제에 관해서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아닌, 공용전자기록등 손상 혐의만을 적용하였다.27) 검찰은 ‘결재설’을 따르고 있는 재판부에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하는 것보다 ‘공용전자기록등 손상 죄’로 기소하는 것이 범죄 소명에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번 대통령기록물 삭제 관련 대법원 판례가 형성되었고, ‘공용전자기록등 손상죄’에 대한 범위는 수차례 판례를 통해 이미 구체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문서 및 기록 삭제에 관한 죄의 적용이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결재를 받아 기록물로 성립된 경우 기록물법(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대통령기록물관리법)과 형법 제141조가 상상적 경합28)하게 된다. 기록물로 성립하기 이전 문서 등의 경우는 앞서 원전 관련 공무원의 경우처럼 형법 제141조만을 단독으로 적용할 여지가 크다. 이러한 법 적용에 따라, 문서가 담당자에 의해 작성된 순간부터 결재여부와 관계없이 권한 없이 파기된 경우라면, 문서의 작성시점부터 전 과정에 대한 처벌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렇게 기록물 여부를 따지지 않는 형법과 기록관리법령의 처벌 조항이 경합한다면, 처벌의 대상이 되는 ‘법률적’ 의미의 기록을 관리하는 기록관리기관 및 기록관리담당자는 기록의 개념 및 범위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정의하고 실질적인 가이드를 제시해야 한다. 앞서 거론한 것처럼, 그간 국가기록원을 비롯한 기록관리전문가들은 업무과정을 모두 남겨야 한다는 규정을 근거로 기록의 범위를 ‘결재설’보다 넓게 정의하고자 하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1심, 2심 재판부가 말한 것처럼 ‘업무과정의 기록을 남기라는 뜻’을 공공기관에서 결재를 통해 생산한 기록의 기록관리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으로 해석하고, 처벌대상인 좁은 의미의 기록에 포함되지 못하는 결재받기 이전의 문서의 무단폐기는 ‘공용전자기록등 손상죄’의 처벌대상으로 이해한다면, 기록관리법령을 모든 문서 및 기록의 무단폐기 처벌규정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러한 구분은 기록관의 책임범위와도 관련된 실무적 문제다. 현재와 같이 기록관리법령이 말하는 ‘기록’을 추상적으로 이해하고 현실에 적용한다면, 기록관이 책임질 수 있는 기록의 범위가 불분명해지고, 무단폐기에 따른 기록관리전문가의 책임문제까지 거론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국가기록원 등 기록관리기관의 문서 무단폐기 등이 지적될 경우 기관 차원의 문제해결 방안의 하나로 ‘모든 업무과정에서 생산된 기록’을 관리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기록관 및 기록관리전문가에게 책임을 묻게 될 가능성도 있다.

    6. 향후 과제

    대법원의 파기 환송으로 고등법원은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을 다시 하게 된다. 만약 피고인 측이 고등법원의 판단에 대해서 불복하고 상고하면 대법원이 다시 판단하게 된다.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지만, 이미 많은 증거들이 재판에서 공개된 상황이므로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렇다면 대법원의 판단은 기록관리 관점에서 그 적절성을 따져볼 수 있겠지만, 법률이 변경되기 전까지 행정부는 그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록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행정기관으로서 국가기록원 및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 기록관리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에 대응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논의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6.1 기록의 개념 정립

    국가기록원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6조29)에서 말하고 있는 ‘업무수행을 위하여 업무의 입안단계부터 종결단계까지 업무수행의 모든 과정 및 결과가 기록물로 생산·관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기록관 등에서 기록을 관리하는 기록관리전문가들은 아직 어떤 기록이 기록관리법령에서 말하는 관리의 대상인지 명확히 정의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 및 해석의 공백상태는 기록의 개념을 사법부가 내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먼저 이번 1심, 2심, 3심 판결에 대해 기록관리 관점에서 상세히 분석해야 한다. 또한 기록물 생산기관에서 어떤 기록물이 생산되고 있으며,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기록물 생산 현황 파악 등을 통해 어떤 기록을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말하는 ‘처벌대상’의 범주에 포함시킬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국가기록원의 요청으로 한국법제연구원에서 수행된 연구용역은 기록의 범위 결정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이 연구용역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기록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는 법의 태도와 기록물관리의 현실 간의 간극이 매우 크다고 평가한다(한국법제연구원, 2019, p. 33). 이러한 문제 때문에 처벌 대상으로서의 기록물을 최대한 좁혀서 해석하고자 하는 태도가 생겨났고, 그 간격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록물 중요성 정도를 구별하여 그에 상응하는 관리의 수준을 대응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시한다(한국법제연구원, 2019, p. 38). 이러한 기록의 개념 분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떤 기관에서 어떤 종류의 기록물이 생산되고 있는지에 대한 국가적인 차원의 파악이 필요하다. 변화되는 기록의 생산 환경에 맞춘 상세한 관리수준은 각급 기관 기록관의 역할이라고 할지라도, 전체적인 기록물 생산 현황을 파악해 처벌대상이 될 수 있는 기록의 유형은 무엇인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법령에 대한 해석권을 갖고 있는 국가기록원이 해야 할 일이다. 기준이 설정되면, 기준을 어떤 규정에 반영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30) 즉, 법령은 그 원칙을 정하고, 시행령은 국가적 차원의 유형과 종류를 정하고, 각 기관에서는 법령에 따라 실제 각 기관에서 생산되는 기록물의 관리유형을 정하는 방식으로 범위를 좁혀 나가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기록관리법령의 개념 분화와는 별개로 이미 개정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행정정보데이터세트의 관리에 대해 기존의 기록물과는 다른 관리 방식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31) 이에 따라 국가기록원은 행정정보데이터세트의 유형을 기록관리대상인 고유 업무용 시스템(A), 공통 행정업무 시스템(B), 기록관리 적용 시스템(C)과 기록관리 대상에서 제외되는 단순지원시스템 등(D)으로 구분하여 안내하였다(국가기록원, 2020). 행정정보데이터세트 관리방안의 적정성 여부는 이 논문의 논점에서 벗어나므로 별개로 하고, 이러한 행정정보데이터세트 기록 관리방안의 차별적 적용은 기록의 개념을 분화해서 사용할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6.2 문서의 성립과 관련한 규정의 체계화

    이번 판결은 국가기록원, 공공기록물법의 범위를 넘어, 문서생산, 결재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기록관리를 포함한 문서의 성립부터 폐기까지 모든 과정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재 문서의 생산 방법 등은 ‘행정 효율과 협업 촉진에 관한 규정’에서 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현재 ‘행정안전부 정보공개정책과’ 담당이며, 전자서명 등을 규정하고 있는 ‘전자정부법’은 ‘행정안전부 디지털정부정책과’ 담당이다. 이번 판결은 행정안전부가 행정의 차원에서 다루고 있는 이들 규정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며, 전자기록에 있어서 결재가 무엇인지, 행정전자서명의 의미는 무엇인지 판단한다.

    행정 효율 규정 제6조(문서의 성립 및 효력 발생)에서 ‘문서는 결재권자가 해당 문서에 서명(전자이미지서명, 전자문자서명 및 행정전자서명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방식으로 결재함으로써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3조(정의)는 서명을 각각 아래와 같이 규정한다.

    - 서명 : 기안자·검토자·협조자·결재권자 또는 발신명의인이 공문서(전자문서는 제외한다)에 자필로 자기의 성명을 다른 사람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한글로 표시하는 것

    - 전자이미지서명 : 기안자·검토자·협조자·결재권자 또는 발신명의인이 전자문서상에 전자적인 이미지 형태로 된 자기의 성명을 표시하는 것

    - 전자문자서명 : 기안자·검토자·협조자·결재권자 또는 발신명의인이 전자문서상에 자동 생성된 자기의 성명을 전자적인 문자 형태로 표시하는 것

    - 행정전자서명 : 기안자·검토자·협조자·결재권자 또는 발신명의인의 신원과 전자문서의 변경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그 전자문서에 첨부되거나 결합된 전자적 형태의 정보로서 「전자정부법 시행령」 제29조에 따른 인증기관으로부터 인증을 받은 것

    이러한 4가지 서명방법을 통해 결재가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정작 결재가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행정안전부가 밝히는 결재의 의미는 행정안전부가 ‘행정 효율과 협업 촉진에 관한 규정’을 해설한 편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편람은 결재의 개념에 대해 “결재란 해당 사안에 대하여 행정기관의 의사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자가 그 의사를 결정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설명한다(행정안전부, 2018, p. 90). 이러한 설명은 이번 대법원의 회의록에 대한 결재여부 판단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회의록에 대한 결재의 조건으로 ‘그 내용을 확인하고 열람하는 의사’라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에 따른다면 결재에 의사결정행위를 조건으로 하는 행정안전부의 판단은 달라져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각 문서의 유형에 따라 결재란 무엇인지 구분해서 설명해 주어야 한다.

    법령의 해석을 변경하는 것과 동시에, 행정효율 규정 등에 결재의 의미를 더욱 명확히 정해야 한다. 또한 기록관리법령과 행정 효율과 협업 촉진에 관한 규정 등이 모순되거나 충돌하는 부분이 없는지 이번 기회에 확인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실무적으로는 전자이미지서명 등 여러 서명의 종류가 어떤 시점에 적용되는지, 어떤 행위가 결재로 인식되는지 정확히 안내해야 한다. 이번 판례를 예로 든다면, 문서카드를 ‘열람’하는 행위가 결재에 해당되는지, 전자서명이 어떤 방법으로 표시되는지 기록물 생산자들이 알고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규정과 벗어나서 사용되는 시스템이 있다면 확인하고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들 모두 국가기록원을 포함한 행정안전부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6.3 새로운 기록유형의 성립요건 확인

    문서생산의 요건을 정의하는 일이 중요하고 시급한 이유는 전통적인 문서와는 다른 형태의 기록이 매우 빠르게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례도 전통적인 종이기록이 아닌 업무관리시스템에서 생산된, 새로운 기록유형의 출현에 대응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결재의 요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은 다르더라도, 전자문서 형식으로 생산된 기록은 종이문서와 비슷한 문서생산 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많은 행정업무에 사용되는 행정정보데이터세트, 웹기록 등은 기록의 생산요건으로 거론되는 ‘결재’ 단계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향후 데이터세트의 삭제, 변조 문제 등이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면 지금의 경우와는 또 다른 판단 기준이 필요할 가능성이 많다. 실제로 지난 2018년 당시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을 지휘하던 유해용 변호사는 퇴직하며, 근무하던 기간에 ‘연구관보고서등록시스템’에 등록된 보고서 등 대법원 재판기록 수만 건을 빼돌리고, 파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당시 재판부는 파기된 보고서 등이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상의 기록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32) 기록관리법을 적용한 사례는 아니지만 2017년 강남구청정의 업무추진비 부당사용내역이 담긴 서버 전체를 삭제, 포맷해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당시 담당 공무원이 실형을 받은 판례도 있다. 이러한 사례는 기록물을 포함한 정보의 무단파기와 관련한 범위가 매우 넓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행정정보데이터세트의 기록물 성립 요건을 정하고, 그 관리의 수준과 방법을 전통적인 문서형 기록과 차별화하는 것은 약 2년 앞으로 다가온 현 19대 대통령의 이관33)과도 관련이 있다. 현재 대통령기록관은 행정정보데이터세트를 포함한 모든 유형의 기록물을 이관 받아 관리하고 있다. 기록물이 본격적으로 이관된 16대 대통령부터 18대 대통령까지 현재 대통령기록관의 보유량은 〈표 1〉과 같다.

    [〈표 1〉] 16대∼18대 대통령기록관의 대통령기록물 보유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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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대∼18대 대통령기록관의 대통령기록물 보유량

    전체 기록물 29,974,026건 중 행정정보데이터세트는 9,167,072건으로 약 30%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성격이 유사한 웹기록까지 더한다면 비중은 77%에 가깝다. 대통령 기록을 대부분 문서 유형의 기록이 아닌 데이터 유형의 기록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대통령기록에 있어서도 새로운 유형의 기록물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문서류에 비해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청와대 근무자들의 초과근무 관리, 식수관리, 민원ARS 등의 행정정보데이터세트가 대량으로 이관34)되어 대통령기록관의 관리역량이 분산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관리의 가치가 없는 행정정보데이터세트 등에 대해 법령에서 관리수준을 달리 정한다면 기존과 달리 가치 있는 대통령기록물만을 선별하여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고, 철저히 관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기록물의 개념을 분화해서 사용하는 것은 기록의 가치에 대한 학문적 논의를 뛰어넘어 실무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7. 결 론

    본 연구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삭제’에 대한 법원의 1심, 2심, 3심 판결문을 분석하여 기록의 성립요건, 개념, 범위 등이 실제 재판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기록의 개념정립과 관련하여 앞으로의 과제를 정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먼저, 판결에서 기록의 성립시점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분석하였다. 1심, 2심, 3심은 모두 기록물의 ‘생산’은 ‘등록’과 다른 개념이며, ‘생산’은 ‘등록’ 직전의 개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결론을 달리한 대법원의 경우도 기록의 생산 요건으로서의 ‘결재설’에 대해서는 크게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기록의 생산요건으로서의 ‘결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분석하였다. 바로 여기서 1심, 2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달리지는 지점이 있다. 1심, 2심은 ‘문서관리카드에 대한 결재’란, ‘결재권자가 문서관리카드의 내용을 승인하여 공문서로 성립시킨다는 의사에 기하여 결재권자의 전자문서서명 등을 하는 행위’라고 보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의록 초안을 기록물로 승인한다는 의사가 없었다고 판단한 것에 반해, 대법원은 회의록은 개최된 회의의 일시, 장소 및 회의에서 이루어진 발언 내용 등 객관적인 정보를 담은 문서이기 때문에 일반 기록물과 달리 회의록 기록에 대한 결재의사는 ‘그 내용을 열람하고 확인하는 의사’로 보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람’ 행위가 그대로 결재의 의사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본 연구는 대법원의 판단을 공공기록물 전체에 대한 해석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이 판결은 e지원시스템이라는 특수한 의사소통 시스템에 대한 판단이며, 그 속성이 일반적인 업무관리시스템과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공용전자기록등 손상죄’의 적용에 관해서는 ‘공무소’, 즉 공공기관에서 결재, 접수 등의 여부와 상관없이, 작성되었거나, 작성 중인 모든 문서가 그 범위에 들어갈 만큼 대상 범위가 넓기 때문에 기록관리에 큰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처벌의 대상이 되는 ‘법률적’ 의미의 기록을 관리하는 기록관리기관 및 기록관리담당자는 기록의 개념 및 범위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정의하고 실질적인 가이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와 같이 기록관리법령이 말하는 ‘기록’을 추상적으로 이해하고 현실에 적용한다면, 무단폐기에 따른 기록관리전문가의 책임문제 등 현실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기록의 개념 정립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국가기록원은 기록물 생산 기관에서 어떤 종류의 기록물이 생산되고 있는지에 대한 국가적인 차원의 파악이 필요하며, 그것을 근거로 처벌대상이 될 수 있는 기록의 유형은 무엇인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맞춰 각 기관에서는 법령에 따라 실제 각 기관에서 생산되는 기록물의 관리유형을 정하는 방식으로 범위를 좁혀 나가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문서의 성립과 관련하여 규정을 체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록관리법령과 행정 효율과 협업 촉진에 관한 규정 등이 모순되거나 충돌하는 부분이 없는지 이번 기회에 확인하고, 실무적으로는 전자이미지서명 등 여러 서명의 종류가 어떤 시점에 적용되는지, 어떤 행위가 결재로 인식되는지 정확히 안내해야 한다. 새로운 유형의 기록과 관련해서는 기록의 정의 문제가 매우 시급한 사항임을 역설하였다. 또한 이 문제는 19대 대통령기록물 이관과도 관련 있는 실무적 문제임을 지적하였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관리와 관련한 이 사건은 문서의 성립, 기록의 개념 등 기록관리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사건은 국가기록원 등 우리 기록관리전문가집단의 전문성이 어떤 수준인지 확인시켜 준 사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지난 2017년 국가기록관리 혁신T/F는 이 사건에 대한 조사보고서에서 국가기록원 소통방식의 문제를 지적하였으며, 결국 전문기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평가하였다(국가기록관리 혁신T/F, 2017).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의 적절성 여부와 별개로 이 사건을 대하는 기록관리전문가의 자세가 남달라야 하는 이유다.

    이 연구는 공공기록관리에 있어 가장 강한 내적 동력인 판례를 분석하여 사법부의 판단을 무시할 수 없는 행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제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앞으로도 공공기록의 개념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속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그것은 공공기록관리 연구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공공기록관리 현장의 업무수행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본 연구는 판례가 제시한 공공기록관리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한 구체적인 개념의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또한 그간 학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기록의 개념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법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수용하고 현실적으로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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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림 1〉 ]  e지원시스템과 온나라 업무관리시스템 문서처리 프로세스 비교
    e지원시스템과 온나라 업무관리시스템 문서처리 프로세스 비교
  • [ 〈그림 2〉 ]  기록의 개념분화에 따른 각 규정 및 기관별 역할 모형
    기록의 개념분화에 따른 각 규정 및 기관별 역할 모형
  • [ 〈표 1〉 ]  16대∼18대 대통령기록관의 대통령기록물 보유량
    16대∼18대 대통령기록관의 대통령기록물 보유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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