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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사업신탁에 관한 입법론적 고찰 A Study on Legislative Direction of Business Trust
  • 비영리 CC BY-NC
ABSTRACT
사업신탁에 관한 입법론적 고찰

In the year 2011, the Korean trust law was revised on the whole and adopted a variety of provisions which opened doors to the formation of business trust. However, although the objective of the revised law is to promote the trust system in various areas, it might be still captured by the traditional mind-set and fail to highlight the unique features of business trust as a form of business organization. So, in order to realize the potential advantages of business trust, considering the recent legislative trends in the two most advanced legislations of business trust, the United States and Singapore, it seems to be supported by its own legislation reflect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organizational law. According to the review of the policy trends in the two counties mentioned above, this comparative analysis gives an instinctive idea that the independent legislative scope of business trust, apart from traditional trust, should include a provision that grants the business trust its own legal entity. On top of that, the legislative authority would better consider adopting various promotion policies as follows; (1) securing flexibility in fiduciary duties and rights, (2) reinforcing the protection of the rights of the beneficiary, (3) modifying the succession system of negative properties and employment, (4) introducing the unprecedented concepts such as series trust, conversion and merger of trust, (5) reorganizing the tax system, etc. From now on, further studies are needed to demonstrate the plausible benefits and distinctive characteristics of business trust and the proper legislative system should be ready for implementing this system more effectively. Last but definitely not least, with regard to business trust, paradigm shift, viewing it not as a mere contract but as a business organization, is positively required.

KEYWORD
사업신탁 , 상사신탁 , 유한책임신탁 , 기업조직 , 신탁법 , 미국 사업신탁법 , 싱가포르 사업신탁법
  • Ⅰ. 서론

    2011. 7. 25. 전면 개정되고 2012. 7. 26.부터 시행된 신탁법(법률 제10924호, 이하 “개정 신탁법”)은 ① 신탁재산의 범위를 확대하여 영업에 대한 신탁을 허용하고, ② 신탁선언을 통한 자기신탁의 설정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③ 수익증권 및 신탁사채의 발행을 허용하고, ④ 신탁재산에 속하는 채무에 관하여 당해 신탁재산만으로 책임을 지는 유한책임신탁을 도입함으로써 우리 법제에서도 영미법상 활용되던 사업신탁(Business trust)제도가 가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정 신탁법상 규정에 따라 구성되는 사업신탁의 내용을 보면 기존에 활용되던 신탁제도와는 상당한 이질감이 있는 반면 오히려 회사와 같은 공동기업과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처럼 신탁이 단순히 위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계약관계에 불과하고 수탁자는 신탁재산을 수익자의 이익을 위하여 관리·처분 등을 하여야 하는 채권적 구속을 받을 뿐이라고 하는 기존의 사고방식(이른바 채권설1))으로는 사업의 영위와 이익의 창출이라는 목적을 가진 사업신탁의 핵심을 설명하기 어려우므로,2) 법제도적·정책적 관점에서 볼 때 사업신탁의 경우에는 계약법에 기초를 두고 있는 기존의 신탁법리에서 벗어나 회사법과 같은 기업조직법적인 패러다임을 적용함이 자연스러운 귀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개정 신탁법은 일반적인 민사신탁을 규율하는 규정들과 기업조직에 해당하는 사업신탁을 규율하는 규정들을 하나의 법률에 묶어 둠으로써 사업신탁의 독자성과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기업조직의 핵심적 특성인 재산분리기능을 완벽히 작동하게 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인식 하에 본 논문에서는 사업신탁제도의 기원 및 개념에 대하여 간략히 개관한 후 사업신탁의 활성화를 위한 입법론에 관하여 순차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대법원 2002. 4. 12. 판결 2000다70460.  2)채권설의 법리를 사업신탁에 그대로 대입하는 경우 사업신탁의 기업조직적 측면이 간과되고 마치 회사의 구성원인 주주가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 회사에 대하여 채권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이와 같은 개념적 문제점에 비추어 보면 구조적 유연성을 가진 신탁을 일률적으로 채권관계로 설명하기 보다는 당사자의 의사, 신탁의 목적, 경제적 실질, 제3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의 필요에 따라 다면적으로 구성되는 개념으로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같은 차원에서 최근 일본에서는 기존의 다수설인 채권설에 대한 비판으로, ① 신탁제도의 특수성 내지 독자성을 부정하고 민법 내지 상법 등 기본 법률의 체계 내에서 파악하여야 한다는 견해, ② 민사신탁과 상사신탁을 구별하면서 전자는 신탁재산의 존재와 위탁자의 의사가 본질적인 요소이지만, 후자는 상사성을 가지는 계획과 시장의 의사가 본질적인 요소라는 견해, ③ 신탁제도는 신인관계를 기초로 한 독자적인 시스템이라는 견해, ④ 신탁의 이용현황을 기준으로 재산처분형, 계약형, 제도형으로 구별하는 견해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안성포, “신탁의 기본구조와 그 법리 –일본에서의 논의를 중심으로-”, ⌜중앙법학⌟ 제9집 제2호(중앙법학회, 2007. 8.), 765~769쪽.

    Ⅱ. 사업신탁의 개관

       1. 사업신탁의 기원

    영미법상 사업신탁제도는 19세기 후반 산업혁명기 부터 시작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폭발적인 부의 축적은 자본의 집약과 사업의 운용을 위한 도구로서의 기업조직(business organization)에 대한 막대한 수요를 탄생시켰는데, 특히 미국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던 메사추세츠주에서 이러한 수요가 증대됨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기업조직이 등장하게 되었다. 메사추세스주의 경우 제조회사법(Manufacturing Corporation Act 1809), 일반회사법(General Corporation Act 1851) 등을 제정하여 기업조직의 일유형인 회사제도의 정착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규제주의로 인해 그 활용이 원만하지 아니하였다. 이에 대한 반향으로 설립절차, 설립목적, 투자자 및 기관의 구성, 다른 기업조직과의 연관성 등에 있어 원칙적으로 제한이 없었던 (그렇지만 유한책임이라는 효과에서는 회사와 동일하였던) 사업신탁제도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여러 사업 분야 중 특히 부동산의 취득 내지 개발 업무를 영위하는 기업조직으로서의 활용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러한 제도의 기원에 비추어 사업신탁을 흔히 메사추세츠주 신탁(Massachusetts trust)이라고도 부른다.3)

       2. 개념

    사업신탁의 발상지인 미국의 판례법에서는 “사업신탁은 기업조직의 한 형태로서 신탁에 의해 재산이 수탁자에게 양도되며 수탁자는 신탁재산을 기초로 발행한 양도 가능한 수익증권을 가진 수익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 재산을 관리·운용하는 관계이다. 이러한 수익증권은 신탁재산에 대한 지분을 표시하는 증서로서 회사의 주식과 같은 방식으로 발행·유통되고 신탁재산에 관한 수익은 지분별로 수익증권의 소유자들에게 배분되며 신탁의 청산시에도 마찬가지이다”라고 정의하여 왔다.4) 즉 위와 같은 개념정의에 의하면 사업신탁은 위탁자의 재산이 수탁자에게 이전되고 수탁자가 발행하는 수익증권의 인수를 통하여 수익권을 보유하게 되는 수익자들을 위하여 수탁자가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조직적 관계로서, 결국 사업신탁은 주식회사의 기본구조인 주주, 이사, 자본이라는 3각 구도를 위탁자 겸 수익자, 수탁자, 신탁재산의 관계로 재편한 기업조직의 일 유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사업신탁은 단체법적 성격과 유상성이 강조되는 기업조직이라는 점에서 계약법적 성격이 강조되는 일반 민사신탁과 구별되며, 사업신탁이 투자자인 수익자의 유한책임을 중심으로 발전된 개념5)인 반면 개정 신탁법상 유한책임신탁은 신탁실무상 이용되던 책임재산한정특약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수탁자의 유한책임(수탁자의 책임을 신탁재산의 범위로 제한)을 염두에 두고 제정된 것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이와 같이 유한책임신탁이 수탁자의 유한책임만을 의미할 뿐 구성원(투자자인 수익자)의 유한책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개정 신탁법상 유한책임신탁제도만으로는 신탁제도가 자본 집약과 사업 운용을 위한 기업조직으로서 활용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사업신탁에 관한 새로운 독자적인 입법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3)오성근, “사업신탁의 기업조직적 특성과 수익자책임법리”, ⌜기업법연구⌟ 제22권 제1호(한국기업법학회, 2008. 3.), 421쪽.  4)Hecht v. Malley, 265 U.S. 144 (1924) 참조.  5)미국 판례법상 사업신탁은 투자자인 수익자의 유한책임에 관한 법리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는데 관련 법리로는 메사추세츠 법칙, 텍사스 법칙, 캔사스-워싱턴 법칙 등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오성근, 앞의 논문, 422~424쪽 및 433~449쪽 참조.

    Ⅲ. 독자적인 법제정의 필요성

       1. 신탁법 v. 사업신탁법

    개정 신탁법은 사업신탁의 기업조직적 특성을 반영하여 여러 가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탁이 당사자 사이의 계약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이에 일반적인 민사신탁에 관한 법리를 담은 규정들이 공존하고 있는바(예를 들어 수탁자의 비용상환청구권, 보수청구권 등), 이처럼 계약법리가 적용되는 민사신탁과 기업조직법리가 적용되는 사업신탁을 하나의 법제 하에 규율하는 것은 법체계상으로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법해석론상으로도 혼란의 여지만 가중하게 된다(민법과 상법이 하나의 법률로 통합되어 있는 경우를 상상해 보면 될 것이다). 이러한 입법적 문제점은 공동기업의 성질을 지닌 사업신탁의 독자성과 특수성을 간과한 것으로서 그 활용가능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역으로는 기초적인 민사법으로서의 신탁법의 제정취지를 무시하는 입법방향이 될 수 있다.6)

    그렇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사업신탁을 규율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이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답은 사업신탁만의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다. 사업신탁이 활성화된 미국의 경우 일찍이 판례법을 통하여 사업신탁만의 독자적인 법리를 정립하여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 개념과의 혼동으로 인하여 법적 규율의 불확실성이 발생하게 되자 2009년에는 보통법상 신탁에 관한 법률인 표준신탁법전(Uniform trust code, 이하 “UTC”)과는 별개로 사업신탁만의 독자적인 법률인 통일제정법상신탁법(Uniform statutory trust entity act, 이하 “USTEA”)을 제정하였다. 한편, 정책적으로 사업신탁의 이용을 장려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경우에도 사업신탁의 법률관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신탁의 기본법인 수탁자법(Trustees act)과는 별도로 2004년에 사업신탁법(Business trusts act, 이하 “BTA”)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이 또한 참고해 볼 만한 입법이다.

    흔히 어떠한 제도에 대한 선택은 그 제도에 관한 정보의 부족 내지 제도적 미비 등에서 오는 불안(비용)과 이를 취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용(이익) 사이에 저울질을 함으로써 전자가 후자를 초과하지 않는 경우에 한하여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업신탁의 활성화를 위한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사업신탁의 법률관계를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중요한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사업신탁만을 위한 독자적 입법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논의해 보아야 할 것이다.

       2.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v. 사업신탁법

    연혁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의 신탁은 재산관리·운용의 수단이 아닌 주로 재산증식의 수단, 즉 금융 목적의 금전신탁 내지 재산신탁으로 이용되어 왔다. 이에 신탁업무는 은행업무와 유사한 분야로 취급되어 계속적·반복적으로 신탁업무를 수행하는 신탁업자에 대해서는 은행과 유사하게 엄격한 행정감독과 통제가 이루어져 왔으며 이러한 행정규제는 신탁업법을 거쳐 현재 자본시장법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2012. 3. 26.자 금융위원회 공고 제2012-61호로 입법 예고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서는 “영업”의 경우는 투자자의 피해 가능성, 신탁업자의 경영건전성 저해 우려, 사업의 비전문성 등을 이유로 신탁재산의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는바, 사업신탁의 기업조직적 특성을 고려하면 수탁자가 신탁업무를 비영리로 하거나 1회적으로 수행하는 경우란 상정하기 어렵고 이에 더하여 투자자 확보를 위한 노력을 경주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결국에는 ⌜사업신탁 → 신탁에 관한 영리성, 계속·반복성 및 대고객성 → 금융투자업 → 자본시장법 적용 → 영업에 대한 신탁금지 → 사업신탁 불허⌟와 같은 논리모순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논리모순을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이는 자본시장법이 투자자 보호라는 기능적 규제에 치우쳐 당해 행위를 수행하는 업자의 성질과 수행하는 업무의 개별적 특성을 간과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종래 우리나라에서는 신탁을 단순히 금융업의 일부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신탁업자 = 금융업자”라는 인식이 정형화되었고 이에 신탁업자가 하는 업무는 “금융투자상품을 판매·중개하는 업무”로 한정되는 것으로 판단해 버린 나머지 신탁업자가 수행하는 업(業)의 범위가 부당히 축소되어 버렸기 때문이다.7) 그러나 개정 신탁법이 사업신탁을 도입한 입법취지는 신탁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하여 신탁이 회사와 같은 공동기업으로서 활용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고자 함에 있으므로 어떠한 방향으로든 현행 자본시장법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하여는 세 가지 입법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제1설은 신탁업을 아예 자본시장법의 규율대상에서 제외해 버리는 방법, 제2설은 자본시장법의 체계를 그대로 두고 신탁업자에게 사업신탁을 전면 허용하는 방법, 제3설은 신탁업자 및 신탁의 유형을 분리하여 당해 신탁업자가 금융기관이거나 금융업무(금융투자상품을 판매·중개하는 업무)를 신탁업무로 하는 자에 한하여 자본시장법과 같은 행정규제법을 적용하고 나머지 유형의 신탁업자에게는 이를 적용하지 않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우선 제1설의 경우는 신탁업자가 행하는 업무의 성질이 사실상 금융업무인 경우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즉 어떤 신탁업자가 수행하는 업무가 “금융투자상품을 판매·중개하는 업무”인 경우에는 이는 기본적으로 투자자를 보호해야 하는 영역에 해당하고 이와 같은 업무를 하는 신탁업자는 금융기관과 다름없기 때문에 경영에 대한 신뢰성과 건전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따라서 금융업무를 수행하는 신탁업자에 대해서는 은행과 마찬가지로 진입, 지배구조, 재무건전성, 영업행위 등에 대한 규제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제2설의 경우는 신탁업자가 금융기관인 경우에 문제가 있다. 즉 신탁업자가 금융기관인 경우 일반적으로 신탁된 사업에 관한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사업의 운용·관리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고 이에 경영전략에 있어 보수적인 자세만을 취하거나 아예 제3자에게 재위탁을 하게 되어 당초에 설정된 신탁의 의미가 형해화되는 경우가 다분하게 된다. 또한 금융기관인 신탁업자가 제조업과 같은 영업의 수탁자가 되는 경우에는 결국 금융기관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이는 우리 법제에서 금지하고 있는 금산분리의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고려해 보면 제2설의 입법방향도 채택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8)

    그렇다면 제3설은 어떠한가? 제3설의 입법 방향은 금융기관과 금융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영역을 자본시장법에서 분리하여 독자적인 규율을 하자는 취지로서, 우선 당해 신탁업자가 은행 등과 같은 금융기관인 경우에는 다른 신탁업자와의 구별이 쉬울 것이지만 만약 금융기관이 아닌 신탁업자가 금융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는 금융업무와 비금융업무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가 문제될 수 있다. 이는 신탁업자가 영위하는 “업(業)”의 의미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관한 쟁점과 연결되는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우리 판례9)는 구 증권거래법상 증권업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안에서 어떠한 업무가 증권을 취급하는 업무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업무의 수행이 증권거래법의 적용을 받는 증권업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영업성의 징표(영리 목적 + 계속·반복성) 이외에도 증권의 발행·판매·인수 여부, 적극적으로 청약을 유인하는 등의 광고 여부, 투자와 관련한 자문제공 여부, 타인을 위한 거래참가 여부, 고객확보를 위한 노력 여부 등의 추가적인 사정(대고객성)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결국 이와 같은 판단은 업자에 대한 행정규제법 적용의 필요성이라는 견지에서 단순히 “영리 목적 + 계속·반복성”만이 아니라 “광고, 자문, 용역, 마케팅 등과 같이 투자자를 고객으로 하는 어떠한 서비스 행위”를 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행정규제법이 적용되는 “업(業)”의 범위를 판단하자는 취지로 이해되며, 현행 자본시장법이 예정하는 신탁“업”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과잉규제의 문제를 초래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보면 정책적으로 타당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와 같이 금융기관인 신탁업자와 금융업무를 수행하는 신탁업자가 나머지 신탁업자와 분별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는 경우라면 제3설의 입법 방향이야 말로 사업신탁의 활성화라는 개정 신탁법의 목적과 투자자 보호라는 자본시장법의 행정규제적 목적을 적절히 융화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일본의 입법례를 보면 금융기관이 신탁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는 금융기관의 신탁업무 겸영 등에 관한 법률(金融機関の信託業務の兼営等に関する法律)상 행정규제를 받게 되고(이는 신탁업자가 금융기관인 경우를 규율하는 법률에 해당한다), 만약 신탁업자가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경우에는 금융상품거래법(金融商品取引法)상 행정규제를 받게 되며(이는 금융기관이 아닌 신탁업자가 금융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를 규율하는 법률에 해당한다), 다만, 이러한 행정규제법 이외에도 신탁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별도의 신탁업법(信託業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입법체계는 제3설의 입법 방향에 대하여 상당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처럼 제3설의 입법 방향이 긍정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자본시장법을 적용받지 않는 신탁업자, 즉 “금융기관도 아니고 금융업무를 수행하지도 않으면서 신탁을 영업으로 하는 자”에 대하여는 그 투자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에 관한 문제가 남게 된다. 우선 신탁재산의 관리 및 운영이 신탁의 목적이 되는 사업신탁의 경우에는 이러한 신탁을 계속⋅반복적으로 설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기업의 영업활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것일 뿐, 금융투자상품의 판매와 같은 대고객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자본시장법이 적용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아가 신탁재산을 출연하는 위탁자의 보호는 수탁자 사이에 체결되는 계약과 민사 법리로 해결할 영역이지 행정규제법인 자본시장법으로 규율할 영역이 아니다. 다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투자자를 모집하는 사업신탁의 경우에는 행정규제법적 영역에서 투자자 보호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 있다. 그런데 투자자에 대한 보호 장치는 업자 자체에 대한 규제로서도 달성할 수 있지만 증권의 발행 행위에 대한 규제로서도 가능한바, 회사법에서 주식회사의 설립에 대한 각종 규제는 완화하면서도 주식 내지 사채와 같은 증권의 발행에 대하여는 엄격한 절차를 취하도록 하고 있는 것처럼 반드시 업자에 대한 규제가 아니더라도 증권의 발행 행위에 대한 규제로서도 투자자의 보호는 가능할 수 있다.10) 아울러 만약 당해 신탁업자의 행위가 단순한 증권의 발행행위를 넘어 대고객적 차원에서 금융투자상품을 판매·중개하는 행위로 평가되는 경우에는 원점으로 돌아가 당해 신탁업자를 금융업무를 수행하는 금융투자업자로 보아 자본시장법을 적용하면 될 것이고, 나아가 꼭 신탁업자를 규제하지 않더라도 수익증권 내지 신탁사채의 인수와 중개를 다른 금융투자업자가 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금융투자업자에 대한 규제로서도 투자자 보호라는 소정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3. 소결

    이상과 같이, 사업신탁에 관한 법적규율은 전통적인 계약법리가 적용되는 민사신탁과는 구별되어야 하고, 금융투자업자에 대한 행정규제 측면을 다루는 영역과도 제도적으로 구별되어야 하며, 이에 전자의 경우는 신탁법과 분리된 독자적인 사업신탁법을 제정하는 방향으로, 후자의 경우는 자본시장법의 업자규제에서 사업신탁을 제외하는 방향으로 입법 방침을 설정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하에서는 사업신탁에 관한 독자적인 입법을 마련한다는 전제하에 어떠한 내용을 포함하여야 하는지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6)2006년에 신탁법을 전면 개정한 일본의 경우도 신탁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신탁법을 개정할 것이 아니라 조만간 상사신탁에 관한 독자적인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中野正俊, “改正信託法評論”, ⌜亞細亞法學⌟ 第41卷 第2号(亜細亜大学法学研究所, 2007. 1.), 55~80쪽.  7)실제로도 신탁업을 금융투자업의 하위개념으로 설정한 입법례는 찾기 어렵다고 한다. 손상호, “자본시장통합법(안)의 가능성과 한계”, ⌜주간 금융 브리프⌟ 제15권 제24호(한국금융연구원, 2006.), 9쪽.  8)성희활, “신탁법과 자본시장법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에 대한 연구”, ⌜비교사법⌟ 제20권 제3호(한국비교사법학회, 2013. 8.), 644~645쪽.  9)대법원 2006. 4. 27. 판결 2003도135[“증권업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영리의 목적과 동종의 행위를 반복하는지 여부 외에 위 영업형태에 따라 증권발행 여부, 판매단에 참가하거나 증권인수 여부, 주문에 응하기 위하여 증권의 재고를 유지하는지 여부, 상대방의 청약을 유인하는지 여부, 스스로 매매업자나 시장조성자로 광고하는지 여부, 부수적으로 투자자문을 제공하는지 여부, 타인의 돈이나 증권을 취급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증권거래를 수행하는지 여부, 지속적인 고객을 확보하는지 여부, 타인을 위하여 거래에 참가하는지 여부 등의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10)성희활, 앞의 논문, 646쪽.

    Ⅳ. 사업신탁에 관한 구체적인 입법론

       1. 사업신탁에 대한 법인격 인정 여부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신탁의 주요한 특징에는 재산분리기능 내지 도산격리기능이 있지만, 이러한 신탁의 기능은 때로는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우선 기존의 신탁법리에 의하면 수탁자는 자신의 명의로 신탁사무를 처리하는 것이므로 (책임제한특약이 있거나 유한책임신탁이 아닌 한) 거래상대방인 제3자에 대하여 수탁자의 고유재산으로 책임을 져야 하고 이 경우 수탁자에 대한 재산분리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신탁의 구성원이 신탁의 채권자에 대하여 대외적인 책임을 부담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11) 대내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수익자는 수탁자에 대하여 비용상환의무와 보수지급의무를 부담하게 되므로 이러한 경우에도 사실상 구성원의 유한책임이 배제된다. 한편, 이와 같은 미비점은 당사자 사이의 계약으로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거래비용이 발생하게 된다.12)

    이러한 신탁의 재산분리기능 내지 도산격리기능의 한계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구성원의 유한책임을 완벽히 실현할 수 있는 방어벽(entity shield)의 설정, 즉 사업신탁에 법인격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떠한 단체에 법인격을 인정할지 여부는 입법정책적 문제에 불과하며 그러한 정책적 검토과정에서는 법인격의 허부에 따라 어떠한 이해상충이 발생하게 되고 이에 대하여 법률이 어떠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논의가 필요한 것이지 당해 단체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단순한 계약관계를 넘어 기업조직의 실질을 가지고 있는 사업신탁의 경우는 계약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기업조직법적 패러다임을 적용하여야 할 필요가 있고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사업신탁에 법인격을 인정여부에 관한 정책적 논의가 필요하게 된다. 이에 남는 문제는 사업신탁에 법인격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와 그로 인한 문제점 사이의 비교형량에 있게 된다.

    먼저 법인격의 필요성에 관하여 살펴보면, ① 신탁의 구성원으로부터 분리된 법인격은 기업조직의 핵심적 특성인 재산분리기능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게 하는 기능적 수단이 된다. 위탁자, 수탁자 및 수익자로부터 독립한 제3의 인격이 사업재산을 소유하고 권리·의무관계의 귀속 주체가 되는 경우에는 대내외적으로 신탁의 구성원이 사업위험을 부담할 여지가 없게 되고 이에 구성원의 무한책임의 문제점은 간단히 해결된다(다만, 법인격 부인론이나 업무집행지시자 등의 책임과 유사한 법리로 유한책임을 제한하는 경우가 생길 수는 있다). ② 또한 법인격이 인정될 경우 신탁에 관한 법률관계가 간명해 진다. 즉 사업신탁 자체가 권리·의무의 귀속 주체가 되는 경우에는 신탁의 법률관계가 수탁자의 고유의 것과 명확히 구별되므로, 이에 기본적으로 당해 거래의 주체를 누구로 할지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고, 구체적으로는 수익증권과 신탁사채의 발행인을 누구로 할지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며, 증권의 가치평가에 있어서도 수탁자의 신용과 분리하여 당해 사업신탁에 한정한 평가가 가능하게 됨으로써 자본조달의 효용성이 제고된다. 이처럼 사업신탁의 법인격은 법적 주체의 불명확성에서 비롯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게 되고 이에 법적 안정성과 명확성을 도모함으로써 그에 따라 파생되는 거래비용을 절약하게 된다.

    물론 법인격이 인정됨으로 인하여 대두되는 새로운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① 대표적으로 법인세와 같은 조세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입법례를 살펴 볼 때 법인격의 존부와 법인세의 부과는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신탁에 법인격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당해 신탁이 영업활동을 하는 단체(association and business objective)거나 설령 투자신탁의 경우라 하더라도 수익자가 신탁재산을 운용할 수 있는 권한 내지 수종의 지분소유권(multiple classes of ownership interests)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이를 법적 실체로 인정하여 과세를 하며,13) 특히 재무성 규칙(Treasury regulation) §301.7701-4 (a)-(b)에서는 사업신탁의 경우 법인격 있는 기업주체와 동등하게 과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일본의 경우에도 (비록 신탁에 대하여 법인격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2006년 신탁법 개정 이전에도 특정신탁에 대하여는 법인세를 과세하였으며, 신탁법 개정 이후에는 2007년에 법인세법을 개정하여 특정신탁 이외에도 수익증권발행신탁(특정수익증권발행신탁은 제외), 목적신탁, 자기신탁, 증권투자신탁 및 국내공모 등에 의한 투자신탁 이외의 투자신탁을 법인과세신탁으로 분류하여 법인세를 과세하고 있다.14) 그리고 우리 학계에서도 신탁법의 개정으로 인하여 다양한 신탁의 형태가 출현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조세회피방지와 실질과세의 원칙에 따라 신탁에 대하여 법인과세를 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15) 따라서 조세부담의 문제는 사업신탁에 법인격을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논거로 활용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② 다음으로 법인설립에 있어 행정상 규율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사업신탁의 성립요건으로 행정청의 허가 등과 같은 절차를 요구할 경우이거나 최저 자본, 설비, 인력 등과 같은 기준을 만들어 진입규제를 두는 경우에는 (법인격이 필요 없는 경우에 비해) 사업신탁의 활용이 저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전적인 관점에서 사업신탁에 대한 법인격 부여절차와 진입규제의 정도를 어떠한 방식으로 규율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일 뿐 사후적인 관점에서 사업신탁에 법인격을 부여하였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사업신탁과 유사한 기능을 가진 회사의 경우 준칙주의를 취하고 있으며 설립요건을 완화하여 엄격한 진입규제를 두고 있지 않으므로 제도 간 형평의 관점에서 볼 때 유독 신탁의 경우만 과중한 성립요건을 강제할 합리적인 이유도 없으므로 결국 이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이 부분 쟁점 또한 사업신탁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을 저지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통적으로 볼 때 어떠한 투자자가 기업조직형태를 선택함에 있어서는 회사의 법인격으로 인하여 향유할 수 있는 이익(구성원의 유한책임)과 신탁의 세제상 이익(도관이론에 따른 이중과세 회피) 사이를 저울질 하여 전자가 후자를 능가하는 영역에 있어서는 회사를, 후자가 더욱 필요한 영역에 있어서는 신탁이라는 제도를 선택하게 되었다.16) 그러나 세제상 이익이라는 효용은 사업 위험이 큰 분야(구성원의 유한책임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에서는 그다지 매력적인 요소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신탁이 기업조직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데 한계가 있게 되므로 사업신탁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형성이 필요한 현 시점에 있어서는 법인격의 효용성과 필요성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신탁이 단순히 자금조달을 위한 기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사업신탁이라고 하여 일률적으로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은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사업신탁의 법인격을 인정하더라도 어느 범주에 까지 법인격을 인정할지 여부에 관하여도 심도 있는 논의와 입법적 결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 수탁자의 범위 확대

    현행 자본시장법상 신탁업자에 대한 진입규제와 신탁재산의 범위에 대한 규제로 인하여 신탁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사업신탁의 활용가능성이 봉쇄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주로 수탁자의 운용능력(지식, 경험, 영업상 노하우, 생산 및 판매시설 등)을 활용하기 위한 경우나 사업운영자가 자기신탁을 설정하여 신탁 전후로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금융업이 아니라) 제조업을 영위하는 회사가 수탁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보면 투자자 보호 및 금융투자업 육성을 입법목적으로 하는 자본시장법에서 신탁업자의 범위를 규율하는 것은 법체계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따라서 다방면에서의 사업신탁의 활용가능성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수탁자(특히 신탁을 영업으로 하는 수탁자인 신탁업자)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입법방향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자본시장법을 개정하기 보다는 독자적인 사업신탁법을 제정하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투자자에 대한 보호 장치로서 수탁자의 건전성을 고려해야 하는 측면이 있지만 이는 진입규제 내지 신탁의 설정단계(수탁자 선정단계)에서 부실한 수탁자를 제거하는 방법 보다는 신탁의 설정 이후 구체적인 투자자 모집단계 내지 증권발행단계에서의 건전성 규제를 통하여서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므로, 양자를 비교하여 볼 때 사전적 억지책인 전자의 방법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3. 수탁자의 권리?의무에 대한 유연성 확보

    전통적인 영미법상 신탁법리에서는 수탁자는 위탁자와 사이의 신임관계에 따라 당연히 신인의무(fiduciary duty)를 부담한다고 보고 있고 우리 신탁법에서도 수탁자의 신인의무를 구체화하는 규정으로 선관주의의무, 충실의무 및 자기집행의무를 두고 있다. 한편, 신탁관계에 있어 수탁자가 향유하는 권리는 이와 같은 의무의 한계 내에서만 정해지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에 수탁자는 신탁관계에서 파생되는 이익을 향유할 수 없고(이익향수금지의무), 원칙적으로 자신의 업무를 제3자에게 위임할 수도 없다(자기집행의무)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통적인 견해는 신탁이 대리, 위임과 같이 본인의 활동영역을 넓히기 위한 1 대 1의 법률관계임을 전제로 하는 개인법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개정 신탁법이 다양한 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수탁자의 기능분리현상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전통적인 견해에 대해 수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신탁선언을 통한 자기신탁이 가능해짐에 따라 위탁자, 수탁자 및 수익자의 지위가 중첩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탁자가 사업집행을 위한 도구로서 소극적인 기능만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처럼 수탁자의 기능이 세분화됨으로써 개별·구체적인 사안에 있어 수탁자의 권한 내지 의무의 구성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처럼 수탁자의 권리·의무에 대한 기존의 견해가 수정될 필요가 있는 영역으로는 우선 수탁자의 이익향수금지의무가 있다. 개정 신탁법 제36조는 수탁자의 이익향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익향수금지규정은 수탁자는 신탁재산으로부터 정당한 보수 이외에는 어떠한 이익도 취득할 수 없다는 영미법상 No profit rule에 뿌리를 두는 것으로 수탁자의 충실의무를 강화하고 신탁계약의 위반행위를 억제하는데 입법 취지가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익향수금지의무를 획일적으로 적용할 경우 자기신탁을 설정한 수탁자는 신탁이익의 일종인 수익권을 취득할 수 없어 신탁의 수익자가 될 수 없게 되고 이에 자익신탁형 자기신탁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수탁자가 수익자의 지위에서 신탁의 이익을 향유하는 것 자체가 문제된다고 보기 어렵고, 수탁자의 권한 남용은 수탁자의 충실의무에 관한 법리로 해결할 영역이지 수익권의 취득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규율할 것은 아니다. 또한 회사가 일단 자익신탁형 자기신탁을 설정하여 수익권을 보유하고 있다가 이를 매도함으로써 점진적으로 자금조달을 도모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회사가 보유하는 수익권을 자신의 주주들에게 배당함으로써 스핀오프(spin-off)와 유사한 형태의 조직변경을 계획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사업에 대한 지배권 유지의 차원에서 수익권을 외부에 분산하지 않고 스스로 보유하고 있을 필요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굳이 수탁자의 자기신탁에 대한 수익권을 취득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17) 특히 개인법적 사고가 아닌 기업조직법적 사고가 반영되는 사업신탁법을 입법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이익향수금지의무에 대한 개선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이익향수금지의 입법 취지가 사업을 운영하는 자에 대한 충실의무를 담보하고 각종 위반행위(대리인 비용)를 억지하기 위한 데에 있는 것이라면 이를 실현하는 방법으로는 모든 이익의 향수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는 과잉규제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수탁자의 자율성 및 사적자치와 조화를 이루는 방향을 고려하여 이익의 유형을 구별한 후 금지와 허용의 범위를 세밀하게 조정하는 방법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처럼 금지와 허용의 범위를 조정함에 있어서는 회사법이 이사의 충실의무의 일환으로서 경업금지의무, 자기거래 금지의무, 회사기회유용 금지의무의 규정을 두고 있고 각각의 요건과 효과를 달리 규정하고 있는 것을 참고해 볼 수 있다.18)

    한편, 기존의 견해가 수정될 또 다른 영역으로는 수탁자의 자기집행의무가 있다. 수탁자의 자기집행의무는 수탁자는 위탁자와의 신임관계에 기하여 신탁사무를 수행하는 자이므로 원칙적으로 그 신임에 부응하여 스스로 신탁사무를 수행하여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그러나 신탁재산의 다양화와 신탁사무의 고도화·복잡화·전문화에 따라 수탁자가 단독으로 신탁사무를 처리하는 것보다 이를 당해 분야의 전문가인 제3자에게 위임하는 것이 적절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동산개발신탁에 있어 사업시행자가 안정적인 자금조달을 위하여 토지 등을 포함한 당해 사업 일체를 수탁자에게 신탁하는 경우 수탁자는 사업편의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므로 구체적인 업무집행에 있어서는 제3의 전문가 또는 위탁자19)인 사업시행자에게 위임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한 투자신탁이나 연금신탁과 같이 신탁재산을 운용함에 있어 전문화된 지식이 필요한 경우에는 수탁자는 그 수탁업무를 국내외 운용·관리전문가에게 위탁할 필요가 있다. 이에 신탁법 개정과정에 있어 다른 나라의 입법례20)를 고려하여 신탁사무의 위임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자는 견해가 있었으나 민사신탁에서 개인이 수탁자인 경우 수익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수탁자의 재량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고 민법상 대리인이나 수임인도 재위임을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인 점 등을 고려하여 개정 신탁법에서는 수탁자의 자기집행의무를 원칙적으로 유지하기로 하였다고 한다.21) 그러나 개정 신탁법 제42조 제1항에 의하면 신탁행위로 달리 정하거나 달리 정함이 없는 경우 정당한 사유가 있고 수익자의 동의를 받은 경우에 한하여 제3자에게 신탁사무를 위임할 수 있는데 신탁의 설정시 위임이 필요한 신탁사무의 범위를 일일이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이처럼 신탁행위에서 달리 정함이 없는 영역에 있어서는 정당한 사유와 수익자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추상적인 개념인 정당한 사유는 그 입증이 어렵고 수익자가 다수인 경우에는 전원 동의를 받기 어려우므로 결국 수탁자의 신탁사무 위임의 가능성은 실천적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22) 따라서 신탁 운영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수탁자로 하여금 신탁사무의 위임 여부를 재량 하에 결정할 수 있도록 신탁법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으며,23) 신탁사무의 올바른 처리에 관한 위탁자 및 수익자의 신뢰는 수탁자에 있어서는 수임인에 대한 선임·감독책임과 해임에 관한 법리로서 수임인에 있어서는 위탁자에 대하여 수탁자와 동일한 책임을 부담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방향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4. 수익자의 권리 보호 강화

    신탁제도를 이용한 기업조직 구성의 가장 큰 장점은 사적자치에 따라 유연한 지배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조직 내외부간 정보의 비대칭, 조직의 복잡화로 인한 다면적인 이해관계 형성, 수탁자의 기회주의적 행동 등으로 인하여 이와 같은 사적자치가 남용될 가능성이 있고 특히 수탁자에 대한 진입규제를 두지 않는 경우에는 이러한 남용의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신탁관계인 중 위탁자의 경우에는 신탁의 설정단계에서 자신의 권리를 보호할 기회를 가지게 되지만 수익자에게는 이러한 기회가 부여되기 어려울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탁자와 수탁자가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반면 수익자의 이해관계와는 상충하는 구도(예를 들어 위탁자가 타익신탁형 자기신탁을 설정하는 경우, 위탁자가 자신이 지배주주인 신탁회사를 설립하여 신탁관계를 설정한 후 제3자를 수익자로 지정하는 경우 등)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게 된다.24) 이와 같은 문제점으로 인하여 수익자의 권리 보호와 신탁제도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입법방안의 모색이라는 정책적인 논의가 필요하게 된다. 수익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안으로는 크게 신탁을 운영하는 주체인 수탁자에 대한 적절한 지배구조의 확보, 이해상충에 대한 규제 및 수탁자의 책임 강화로 구별해 볼 수 있다.

    우선, 수탁자의 지배구조를 조정하는 방안에 관하여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수탁자의 기관 구성에 있어 위탁자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위탁자가 수탁자의 지배주주가 되는 경우에는 수탁자의 기관을 통하여 신탁사무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고 이에 수익자의 이익을 해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수탁자의 기관(이사, 감사 등) 중 일정 수 이상을 신탁관계 내지 지배주주로부터 독립한 자를 선임하도록 함으로써 수탁자의 독립성과 업무처리의 공정성을 도모할 수 있다.25) 다만, 이와 같은 방안은 위탁자가 자기신탁을 설정하는 경우 수탁자가 수 개의 신탁을 동시에 운영하는 경우 등에 있어서는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외에도 위탁자가 대부분의 수익권을 가지고 다른 수익자들은 적은 지분의 수익권만을 가지는 경우를 예정해 보면 소수수익자의 보호를 위하여 수탁자의 선임·해임에 있어서 소수수익자의 제안권과 집중투표권을 마련하는 등 수익자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법도 함께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신탁의 운영에 있어 이해상충에 대한 규제에 관하여 살펴보면, 수탁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수익자의 이익을 위하여 신탁사무를 처리하여야 한다는 신인의무를 강조하되,26) 수탁자의 자율성 및 운영의 효율성과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신인의무의 구체적인 유형을 세분화하여야 하며,27) 이를 위반할 경우 수탁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부과하도록 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28) 또한 수익자에게는 신탁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공익권(의결권, 정보이용권, 감시권 등)을 부여하고 이를 완전히 배제하는 신탁규정은 강행규정에 반하는 것으로 효력이 없는 것으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29)

    마지막으로, 수탁자의 책임 강화에 관하여 살펴보면, 수탁자의 수익자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면제하는 규정이나 고의·중과실인 경우에도 면책하는 규정에 관하여는 이를 무효로 하고,30) 수탁자의 행위에 대한 유지청구권 및 대표소송권31)을 인정함으로써 책임추궁제도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다만, 위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수익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모든 상황을 예정하여 이를 사전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위탁자와 수익자 사이, 여러 수익자들 사이, 수탁자가 회사인 경우 위탁자/수익자와 수탁자의 주주32)사이의 이해관계가 각각 충돌하는 경우 등과 같이 개별·구체적인 사안에 있어 적합한 해결방안을 제공하기 위한 법리의 개발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향후 사업신탁제도가 정착해 감에 있어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게 될 것이다.

       5. 임의법규성

    사업신탁법이 제정될 경우 이는 신탁을 기업조직으로 활용하는 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사법법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조직 구조의 자유로운 설계와 그 유연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사적자치의 원칙을 최우선의 근본이념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강행법규로 규율하는 영역이 넓어질수록 이에 반하는 신탁행위가 무효가 되는 경우가 증가하게 될 것인바 사업신탁의 기업조직적 특성을 고려하여 보면 이와 같은 과도한 규제는 다수 당사자의 이해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사업신탁법상 규정들은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배제할 수 있는 임의법규(default rule)이어야 한다고 본다.

    다만, 사업신탁의 설립 및 해산, 수탁자의 책임, 수익자의 권리, 조직변경 등과 같이 단체법적 거래의 안전과 이해관계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영역에 있어서는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이를 강행법규(mandatory rule)로 규율함이 바람직할 것이다.33)

       6. 기타 쟁점

    6.1. 소극재산 및 고용관계 승계에 관한 논의

    개정 신탁법에서는 적극재산과 소극재산의 유기적 일체인 영업을 신탁하는 것을 허용하면서도 수탁자에게 소극재산이 어떠한 방식으로 승계되는지(면책적 채무인수인지 아니면 중첩적 채무인수인지)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또한, 영업은 일정한 영업목적에 의하여 조직화된 인적·물적 조직의 유기체이므로 영업의 승계는 이에 포함된 고용관계의 승계를 수반하게 될 것인데 현재 학계에서는 수탁자의 고용승계 여부에 관한 뚜렷한 논의가 진행된 바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쟁점들은 신탁의 설정 후 사업을 영위함에 있어 누가 어떠한 책임을 지는지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문제이므로 앞으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영역이며 이에 관한 법률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법률의 차원에서 사업신탁 설정시 소극재산 및 고용관계 승계의 절차와 효과에 관한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6.2. 사업신탁 수익증권의 상장 허용 여부

    개정 신탁법에서는 수익권의 양도성을 제고하고 자본조달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수익증권발행신탁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수익권을 증권화하여 그 양도성을 제고하였다고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가 이에 접근할 수 있는 공공의 장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제도의 도입 취지가 제대로 발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싱가포르와 같이 사업신탁 수익증권의 거래소 상장34)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며, 개정 신탁법의 입법 당시 수익증권을 주식회사의 주권이나 사채권과 유사한 유가증권으로 설계한 점35)을 고려하여 보더라도 이와 같은 상장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할 것이다.36) 나아가 이처럼 수익증권의 상장을 허용할 경우 증권거래소의 상장심사기준이 적용되어 우량한 사업신탁과 그렇지 않은 사업신탁이 자연스레 분별될 수 있으므로 투자자본의 효율적 배분이 가능하게 되고, 상장 전후로 내부자거래, 공시규제와 같은 증권법상 법리가 적용되게 되게 되어 투자자 보호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6.3. 시리즈 신탁의 도입 여부

    미국 USTEA 제4장에서는 하나의 사업신탁 내에서 특정 재산을 다른 재산으로부터 격리·분별한 후 이를 정관에 기재함으로써 생성되는 시리즈 신탁(Series trust)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신탁의 영역에 시리즈 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델라웨어주 제정법상 신탁법(Delaware statutory trust act)을 계수한 것으로 델라웨어주에서는 자산운용의 편의성(자산의 유형별 분리를 통한 운용의 편의성 증대)과 사업비용의 절약(기업조직 설립비용, 의사결정비용, 의견수렴비용 등의 절약) 등의 이점37)으로 인하여 최근 시리즈 제도가 상당히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38)

    그리고 이러한 시리즈 제도의 이점은 하나의 기업조직이 다양한 유형의 사업을 운용하면서도 각 사업에 내재된 위험이 다른 사업으로 전가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므로 이에 “지배구조의 단순화”와 “책임격리를 통한 위험분산”이 필요한 영역(예를 들어 연구소, 병원, 법무법인과 같은 전문가 집단이 위험도가 서로 다른 다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우 등)에 있어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시리즈 제도에 대하여는 ① 세법 내지 도산법상 쟁점의 불명확성, ② 채권자 보호의 문제, ③ 비용절감 효과의 미미, ④ 책임격리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문 등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고,39) ⑤ 무엇보다 동제도의 역사가 길지 않은 관계로 그 발상지인 미국에서 조차 실무계가 많지 않다는 점도 실질적인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관련 제도의 체계적인 정비를 통하여 상당 부분 보완40)될 수 있으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는 제도의 수요자가 제도의 선택과정에서 이익형량의 요소로 고려할 사항일 뿐, 시리즈 제도의 도입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요소는 아니라고 본다(즉 시리즈 제도를 선택할 경우 사업비용의 절감 효과를 도모할 수 있는지 여부는 사안별로 다를 수 있고 이는 제도의 수요자가 당해 사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자유재량에 따라 판단할 영역이므로 일반적인 관점에서 그 효용성 존부를 일률적으로 단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시리즈 신탁의 도입과 제도의 구성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사업신탁이 다른 기업조직에 비해 설계의 유연성과 사적자치가 강화된 조직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보면 사업신탁만의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함에 있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하여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6.4. 조직변경?합병제도의 도입 여부

    미국 USTEA 제7장은 사업신탁의 조직변경 및 합병제도를 허용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사업신탁을 사업신탁외 단체로 변경하거나 반대로 사업신탁외 단체를 사업신탁으로 변경하는 것이 가능하며 사업신탁이 하나 이상의 다른 사업신탁 내지 단체와 결합하여 새로운 단체를 구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우리나라의 개정 신탁법 제7장에서도 신탁의 변경, 합병, 분할 및 분할합병 등을 허용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신탁과 신탁 사이에서만 이용 가능할 뿐 신탁과 다른 단체(회사, 조합 등)와 사이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신탁이 단순한 민사계약에 머무는 경우 개인법리가 적용되는 신탁과 단체법리가 적용되는 기업조직 사이에 조직변경 내지 합병을 허용한다면 법적 불안정을 초래하고 법률관계를 복잡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의 도입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지만, 기업조직법리가 작동하는 사업신탁에 있어서는 달리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사업운영자의 입장에서는 사업 초기 단계에서는 기업지배력의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업조직의 유형 중 지배구조가 단순한 사업신탁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기로 하였다가 후에 사업이 궤도에 올라 그 규모가 방대해 지고 지배구조가 복잡하게 되면 사업의 구조를 회사로 전환하고 싶을 수 있다. 한편, 사업신탁의 운영자에게 당해 사업이 효용가치가 없게 되는 경우 이를 인수하기를 원하는 다른 기업조직에게 합병의 방식으로 사업을 양도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사업신탁과 다른 기업조직 사이에 조직변경 내지 합병이 필요하게 되는 이유는 각 기업조직제도가 사업을 운영하여 영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 존재의 목적이 같으며, 다만, 목적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서 사업을 담아내는 그릇(vehicle)이 다를 뿐이라는 점에 있다. 따라서 향후 사업신탁법을 제정함에 있어서는 기업 운영의 유연성과 조직 개혁의 간이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사업신탁과 다른 기업조직 사이의 조직변경 및 합병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6.5. 과세제도의 개편

    이제까지 살펴본 사업신탁의 기업조직적 특성에 비추어 보면 신탁이 단순히 수익자에게 소득을 분배하기 위한 도관에 불과하다고 보는 전통적인 과세이론(신탁도관이론)은 그대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앞으로는 사업신탁의 유형을 신탁의 내용, 특성 및 신탁과세이론에 적합하게 분류하여 이에 상응하는 신탁세제를 체계적으로 정비하여야 할 것이며,41) 조세공평의 관점에서는 신탁을 이용한 조세회피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되 제도촉진의 차원에서 사업신탁의 이용이 억제되지 않도록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국제신탁의 과세관계에서는 수익자의 거주지국, 소득의 원천지국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되므로 이와 관련한 국제신탁의 과세제도의 검토와 또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11)예를 들어 수탁자가 신탁재산의 명의인일 뿐 신탁재산의 관리·운용에 대한 재량을 가지고 있지 않고, 위탁자 내지 수익자 등의 지시에 따라 관리·처분 등을 하는 신탁, 이른바 수동신탁의 유효성을 부정하는 입장에 서는 경우에는 당해 조직의 실체는 (신탁이 아니라) 명의대여, 대리, 조합 등으로 간주되어 그에 관한 법리가 적용될 것이므로 결국 신탁에 있어 구성원의 유한책임원칙은 적용되기 어렵게 될 것이다.  12)예를 들어 책임제한특약과 같이 계약을 통해 수탁자 내지 구성원의 유한책임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이 경우 기업조직의 모든 채권자들과 건별로 계약을 체결하여야 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유한책임신탁과 같은 제도를 이용하여 수탁자의 책임을 제한하더라도 이 경우에는 신탁의 채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책임재산의 감소와 다름이 없는 것이므로 상대적으로 거래를 억지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한편, 수익자의 경우에는 수탁자와 사이에 대한 대내적 책임을 배제하는 계약의 체결을 모색해 볼 수 있지만 사실상 이러한 계약조건을 수용할 수탁자(특히 유능한 수탁자)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며, 무엇보다 불법행위책임의 경우에는 사전적으로 이러한 계약조차 체결할 수 없어 앞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피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13)Carter G. Bishop, “Forgotten Trust: A Check-the-Box Achilles’ Heel”, Suffolk University Law Review, Vol. 43(2010), pp. 554~555.  14)신탁법 개정에 따른 일본의 세제개편에 관한 내용은 財務省, 法人税法の改正/信託法の制定等に伴う税制上の措置 (所得税関係), 平成19年度 税制改正の解説, 2007., 75~118쪽.  15)김병일, “신탁법 개정에 따른 신탁세제 개편 방향에 관한 연구”, ⌜조세연구⌟ 제10-2집(한국조세문제연구소, 2010), 303~350쪽; 김종해/황명철, “개정신탁법 시행에 따른 신탁과세구조의 개선방안”, ⌜세무와 회계저널⌟ 제13권 제3호(한국세무학회, 2012. 9.), 421~448쪽; 이준봉, “세법 상 법적 실체인 신탁의 도입에 관한 검토 : 유동화기구를 중심으로”, ⌜성균관법학⌟ 제23권 제2호(성균관대학교법학연구소, 2011. 8.), 415~453쪽.  16)Steven L. Schwarcz, “Commercial Trusts as Business Organizations: An Invitation to Comparatists”, 13 DUKE J. COMP. & INT‘L L. 321(2003), pp. 327~328.  17)일본의 경우 2006년 개정된 信託法 第8條 및 第163條에서는 수탁자가 단독수익자인 자기신탁을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法務省 民事局参事官室, 信託法改正要綱試案 補足説明, 2005., 11쪽.  18)미국의 경우 USTEA §505에서도 사업신탁의 수탁자는 회사의 이사가 부담하는 의무와 유사한 내용의 신인의무(fiduciary duty)를 부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19)다만, 위탁자에 대한 위임은 수동신탁의 문제가 있고 위탁자의 채권자가 신탁재산에 대하여 추심을 할 가능성이 있어 신탁재산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못하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이중기, “신탁업무의 외부위탁에 대한 규제방안 : 개정방안을 중심으로”, ⌜홍익법학⌟ 제11권 제1호(홍익대학교 법학연구소, 2010. 2.), 371쪽}. 한편, 수탁자의 위탁자에 대한 위임과 관련하여 대법원 2002. 3. 15. 판결 2000다52141은 아파트 분양형 토지개발신탁에 있어 수탁자인 신탁회사가 위탁자인 건설회사에게 아파트 분양업무를 위임한 사안에서, 원칙적으로 수탁자가 위탁자에게 신탁사무를 위임하는 것은 가능한 것이지만 그 위임의 범위에 위탁자 자신의 채무에 대한 대물변제조로 아파트를 분양할 권한까지 부여하였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시한바 있다.  20)일본 信託法 第28條; 미국 UTC §807; 영국 Trustee act(2000) §11.  21)법무부 상사법무과, ⌜신탁법해설⌟(법조협회, 2012), 341쪽.  22)이중기, 앞의 논문, 362~364쪽.  23)USTEA §511 (a), (b)에서는 수탁자는 원칙적으로 자신의 권한과 의무를 제3자 또는 공동수탁자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24)이와 달리 수탁자와 수익자의 이해관계가 동일하고 그들의 이해관계와 위탁자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경우는 상정하기 어려우며 그러한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하여는 사전에 위탁자가 신탁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권리를 확보해 둘 가능성이 높으므로 위탁자의 권리 보호의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볼 수 있다.  25)수탁자의 기관의 독립성 확보에 관하여는 싱가포르의 BTA가 ① 수탁자-운영사의 이사회의 과반수 이상이 운영 및 사업관계로부터 독립된 자이어야 하고 1/3 이상이 모든 주요 주주로부터 독립된 자이어야 하며 과반수 이상이 어느 주요 주주로부터 독립된 자일 것으로 요구하고 있는 점{BTA §14 (1)}과 ② 감사위원회의 모든 구성원이 운영 및 사업관계에서 독립된 자이어야 하고, 의장을 포함한 과반수 이상은 모든 주요 주주로부터 독립된 자이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BTA §15 (1)}을 참고해 볼 수 있다.  26)USTEA §505 참조.  27)USTEA §507, BTA §10 참조.  28)BTA §§ 10 (5), 40 (3) 참조.  29)USTEA §104 (11) 참조.  30)USTEA §509, BTA §29 참조.  31)USTEA §609, BTA §§42-43 참조.  32)예를 들어 수탁자가 신탁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수탁자의 주주가 이용하는 경우, 수탁자가 위탁자/수익자에는 손해를 가져오지만 반대로 자신의 주주에게는 이익을 주는 선택을 하는 경우 등이 있을 수 있다.  33)참고로, USTEA §104는 사업신탁의 설립절차, 준거법, 사업신탁의 목적제한, 시리즈 신탁, 수탁자의 권리·의무, 수익자의 권리, 사업신탁의 전환, 합병 및 해산 등에 관한 주요 규정들을 원칙적으로 강행규정으로 명시하고 있다. 다만, 그 중 일부 규정은 원칙적으로 강행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명백히 불합리(manifestly unreasonable)”하지 않는 한 사업신탁증서에서 그 내용의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34)싱가포르 거래소에 처음으로 입성한 사업신탁은 2006. 5. 26.에 상장된 Pacific shipping trust이며, 이후 그 수가 점진적으로 증가하여 2015년 4월 현재 Monetary Authority of Singapore에서 수익증권이 거래되고 있는 사업신탁은 등록된 사업신탁 (registered business trust) 총 24개 중 총 19개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인터넷 주소에서 검색 가능. http://www.mas.gov.sg/regulations-and-financial-stability/regulations-guidance-and-licensing/business-trusts/list-of-registered-business-trusts.aspx  35)법무부, 앞의 책, 612쪽.  36)이중기, “기업의 분할과 자금조달수단으로서의 사업신탁 - 싱가포르와 홍콩의 경험을 중심으로”, 건국대학교 법학연구소, 신탁법제와 유동화법제 관련 최근 쟁점 학술대회 발표자료, 2014. 2. 7., 34쪽.  37)시리즈 제도의 이점은 단순화된 지배구조(simplified corporate governance), 행정비용의 절약(reduced administrative costs), 자본의 다양화(diversified of capital)으로 정리할 수도 있다. 노혁준, “사업신탁을 통한 기업재편의 가능성과 그 한계 – 시리즈 신탁을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법학연구소, 통일사업을 위한 유한책임신탁의 활용방안 학술대회 발표자료, 2014. 4. 24., 47쪽.  38)노혁준, 앞의 문헌, 39~41쪽.  39)노혁준, 앞의 문헌, 48~49쪽.  40)제도적 보완책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노혁준, 앞의 문헌, 53~54쪽.  41)신탁세제의 정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한원식, “신탁세제에 대한 연구: 납세의무자를 중심으로”, 서울시립대학교 세무전문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3. 2.

    Ⅴ. 결론

    개정 신탁법이 사업신탁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다양한 기업조직제도를 제공함으로써 공동기업구조에 관한 국민의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여전히 계약법적 사고가 반영된 기존의 신탁법 체계 내에 기업조직법인 사업신탁에 관한 법제를 두는 것은 물과 기름과 같이 정합적인 체계라고 볼 수 없으며, 사업신탁제도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사업신탁만의 독자적인 법률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 및 싱가포르의 입법례에 비추어 볼 때 사업신탁법에 포함될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사업신탁에 대한 법인격 인정, 수탁자의 범위 확대 및 권리·의무에 대한 유연성 확보, 수익자의 권리 보호 강화, 소극재산 및 고용관계의 승계에 관한 규정의 정비, 수익증권의 상장 허용, 시리즈 신탁 및 조직변경·합병제도와 같은 새로운 제도의 도입, 신탁세제의 개편 등이 있다고 본다. 물론 법제의 신설과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사업신탁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다거나 즉각적인 시장의 변화를 가져오기는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사업신탁제도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신탁법제가 비록 영미법에서 시작된 제도이기는 하지만 대륙법계 국가에서도 이를 수용하여 나름대로의 법리를 구축할 만큼 법제의 장벽을 넘는 보편화된 기업조직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보면 사업신탁법제를 정비하는 것은 해외 자본을 유치함에 있어서도 바람직한 방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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