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aper examines how the cinematic representation of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stimulates ‘imagination’ in the realm of everyday life and in the memory of the masses, creating a common awareness and affect. The history of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was hidden for a long time, and it was not until the 1990s that it entered the field of public recognition. Such a transition can be attributed to the external and internal chronopolitics that made possible the testimony of the victims and the discourse of the “comfort women” issue. It shows the peculiar status of the comfort women history as ‘politics of time’. In the same vein, the cinematic representations of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can be found in similar chronopolitics. The ‘comfort women’ films have shown the dual time frame of the continuity and discontinuity of the ‘silence’.
In Korean film history, the chronotope of the reproduction of “comfort women” can be divided into four phases: 1) the fictional representations of “comfort women” before the 1990s 2) documentaries in the late 1990s as the work of testimony and history writing, 3) melodramatic transformation in the feature films in the 2000s, and 4) the diffusion of media and categories.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focus on the first phase and the third phase in which the issue of ‘comfort women’ is represented in the category of popular fiction films. While the “comfort women” representations before 1990 were strictly adhering to the framework of commercial movies and pursued the sexual exploitation of “comfort women” history, the recent films since the 2000s are experimenting with various attempts in the style of popular imagination. Especially, the emergence of ‘comfort women’ feature films in the 2000s, such as
Also, focusing on the cinematic representation strategies of the 2000s “comfort women”, this article discusses the popular politics of melodrama, the representation of victims and violence, and the feature of ‘comfort women’ as meta-memory. As a melodramatic imagination and meta-memory for the historical trauma, the “comfort women” drama shows the historical, political, and aesthetic gateways to which the “comfort women” problem must pass. As we have seen in recent fiction films, the issue of “comfort women” goes beyond transnational relations between Korea and Japan; it demands a postcolonial task to dismantle the old colonial structure and explores a transnational project in which women’s movements and human rights movements are linked internationally.
2013년 여름,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의 시립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건립된 평화의 소녀상이었다.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일본계 극우단체인 ‘역사의진실을요구하는세계연합회’(GAHT)는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상징물을 만든 것은 연방정부의 외교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소녀상 철거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모두 “표현을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패소 판결을 받았지만 GAHT의 활동은 집요했고, 일본 정부 차원에서도 법원, 유엔과 미의회, 각 주정부 등을 상대로 소녀상 철거를 정당화하기 위한 로비를 함께 벌렸다. 이들이 최종 상고심에서 패소한 결과, 글렌데일시 평화의 소녀상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필자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사건의 전개가 보여주는 국제정치적 맥락과는 무관한 것이다. 여기서 고민해보려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소녀상 논란에서 보듯이 국내외적으로 확산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어떻게 일상의 영역에서, 대중의 기억 속에서 ‘상상력’
굳이 글렌데일 시의 소녀상을 서두에 언급한 데는 개인적 배경이 있다. 당시 필자는 캘리포니아 대학 얼바인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2. 일본군 ‘위안부’ 역사와 시간의 정치학(Chronopolitics)
많은 이들이 동감하듯이, 일본군 ‘위안부’ 역사의 끔찍함은 다중적이다. 한편에 사건의 폭력성이 갖는 끔찍함이 있다면, 다른 편에는 한국이 피식민 지배를 벗어난 이후에도 40여년이나 침묵하도록 만든 끔찍함이 있다. 양현아는 이를 여러 겹으로 둘러쳐진 침묵의 층위로 세분화한다. “첫째, 일본의 제국주의의 잔학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침묵, 둘째, 식민지 피해 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한국정부의 침묵, 셋째, 군‘위안부’들에 대해 낙인을 찍은 가족, 이웃, 공동체의 침묵, 넷째, 생존자들의 침묵, 다섯째, 죽어간 사람의 침묵이다.”
한국영화사의 맥락에서 일본군 ‘위안부’ 재현의 크로노토프는 어떻게 출현하는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낮은 목소리> 시리즈(변영주, 1995, 1997, 1999), <침묵의 소리>(김대실, 1998),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안해룡, 2007), <그리고 싶은 것>(권효, 2012), <레드마리아 2>(경순, 2015), <침묵: 일어서는 위안부>(박수남, 2017) 등이 있다. 극영화의 경우, <소리굽쇠>(추상록, 2014), <마지막 ‘위안부’>(임선, 2014), 원래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텔레비전 특집 단막극으로 방영되었다가 편집을 거쳐 2017년에 극장 개봉한 <눈길>(2017), <귀향>(조정래, 2016),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2017)와 <허스토리>(민규동, 2018) 등이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극적 재구성물들이다. 그밖에, <소녀이야기>(2011), <끝나지 않은 이야기>(2014) 등의 단편 애니메이션, <각시탈>(2012), <눈길>(2015)과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꼽을 수 있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2018년 8월 당시 한국에서 만들어진 ‘위안부’ 소재의 영화를 전수 조사한 바에 따르면, KMDb에 등록된 한국영화 2만 2,988편 중에서 ‘위안부’ 소재 영화는
다만 여기서 누락된, 좀 더 확인해야 할 몇몇 작품들이 없지 않다. 홍콩과 합작한 것으로 알려진 <여자정신대> 속편, 정지영 감독·시나리오의 <울밑에선 봉선화야 — 종군 ‘위안부’>
1) 1990년대 이전 일본군 ‘위안부’의 극적 재현물: 침묵과 수치, 성애화의 패러다임
2) 1990년대 중·후반 다큐멘터리: 증언과 역사쓰기의 패러다임
3) 2000년대 극영화: 장르적 접근과 멜로드라마적 전환
4) 2000년대 애니메이션 및 기타 장르: 매체의 확산
이 글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대중적 극영화(fiction film)의 범주에서 표상하고 있는 첫 번째 국면과 세 번째 국면에 집중해 논의를 전개해보고자 한다.
3. 침묵과 수치, 성애화: 1990년대 이전 ‘위안부’의 대중적 시각화
먼저, 1990년대 이전 ‘위안부’ 극영화들에 나타난 침묵과 수치, 성애화의 얽힘을 살펴보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공공기억화가 이루어진 1990년대를 기점으로 했을 때, ‘위안부’ 관련 영화가 이 전에도 이미 여러 편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놀랍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미 일본에서는 전후 시기 내내 끊이지 않고 ‘위안부’ 관련 표상들을 영화의 배경이든 소재 차원에서든 등장시켰다는 점이지만 말이다. 한국영화의 경우, 그 제작편수가 일본만큼 많지는 않지만, 시간적 간격을 두고 지속적으로 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먼저 ‘위안부’ 표상이 등장한 것은 정창화 감독의 <사르빈 강에 노을이 진다>(1965)이다.
<사르빈 강에 노을이 진다> 이후로 1970년대와 1980년대 중반에 동명의 ‘위안부’ 영화들이 등장한다. 1974년작 <여자정신대>와 1985년작 <여자정신대>가 그것들이다. 이 작품들은 일본군 위안소를 배경으로 역사적 문제를 직접 조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이익을 쫓아 폭력을 성애화하고 대상화함으로써 영화사에서 잊혀진 작품들이 되었다. 김청강은 1990년대 이전의 ‘위안부’ 재현 방식이 곧 ‘위안부’가 잊혀지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영화들은 동아시아 지역의 뿌리깊은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제 속에서 ‘위안부’라는 하위주체가 어떻게 폭력적으로 재현되어왔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 공통적으로 이 영화들 모두 표면상으로는 ‘문제작’ 으로 만들어졌지만, 한국에서는 특히 ‘에로 영화’로 제작과 배급의 경로를 통해 구성된 남성의 쾌락을 위한 영화로 만들어졌다.”
두 편의 <여자정신대>와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의 대중적 성애화가 본격화되고, 이렇게 형성된 ‘위안부’ 재현의 특정한 패러다임이 피해자들의 침묵과 수치심을 더욱 촉발시켰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는 비록 1991년에 만들어지긴 했지만, 1990년대 이전의 재현 패러다임을 따르는 지영호 감독의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도 포함되는데, 이 세 작품들은 기이할 정도로 ‘상호참조적’인 작품이다. 1974년 <여자정신대>가 1965년에 만들어진 스즈키 세이준의 <작부이야기>를 가져다 살짝 윤색한 작품이라면 1985년 <여자정신대>는 1982년 출간된 윤정모의 작품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1991년 영화는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윤정모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두 편의 <여자정신대>와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관통하는 주제는 ‘위안부’ 여성들의 성애화이다.
“하이얀 베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들...”
“이 오욕의 역사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민족문학의 기수 윤정모 원작소설 완전 영화화!!”
이렇게 여성신체의 성애화로 이루어진 기표와 한없는 피해자성의 기의, 그리고 이를 ‘문제작’ 혹은 민족적 작품으로 포장하는 프레임은 서로 긴밀히 얽히게 되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강간’의 재현은 ‘위안부’의 극화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유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폭력적이고 스펙타클해야 했으며,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차이를 발생시키면서 되풀이되어야 했으며, 또한 여러 여성들의 고통이 겹겹이 포개져야 했다.
위의 영화들에서 드러나듯이, ‘위안부’ 문제의 영화적 재현은 ‘침묵’의 흐름과 연속적이면서도 단절적인 이중성을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는, 민족적, 가부장적 프레임 안에서 죄의식과 수치의 감정으로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던 사회적 현실에 비추어보면, ‘위안부’ 영화들은 ‘에로영화’의 채널들 속에서 만들어졌고 대중들의 쾌락을 소급했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고 그지 놀라운 일이 아니기도 하다. 1990년 이전에 일본군 ‘위안부’ 영화들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데는 확실히 이유가 있다. 이 영화들에서 폭력의 성애화는 역사적 기억을 일깨우는 대신 침묵하게 만드는 문제적 재현의 패러다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반면에, 2000년 이후 최근에는 ‘위안부’ 문제가 지나치게 많이 이야기된다고 할 정도의 시각이 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안부’ 재현의 과잉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새로운 크로노폴리틱스와 새로운 재현의 정치학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시사한다.
4. ‘재현할 수 없는 기억’의 영화적 재현: 홀로코스트와 일본군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역사는 종종 ‘아시아의 홀로코스트’로 비유된다. 마찬가지로 ‘위안부’ 영화는 홀로코스트 영화가 제기한 재현의 문제와 중첩되어 있으면서도 중요한 차이를 시사하고 있다. 미리엄 바투 한센은 홀로코스트를 할리우드 양식으로 극화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1993)를 분석하면서, 이 영화가 “논쟁의 관점을 어떻게 이끌어냈는지 뿐만 아니라 국가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한 주장을 하기 위해 다양하고 불평등한 담론 사이에서 논쟁을 가시화하는 방식―즉, 동질적인 국가가 아니라 민족적 대중이 명백히 다르게 형성되는 것”에 주목한 바 있다. 진행 중인 홀로코스트 기억과 소위 ‘홀로코스트의 미국화’(혹은 할리우드화) 문제에 대한 징후로서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격렬하게 오갔지만, 그 사이에서 이런 논쟁들과 더불어 한센이 주목한 것은 역사와 기억, 지식인과 대중문화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있다. “이 영화는 경험적으로 다양한 청중을 위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쇼아(Shoah)의 재현과 ‘공공 기억’의 문제에 관한 중요한 이슈들을 통해 생각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한센의 홀로코스트 영화 분석에는 네 가지 뜨거운 쟁점이 등장한다. 문화 산업, 내러티브, 영화 주체성, 재현성의 문제가 그것들이다. 이들은 ‘위안부’ 역사의 극적 재현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이슈들과 맥을 같이 하는데, 이들 네 가지 쟁점들을 토대로 90년대 이전의 ‘위안부’ 극영화와 2000년대 이후의 ‘위안부’ 극영화를 다음과 같이 비교해볼 수 있다.
첫째, 문화산업의 측면에서 1990년 이전의 ‘위안부’ 극영화들이 철저히 상업영화의 틀을 맞춰 ‘위안부’ 역사의 성애화를 추구했다면, 2000년대 이후의 영화들은 대중영화의 양식을 벗어나지 않는 동시에 다양한 시도들을 실험해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예는 <아이 캔 스피크>로, 무거운 역사적 이슈를 되도록 경쾌한 코미디의 수사에 기대어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밖에 최근의 ‘위안부’ 극영화들은 멜로드라마적 감수성을 적극적으로 담아내면서 역사적 공공기억의 산업적, 정치적, 문화적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문화산업과 ‘위안부’ 극영화의 관계가 달라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둘째, 내러티브의 문제는 대중영화의 고전적 서사구조에 기대어 ‘위안부’ 역사를 재현한다는 사실이 갖는 함의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구성주의적 단결, 동기 부여, 직선형, 평형 및 폐쇄라는 신 고전주의주의 원칙에 의존”한 재현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역사적인 경험의 불연속성과 타자성”에 질서를 부여하도록 강요하게 된다.
셋째, 일본군 ‘위안부’ 영화에서 주체성은 이중적인 방향에서 진행된다. 영화가 다양한 캐릭터들 사이에 주체성을 부여하는 방향이 있다면 그 과정에서 관객의 주체성이 연결되는 방향이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위안부’ 여성들과 일본군 군인들, 그리고 주변의 가족, 친구, 혹은 이들의 미래 후손들이 상호작용할 때, 이 인물들은 그 어떤 장르영화에서보다 더 강력하게 영화이미지와 장치들을 움직인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극영화들이 플래시백, 보이스 오버, 시점 쇼트 등을 사용하는 방식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여기에 관객들이 어떻게 동일시되고 연루되고 새로운 보기를 만들어나감으로써 영화 밖 역사적 기억을 형성하는 데 동참하게 되는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넷째, 재현 (불)가능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홀로코스트 이후 예술이 가능한가?”라는 아도르노의 질문에서 이미 제기된 바와 같이, 역사적 트라우마
‘위안부’ 할머니들은 극심한 개인적 고통을 말하는 대신 ‘죽기 전에 정의를 보고 싶다’는 희망을 더 자주 표현해왔다.
5. 2000년대 ‘위안부’ 기억을 다룬 영화적 재현의 전략들
이어지는 논의의 주된 목적은 동일화의 역사 너머에서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려는 상상력의 힘을 염두에 두고 2000년대 한국에서 제작된 ‘위안부’ 영화의 대중적 재현양상과 그 정치적 미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최근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세 편의 ‘위안부’ 극영화들―<귀향>, <아이 캔 스피크>, <허스토리>―을 멜로드라마와 재현, 기억의 관점에서 비교해보고자 한다. 2000년대 ‘위안부’ 극영화들의 등장은 우리가 그간 생존자들의 증언과 ‘위안부’ 운동 등을 통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슈에 대하여 과연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이에 대한 ‘문화적 재현은 어떻게 가능한지’ 등의 여러 문제를 제기해주고 있다.
조정래 감독의 2015년 작 <귀향>은 제작을 시작한 지 14년 만에 개봉한 영화로 7만 5천여 명의 지원을 받아 완성되었다. 영화는 2000년대 초 사회적 관심에 조응하여 시작되었으나 완성되지 못하다가 2015년 박근혜 정부의 12.28 한일합의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뜨거워지면서 힘을 받아 완성될 수 있었다. 기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전면에 내세운 12.28 한일합의는 과거 1965년 한일협정의 언캐니한 재생인 동시에 서둘러 상처를 봉합하고 되돌아보지 않는 ‘망각’의 정치학을 제창한 것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블랙리스트를 가동해 정부 비판적인 독립영화를 영화진흥위원회 지원대상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했는데, 그 27건의 영화계 블랙리스트 사례 중에 <귀향>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2000년대 이후 일본군 ‘위안부’ 재현의 멜로드라마적 전환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여기서 잠시 멜로드라마의 비평담론적 전개를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겠다. ‘멜로드라마’는 자주 상반되고 비판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장르적 용어이자 비평 개념이다. 어떤 장르이론가도 멜로드라마란 무엇인지에 대해 통일성 있는 구조로 혹은 단일한 정의로 규정하지 못했고 그럴 것을 거부했다. 멜로드라마는 논쟁의 역사를 통해서 풍부해진 용어라는 인식 아래, 여기서는 멜로드라마의 정치적, 정동적 상상력에 주목하고 이를 ‘위안부’ 영화의 극적 재현의 전략 혹은 분석틀로 사고해보려 한다. 피터 브룩스의 『멜로드라마적 상상력: 발자크, 헨리 제임스, 멜로드라마와 과잉의 양식』, 크리스틴 글레드힐의 논쟁, 스티븐 닐의 논의는 ‘가족 멜로드라마’나 ‘여성영화’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탐구를 벗어나 멜로드라마의 중요한 특질로 파토스에 집중한다. 이들의 새로운 접근에 따르면, 멜로드라마는 현실의 재현이라는 리얼리즘에 관심이 없이 ‘눈물을 끌어내기 위해’ 어떻게 관객과 등장인물들 사이에 지식과 관점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독특한 재현양식이다.
파토스의 멜로드라마적 감수성은 2000년대 한국에서 제작된 ‘위안부’ 영화의 크로노폴리틱스와 대중적 재현양상을 살펴보는 데 중요한 요소로 비춰진다. 스티븐 닐이 설명했듯이 멜로드라마적 감수성은 너무 늦게 오거나 거의 너무 늦은(아슬아슬한 때에) 깨달음(관객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등장인물들이 발견하는)으로부터 기인한다. “지연과 가능성으로 너무 늦어진다면 우연의 일치가 너무 늦거나 시간에 맞거나 간에 눈물이 나온다.”
멜로드라마의 파토스가 지닌 윤리적 차원을 집중조명해온 피터 브룩스에 따르면, 정의에 대한 요구가 있을 때 멜로드라마가 등장한다.
[멜로드라마를 통해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보이지는 않지만 강제적인 담론과 제도적 압력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압력들은 사회적 관계가 개인들 간의 개인화된 행동으로 구체화되는 힘들이다.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자유로운 개인들이라고 제안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 정치적 힘들과 개별적인 심리적 투자 사이의 카텍시스는 공공 영역에서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므로 사적으로 보이는 것은 커다란 공공의 결과를 낳는다. 멜로드라마는 이 과정을 매우 폭발적인 방식(in a high-octane way)으로 극화한다. 그 이유는 멜로드라마가 행동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감정적 핵심을 찾기 때문이며 거기서 사회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이 만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를 대중에게 보여 줄 플롯들을 조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퍼블릭과 개인 간의 순환적 전이 과정이며, 단순히 퍼블릭을 일방적으로 개인적인 것으로 옮기는 일방향적 전치가 아니다.
위의 지적은 멜로드라마가 지닌 정동의 정치학과 맞닿아 있다. 이 때 정동은 어떤 개인화된 심리적 상태나 사적 감정이라기보다는 ‘탈주체의 정치학’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정동은 사회적 환경과 그에 조응하는 인간 에이전시 사이의 효과로서 생산되고 고정된 범주가 아닌 잠재적 범주로서 항상 변형함으로써 주체의 주어진 자리를 항상 탈위치시키기 때문이다.
대중적 성공과는 달리 비평적 측면에서 적잖은 비판을 받았던 <귀향>은 1943년과 1991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횡단하며, 시골 소녀 정민이 위안소로 끌려가는 과거와 성폭력을 당한 소녀 은경이 무녀와 살며 영매가 되어가는 현재를 중첩시킨다. 이 때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심에는 1991년의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라 두 시대의 소녀들이다. ‘위안부’ 극영화의 멜로드라마적 전환에 있어서, ‘소녀’ 이미지의 확산은 대중적 공통분모를 이미 확보한 상태였고 따라서 소녀를 중심에 둔 기억구조는 매우 자연스러운 혹은 계산가능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소녀들이 갖는 순수한 여성. 피해자성은 멜로드라마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의 쟁점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소녀화’가 가부장적인 한국 민족주의의 관점을 상기시킨다는 점이다.
반면, <아이 캔 스피크>와 <허스토리>는 통념적인 피해자 서사에 갇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허스토리>는 법정 드라마의 형식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증언을 부각시키며 ‘위안부’ 문제에 다가간다. 이러한 접근은 법정 드라마의 관습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둘러싼 극의 반전을 형성하는 동시에, 증언대에 선 ‘위안부’ 여성이 ‘집단적 피해자’가 아니라 각각 고유한 스토리와 개성을 지닌 여성들임을 보여준다.
‘가해자’의 위치에 있는 일본의 재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 캔 스피크>는 피해자에 대한 통념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피해자성의 진정한 의미를 건드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즉, 피해자는 스스로 피해자성을 드러냄으로써 증언의 주체가 된다. 여기서 피해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옥분은 증언을 결심한 후에도 정부와 기관의 법적, 서류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언자격이 박탈될 위험에 처한다. 국민청원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절차를 거쳐 국제 증언대에 서게 되었을 때에도 ‘위안부’ 피해자로서의 증거’ 유무는 증언의 진실성을 넘어서는 강력한 기준이 된다. 증언의 진실성과 증거 유무 사이의 시소 게임을 뒤집기 위해서 김현석 감독은 관객은 이미 알고 있는 옥분의 ‘위안부 피해자성’을 여러 차례에 걸쳐 지연시키면서 감정적 고양을 이끌어내는 전략을 취한다. 즉, 증거에 해당하는 ‘위안부’ 사진을 청문회장에 제출하는 시점을 옥분이 자신의 몸에 난 칼자국과 강제문신을 드러내 보이는 바로 그 순간까지 미룸으로써, 영화는 ‘살아있는/생생한 증거’로서의 ‘위안부’ 피해자성이 그 어떤 증거보다 우선함을 강조한다.
이 클라이맥스의 순간은 멜로드라마적 상상력의 힘을 빌어 고양된다. 옥분이 바느질상자 속에 감추어두었던 ‘위안부’ 사진은 옥분과 민재를 연결하는 감정적 심급을 먼저 건드린 후에 먼 거리를 뛰어넘어’ 때늦게, 그러나 너무 돌이킬 수 없이 늦은 것은 아니게’ 도착함으로써 ‘위안부’의 몸과 증언의 피해자성이 법적 심급에 도달할 수 있게 도와준다. 순서상 그 반대가 아니라는 점은 <아이 캔 스피크>가 지닌 멜로드라마적 상상력의 정치학과 매우 잘 연동되어 있다. <아이 캔 스피크>의 멜로드라마성은 따라서 옥분이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목 놓아 우는 장면도, 오랫동안 외면해온 오빠가 찾아와 옥분을 끌어안는 장면도, 옥분의 ‘커밍아웃’ 이후 동네 사람들이 십시일반 챙겨준 여행경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살아온 ‘위안부’ 피해자 여성의 개인적 삶과 자신의 피해자성을 확인하고 나아가는 정치적 삶 사이의 시차 (분명히 중첩될 수 있으나 어긋한 타이밍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내재된 것으로, 그 역사적 파토스의 감각이 관객에게 감정적 연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감정적 연대의 중요성을 뒷받침해주는 또 다른 예시 역시 영화의 클라이맥스 내에서 이루어진다. 영화가 보여주는 청문회 장면에 옥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위안부’ 여성이 증언을 한다. 2007년 실제 결의안 발의 당시, 호주에 거주하는 ‘위안부’ 피해자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가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증언대에 섰던 것을 극화한 것이다. <아이 캔 스피크>라는 영화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증언은 ‘위안부’ 피해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진실의 거울이다. 시각적 매체이자 허구적 재현인 극영화에서 ‘증언’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위안부’ 여성들의 기억과 경험을 시각화했다는 점은 그래서 더욱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오혜진은 이 영화에서 재초점화된 증언의 의미를 잘 지적하고 있다. “이 제목은 말한다는 것이 ‘위안부’ 서사가 지닌 정치성의 강력한 동력이자 서사적 결절점일 수 있음을 깊이 의식하고 있다. 이는 빙의나 신들림, 트라우마나 정신분열 같은 영적, 병리적 장치를 통해서만 ‘위안부’에게 (비)언어를 허용하거나 말해질 수 없음의 방식으로만 고통을 재현해온 주류 ‘위안부’서사와 대비된다. 이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들도 말할 수 있다거나 말해야 한다는 당위를 넘어, 이미 이들이 자신과 이웃, 그가 속한 공동체에 끊임없이 말 걸어왔음을 깨닫게 한다.”
문제는 <아이 캔 스피크>에서 ‘말하기’의 언어가 영어라는 설정이다. 이미 이전의 영화들에서 영어회화를 배우는 캐릭터들을 코믹하게 그린 적이 있는데, 대중문화적 코드로서 언어를 낯설게 하기, 혹은 낯선 언어 앞에서 당황하기는 친숙한 소재이다. 그러나, 웃음기를 지우고 생각한다면, 국제사회의 공통어인 이 언어가 어느 면에서나 권력의 언어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넓은 곳에 가 닿기. ‘위안부’ 피해자의 영어 연설은 직접 피해자의 목소리에 그 메시지를 담아 최대한 많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국제적 연대를 호소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필자가 주목하는 장면은 이 언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는 지점이다. 옥분이 준비한 연설문을 발표하기 전에 누구보다 긴장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증언하기 위해 함께 나온 다른 ‘위안부’ 여성이다. 백인 ‘위안부’ 할머니(미첼)는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지만, 참혹한 기억과 고통을 다 전달하지 못한 채 몇 번이나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옥분이 앞으로 나와 몸의 상처를 드러내고 한국어로 그 고통을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좌중의 사람들이 서둘러 번역기의 이어폰을 찾아 꽂는 장면에서 유일하게 이어폰을 빼는 사람이 바로 이 할머니이다. 그녀는 언어의 경계와 상관없이 옥분의 고통을 몸으로 알며 옥분의 증언을 몸으로 듣는다. 서사적 흐름을 따라 옥분이 영어 연설문을 하는 장면이 이어지면서 이렇게 다른 언어, 다른 민족, 다른 국가의 ‘위안부’ 여성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느끼는 순간은 짧게 지나가지만, 필자는 이 장면에서 언어의 차이를 상쇄하는 정동의 파동이 결국에 경험의 차이를 상쇄하는 멜로드라마적 정동의 정치학으로 나아가는 단초가 되지 않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끝으로, 메타기억에 대한 담론의 영역으로 ‘위안부’ 사건의 극영화적 재현들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메타기억의 장은, “하나의 기억 자체가 격렬한 공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그 기억과 관련된 ‘주변’의 논쟁들이 그 기억을 ‘보여주는’ 혹은 그 기억에 ‘속하거나 일부가 되는’ 또 다른 기억의 장을 구성하기 시작”하면서 형성된다.
<아이 캔 스피크>와 <허스토리>는 시민사회운동의 측면에서 ‘위안부’ 투쟁이 보여준 성과에 기반하고 있다. 두 영화 모두 실화에 바탕하고 있는데, <아이 캔 스피크>가 미국 하원 결의안인 121(House Resolution 121)이 2007년 7월 30일에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한 것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허스토리>가 적극적인 드라마트루기를 통해서 보여주듯이, 역사적 사실의 재연이 아니라 네 명의 여성이 보여주는 각기 다른 ‘포스트식민 상흔의 흔적들’에 있다. 그녀들의 상흔들은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차원에 걸쳐 얽혀 있으며 이 여성들이 계속해서 견뎌내야 했던 생존의 문제에 맞닿아 있다. 이는 다분히 멜로드라마적 상상력의 영역에서 힘을 발휘한다. 또한, <허스토리>의 멜로드라마성은 모성 멜로드라마의 틀을 차용하는 동시에 이를 ‘가족 너머의’ 연대로 이끌어내고 있다. 진취적인 여성과 딸의 관계는 점차 관습적인 방식의 모성본능을 지워나가며 동등한 여성들끼리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한평생을 희생으로 바친 ‘위안부’ 여성과 원망과 혐오에 사로잡혔던 아들의 관계는 마지막 재판을 통해서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닌 관계에 기반한 가족으로 거듭난다. 이렇게 모성 멜로드라마 내에서의 의미심장한 변형은 분명 가족의 틀 뿐만 아니라 법, 민족, 국가의 규범과 틀까지 뒤흔들 가능성을 보여준다.
같은 맥락에서, <허스토리>와 <아이 캔 스피크>에서 증언은 한국사회라는 내부로 향해 있지 않다. 이 점은 특별히 주목할 만한데, 이 영화들에서 ‘위안부’라는 과거가 “국경이나 문화적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적, 법적, 도덕적 귀결을 수반했던 트랜스내셔널한 기억의 일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허스토리>는 <귀향>과 매우 중요한 연결점을 지니고 있는데, 두 영화에는 ‘위안부’ 역사의 시각적 메타-기억화를 제시하는 동일한 장면이 등장한다. 일종의 원자료로서 1991년 김학순의 공개회견장면이다. 두 영화는 이 순간을 모두 TV 모니터의 화면을 통해 보여준다. <귀향>의 첫 오프닝 시퀀스는 이 영상에 나타난 김학순의 클로즈업에서 시작되는데, 이 화면을 다른 ‘위안부’ 피해여성이 보고 과거로 빠져드는 장면이다. <허스토리>에서도 틀어놓은 TV 화면에서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이 비치고 이를 극 중 인물들이 바라보는 것이 나온다. 이 첫 공개 증언이 기억의 방아쇠 역할을 하는 <귀향>에 비해서, <허스토리>는 다른 피해자 여성의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촉발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주된 사건인 관부재판은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피해 사실이 공개되면서 부산에 당시 ’정신대 신고전화’가 개설되고 함께 모이게 된 피해여성들이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시작되었다.
<허스토리>에서는 기억과 역사, 재현의 문제를 정교하게 고양되는 시퀀스가 존재한다. 배정길은 자신이 끌려갔던 대만의 위안소를 방문하고 재판을 위해 문정숙은 이 여정을 카메라에 담는다. 지금도 남아 있는 건물을 거닐며 배정길은 자신이 있었던 방의 위치까지 기억하고, 문정숙은 묵묵히 뒤를 따라가며 그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본다. 잡초가 무성한 건물 한켠에 배정길이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볼 때, 영화는 이 순간을 TV모니터 안의 배정길의 모습으로 전환시키며 자연스럽게 이접된 시간과 공간을 교차시킨다. 이 때, TV 모니터의 거친 질감과 조악해보이는 색채감은 199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앞서 삽입되었던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 영상을 연상시킨다. 즉, 역사적 기억이 영상으로 전환되어 계속해서 기억되고 다시 등장하듯이, 허구 속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도 한번 더 영상 속으로 들어가며 지금에서처럼 재판장에서, 혹은 다시 언젠가는 다른 미래의 시간과 장소에서 재등장하는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위안부 극영화들은 정체불명의 구별되지 않는 다수의 집단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개별적 인간 존재’를 향해 말을 걸며, 역사적, 정치적으로 정당한 공공기억을 위한 감정의 형태를 구축한다. 세 편의 영화 모두를 관통하는 특징으로, ‘위안부’ 여성들을 매개하는 현재의 존재들에 주목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극중 인물들(<귀향>에서의 영매, <아이캔스피크>의 구청직원/영어개인교사, <허스토리>의 여행사대표)이기도 하고, 영화제작과 상영, 담론적 확산을 가능하게 했던 관객들이기도 하며, 앞으로도 마음을 움직여 참여할 시민들이기도 하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멜로드라마적 상상이자 메타기억으로서, ‘위안부’ 극영화들은 ‘위안부’ 문제가 통과해야 할 역사적, 정치적, 미학적 관문들을 보여준다. 최근의 영화들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관의 관계를 넘어서 아직까지 위력을 발휘하는 식민 구조를 해체하고자 하는 탈식민주의적 과제이자 여성운동과 인권운동이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트랜스내셔널한 프로젝트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 무관심과 망각의 폐허 속에서 ‘위안부’ 역사의 진실들을 길러내고, “이 문제를 어떻게 개인적인, 집단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비판적인 기억의 행위로 이끌어 올 수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