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aper examines a social and cultural history of horror films through the keyword “technology”, focusing on
Science fiction film is closely connected with technology in film genres. On the other hand, horror films have been explained in terms of nature/supernatural. In this regard,
In science fiction horror films, which appeared in the post-war boom, the “other” that manifests as aliens is the entity that destroys the value of prosperity during post-war America. While this prosperity is closely related to the life of the middle class in accordance with the suburbanization, the people live conformist lives under the mantle of technologies such as the TV, refrigerator, etc. In the age of the Vietnam War, horror films demonize children, the counter-culture generation against a backdrop of the house that is the place of isolation and confinement. In this place, horror arises from the absolute absence of technology. While media such as videos, internet, and smartphones have reinforced interconnectedness with the outside world since the 1980s, it became another outside influence that we cannot control. “Found-footage” and “torture porn” which were rife in post-9/11 horror films show that the technologies of voyeurism/surveillance and exposure/exhibitionism are near to saturation.
In this way,
영화장르에서 테크놀로지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장르는 단연 SF일 것이다. 그에 비해 호러영화는 주로 통제되지 않는 (초)자연과 관련한다. 비비언 소브책(Vivian Sobchack)은 고전적 스튜디오 시기 할리우드의 호러영화를 ‘알려져 있는(known)’ 세계를 초월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그에 대한 응징으로 설명했다. ‘몰라도 되는 것들이 있다’는 관념이 호러 장르를 지배하고, 그것을 어기는 것이 서사적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SF는 ‘미지의(unknown)’ 세계로의 돌진과 그 밑에 깔려 있는 두려움을 뒤엎는 기술적 낙관주의를 자신의 세계관으로 갖는다.
대표적인 영화장르 이론가 스티브 닐(Steve Neale)이 자신의 저서 『장르와 할리우드
이런 점에서
전통사회에서 공포는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자연의 힘과 인간의 무지에서 오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개인이나 작은 공동체가 감수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술로부터 해방된 근대사회에서 공포로부터 안전감을 확보하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 되었고 사회의 합리화와 과학화라는 두 장치가 그것을 수행하게 되었다. 즉, 사회가 공포를 합리적‧과학적으로 관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공포를 제어하고 관리해야 할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단지 최근의 디스토피아적인 포스트휴먼 SF영화의 관심사만은 아니다. <프랑켄슈타인>에서 1950년대의 B급 SF호러를 거쳐, <파라노말 액티비티 Paranormal Activity>(2007)같은 ‘CCTV호러’에도 해당한다. 물론 드라큘라 같은 (초)자연적인 공포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호러에서 괴물은 일반적으로 자연의 개념, 특히 여성적 자연의 개념과 연결된다. 여성으로 상징되는 자연의 공포를 남성적 테크놀로지로 극복하고 거칠고 반항적인 자연을 남성적 훈육을 통해 길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과학의 합리성(과학혁명)인 것이다.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드라큘라 Dracula』(1897)가 근대 과학기술혁명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서 나온, 테크놀로지에 대한 반동이라면 <프랑켄슈타인> 원작과 영화는 여성(자연)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출산(재생산)을 관리하거나 모방함으로써 자연(괴물)을 조정하려는 남성적 시도의 실패를 드러낸다.
호러영화를 사회문화사적 관점에서 선구적으로 연구했던 앤드루 튜더(Andrew Tudor)는 “호러영화에서 과학이 위험하다는 믿음은 유령, 악귀, 뱀파이어, 좀비의 사악한 경향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중심적”이라고 말했다.
『공포의 불꽃』은 서론 외에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고전 호러와 호러영화를 설정하기(Classical Horror and Establishing the Horror Film)’, 2부는 ‘모던 호러와 진보에 대한 공포(Modern Horror and the Fear of Progress)’, 3부는 ‘기술능통 세계에서의 동시대 포스트모던 호러(Contemporary and Postmodern Horrors in a Tech-Savvy World)’이다. 시기별로 본다면 1부가 고딕소설 시기부터 1950년대 SF호러까지, 2부가 1960년대 모던 호러의 탄생부터 1990년대까지, 3부가 인터넷과 휴대폰 등 일상적 테크놀로지의 영향력이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하는 2000년대 이후를 다룬다. 각 부는 3-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 논문에서는 부와 장에 얽매이지 않고, 큰 얼개를 따라가며 핵심적이라고 여기는 부분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1790년경부터 1900년경까지 중흥을 맞았던 고딕 소설과 그 각색 연극, 무대 쇼 등은 호러영화의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일단 외적인 면에서 그것은 호러가 창조되는 세팅을 구축한다. 내적인 측면에서 호러는 심리적‧무형적 형식의 공포를 가져다주는데 이것이 호러영화의 멘털리티를 구성한다.
호러는 문화적 규범을 가정하며 그에 대한 파괴 위에 기초한다. 호러는 사회를 통제하는 내적인 힘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러한 괴물의 양가성은 괴물과 대립하는 것으로 상징되는 테크놀로지에도 해당한다. 테크놀로지는 인간을 지배해왔던 자연의 힘에 대한 통제라는 점에서 진보적인 성격을 갖는다. 자연적 질서란 결국 변하지 않는 질서이며 현상유지의 질서이다. 보수주의적 시각에서 테크놀로지는 자연에 반대되는 기술, 자연스러운 것과 반대되는 기계적인 것, 개방성에 반대되는 통제, 개인 간의 차별성에 반대되는 평형화, 자유에 반대되는 평등 우위, 개인적 우월성에 반대되는 평등화를 표상한다. 결과적으로 테크놀로지는 자연이 불변하는 권위에 대한 근원이 아니라 재구성될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표상한다.
신시아 A. 프릴랜드(Cynthia A. Freeland)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여성적 재생산의 대리물이자 낭만주의적 자연이 상징하는 순수와 무구, 메리 셸리(Mary Shelley) 원작소설에 대한 기존의 페미니즘적 독해에 따라 자연(여성)으로 해석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괴물을 로봇 마리아와 연결시킬 수 있다. 역시 테크놀로지의 산물인 마리아는 노동자들을 선동하여 기계화로 점철된 ‘포드주의 왕국’을 전복하고자 한다.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이 테러의 대상인 데 반해 <메트로폴리스>에서 마리아는 군중들에게 ‘테러’(반란)를 부추기는 로봇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비천함(abjection)과 두려움을 야기 시킨다는 점에서 괴물과 같은 대타자이다.
두 영화는 산업자본주의가 고도화되던 시기 테크놀로지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를 반영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19세기 초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특히 <메트로폴리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기계문명에 의해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반작용인 것이다. 영화 속 군중들이 <프랑켄슈타인>처럼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메트로폴리스>처럼 지나치게 수동적이라는 점에서 이는 또한 당시 지배체제가 군중을 바라보는 방식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그들은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이 『군중심리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프로듀서 발 루튼(Val Lewton)에 의해 제작된 <캣 피플 Cat People>(1942),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I Walked with a Zombie>(1942), <표범 인간 The Leopard Man>(1943) 등 RKO가 제작한 일련의 사이클은 전쟁 전 유니버설의 호러영화들과는 달리 강렬한 비주얼과 특수효과에 기대지 않았다. ‘괴물’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이 전략은 ‘호러는 보는 것보다는 상상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부각하며, 호러를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등이 유럽을 비롯한 이국적 배경이었다면 이 영화들은 미국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호러영화의 향후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첫째는 유럽 전통의 초자연적 공포를 현대 미국으로 옮겨오는 것, 둘째는 외부의 위협을 인간 내면의 심리적 공포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들은 1960년대 모던 호러를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어떤 매개가 있어야 했다. 여기에 1950년대 SF호러 하이브리드 장르의 중요성이 있다.
두채니는 전후 할리우드에서 전통적인 호러영화는 휴면상태에 접어들었지만 ‘핵폭탄과 함께 살아가기’라는 가공할 테크놀로지의 공포가 영화 속에 스며들었다고 언급한다.
릭 알트먼(Rick Altman)은 장르의 재정의(redefinition)를 논하면서 유니버설이 이전이라면 괴수영화(creature feature), 호러영화로 명명했을 <해양 괴물 The 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1954) 등 자사의 영화들을 어떻게 SF장르로 마케팅 했는지 이야기한다. <해양 괴물>은 제목에서 암시하듯 전형적인 괴수영화였으며 유니버설은 인간과 동물, 인간과 시체, 인간과 미지의 무엇을 결합시키는 장르로 명성을 쌓아왔다. <해양 괴물> 역시 그런 전통의 연속선상에 있었으며 과학기술과 별다른 연관성도 없었다. 그러나 전통적 호러가 쇠퇴하고 SF라는 새로운 용어가 유행하자 재빠르게 이를 전유했다. 사실상 SF영화로 불린 주요한 영화들이 유니버설에 의해 제작되었다. 즉 유니버설은 장르를 재정의 하면서 호러영화를 SF영화로 새롭게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렇게 마케팅적 전략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호러와 SF는 전후 냉전시기에 미국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재현하는데 있어 사실상 한 몸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이 시기 미국사회의 불안과 공포의 대상은 핵을 둘러싼 미소간의 군비경쟁과 매카시즘에 의해 도마 위에 오른 공산주의였다. 많은 이들이 <괴물 The Thing from Another World>(1951), <우주 전쟁 War of the Worlds>(1953), <신체 강탈자의 침입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1956) 등의 영화를 핵으로 무장한 공산주의의 침공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안과 공포로 설명했다. 그 공산주의란 소련과 같이 획일화된 전체주의(스탈린주의)이며 여기서 또 다시 이를 자세히 거론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외부의 공포를 내면화하는 미국인들의 심리상태이다. 두채니는 이 당시 호러의 원천으로 과학의 번영을 언급하며 영화제작자들에 준 두 가지 영감은 ‘사회에 대한 공포’와 ‘과학적 진보에 대한 공포’라고 설명한다.
우선 과학적 진보에 대한 공포를 보자. 많은 영화들에서 외계인들은 지구인보다 우월한 과학기술을 소유하고 있다. 문명을 자임하는 인간 세계는 낡은 세계로, 강력한 기술적 진보를 표상하는 외계인은 신세계로 묘사된다. 외계인을 퇴치하기 위해선 더 우월한 과학기술을 보유해야 한다. <괴물>에서 캐링턴 박사는 “오직 과학만이 그(외계인-인용자)를 정복할 수 있어요. 다른 모든 무기는 무력하죠”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과학에는 적이 없어요. 오직 연구할 현상만이 있죠”라고도 한다. 이렇듯 과학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이미 전전(戰前)의 <프랑켄슈타인>, <닥터 모로의 DNA Island of Lost Souls>(1932), <투명 인간 The Invisible Man>(1933) 등 ‘SF고딕’에 등장하는 미친 과학자들에게서도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은 중세 성이나 열대 섬, 외딴 저택 같은 장소에서 작업을 실행하는 말 그대로 불가사의한 열정에 사로잡힌 고립된 인물들이었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1950년대 SF영화가 도덕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한다고 말했다. “우리 안의 잔인성 혹은 조금도 도덕적이지 않은 정서를 방출시킬, 도덕적으로 용인된 환상”이자 “우리 안의 공포심과 혐오감을 자극하는 온갖 속성을 지닌 변종들에게 우월감을 느낌으로써, 우리는 도덕적인 양심의 가책을 걷어낸 채 잔인함을 즐기게” 된다는 것이다.
호러영화가 극한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집중하는 요소는 타인에 대한 불안이다.
그리고 1960년대는 그렇게 사회와 유리된 삶을 살아가는 교외의 한 청년의 끔찍한 살인, 그리고 존재의 불안과 정체성의 위기, 더 나아가서는 미국적 가치와 사회의 총체적인 붕괴로 시작한다. 1950년대 외계인 침공의 타자들은 이제 ‘내 안의 타자’로 전이된 것이다.
모던 호러의 시작을 알리는 <싸이코>는 그런 점에서 고전 호러와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크 얀코비치(Mark Jancovich) 역시 1950년대 SF호러영화의 한 하위장르를 ‘정체성 위기의 내러티브’(narratives concerned with “crises of identity”)로 명명하며
하지만 <싸이코>가 모던 호러의 시발점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1960년대 이후 호러는 이제 미친 과학자와 외계에서 온 괴물이 아니라 보통의 개인들로 채워졌다. 핵 공포가 조금씩 완화됨에 따라 테크놀로지에 대한 공포 역시 점진적으로 사라져갔다. 그러나 1960년대와 그 이후를 특징짓는 호러로서 고립에 대한 공포를 빼 놓을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이전 시기 SF호러영화가 번성했던 사회 심리적 기저에는 안락한 중산층적 삶을 위협하는 타인‧타자들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타인들이 있는 곳, 즉 사회에 대한 공포였다.
이제 그 당연한 귀결로서 공포는 고립(isolation)의 공포, 즉 갇힘(confinement)과 제약(constraint)의 악몽으로 발전한다.
잠시 영화제작을 둘러싼 세대적 측면과 기술‧정책에 눈을 돌려보자. 스튜디오 시스템의 붕괴 이후 1950~60년대에는 십대를 겨냥한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들이 번성했다. 이 영화들의 주요 장르는 단연 호러와 SF였다. 이 청소년들은 또한 심야시간대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1930~40년대 고전 호러영화들의 열정적인 수용자였다. 1960년대 이후 호러영화는 이들 세대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여기에 호러영화의 질적 발전을 가져온 두 가지 요소는 기술적 변화와 정책적 변화였다. SF만큼은 아니라 할지라도 호러 역시 특수효과에 많은 부분을 의존했다. 당시 청소년들은 호러를 하나의 만화장르로 성립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EC 코믹스의 호러만화에 열광했다. 그러나 특수효과가 부실했던 호러영화는 역설적으로 호러만화의 리얼리즘을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호러만화의 생생한 폭력묘사는 영화가 재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대, 특수효과 기술, 표현의 자유 확대는 1960년대 이후 호러영화를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 <로즈메리의 아기 Rosemary’ Baby>(1968), <엑소시스트>, <텍사스 전기톱 학살>, <오멘 The Omen>(1976), 그리고 <할로윈>으로 시작하는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중반의 슬래셔 사이클은 <싸이코> 이후 축적된 폭력 묘사의 전시장이 되었다. 이 시기 미국 호러영화를 사회적으로 해석하는 많은 비평가들이 논하듯이 이는 베트남 전쟁이 가져온 피와 학살의 은유이기도 하다(고어 장르의 역사적 형성).
그러나 여기서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공포의 공간으로서의 집과 처단해야 할 괴물 혹은 희생양으로서의 아이‧청소년, 그리고 고립을 야기하는 테크놀로지의 부재라는 현상이다. 특수효과의 발전과는 반비례해서 이 시기 호러영화들은 유달리 테크놀로지에 대한 언급이 결여되어 있다. 물론, 그것은 1950년대에 기묘한 동거를 이루었던 SF호러 하이브리드가 이제 분리되어 제 갈 길을 간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Space Odyssey>(1968) 이후 <혹성 탈출 Planet of the Apes> 시리즈, <롤러볼 Rollerball>(1975), <미지와의 조우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1977),
두채니는 모던 호러의 괴물은 단순한 악이 아니라 사회의 거대한 진보를 일축하는 아웃사이더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할로윈>, <13일의 금요일 Friday the 13th>(1980) 등의 슬래셔 영화에서 십대 청소년들은 오컬트의 아이/악마보다 더 직접적으로 성해방 운동의 여파를 상징한다. 그것이 난잡하고 문란한 것으로 묘사되고 응징해야 할 어떤 것으로 그려진다는 것은 전통적인 가족 가치와 오랫동안 미국사회를 지배했던 청교도 윤리(비록 위선과 기만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할지라도)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이다. 오컬트 영화는 악마의 기운이 지배하는 집을 폐쇄공포증적인 고립의 공간으로 설정하지만, 슬래셔 영화는 집과 가족을 떠난 청소년들의 여가 공동체를 도끼를 든 살인마가 출몰하는 아비규환으로 그린다. 부모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는 그들은 현대적 테크놀로지(전화, 전등, 커뮤니케이션 도구 등)의 부재 속에서 고립이 가져다주는 공포의 본질에 직면한다.
그러나 테크놀로지가 자연‧주술로 상징되는 보수주의와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앞서 거론했듯이 테크놀로지의 진보성은 자연이 불변하는 권위에 대한 근원이 아니라 재구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점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재구성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때 발생한다. <프랑켄슈타인>과 <메트로폴리스>, 그리고 1950년대 SF호러 영화가 그러했던 것처럼 테크놀로지의 통제 불가능성은 1980년대 이후 더욱 더 전면화 된다. <스타워즈 Star Wars>(1977)는 1950년대 이후 SF 장르의 두 번째 전성기를 가져왔지만 한편으로는 보수회귀로 나아가는 1980년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핵공포와 대내적으로는 유례없는 번영의 시기였던 1950년대처럼 1980년대는 대외적으로 소련에 대항한 ‘스타워즈 계획’과 대내적으로 ‘혼돈과 무질서의 1960~70년대’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시기였다. 얀코비치가 언급하듯이 1980년대의 SF호러영화들은 1950년대 영화의 리메이크이거나 최소한 그러한 방식의 재작업이었다.
<폴터가이스트 Poltergeist>(1982)에서 텔레비전은 아이들의 영혼을 사로잡는 ‘부기맨(boogeyman)’이 되며, 우리는 여기에서 “텔레비전의 권력, 즉 시청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을 몰래 지켜보며 여가생활의 조직적 중심이 된 텔레비전의 권력”
확실히 1980년대 이후 비디오는 영화관람 문화 그 자체를 바꿔놓았다. 극장관람은 케이블 TV와 비디오로, 개인 영화 찍기는 8mm 카메라에서 비디오카세트로 바뀌었다. 이것은 개인자산으로서의 영화 시대를 탄생시켰으며 일상의 기록과 정보수집으로서의 영화 문화를 창출했다. 1990년대 호러영화에서 각각 메인스트림과 인디펜던트를 대표하는 <스크림 Scream>(1996)과 <블레어 윗치 The Blair Witch Project>(1999)는 이러한 영화 문화가 낳은 산물이다. 전자는 호러영화 비디오를 반복해서 보고 장르의 규칙을 토론하는 하우스 파티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후자는 초자연적 악령 전설에 얽힌 진실을 비디오카메라로 기록하는 영화학도들의 이야기이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 한 번 보기만 하면 1주일 안에 죽음을 야기하는 비디오테이프의 저주를 다룬 <링 リング>(1998)이 나왔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5. 연결성의 공포: 9?11 이후 관음과 전시의 테크놀로지
19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은 내적 자아와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방식으로서의 테크놀로지로 보편화 했다. 이것은 정보의 민주화를 가져왔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외부 영향력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연결성이 단순히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공포의 원천이라는 것을 보여준 사건은 9‧11이었다. 9‧11은 안전의 허울을 붕괴시켰으며 테러의 이미지를 유례없는 테크놀로지로 우리의 삶과 연결했다. 텔레비전, 휴대폰, 이메일, 블로그 등을 통해 전달된 충돌과 고통의 이미지는 언제 어디서라도 공포가 발현될 수 있다는 ‘공포의 문화(culture of fear)’를 창조했다.
호러영화와 테러리스트의 역할은 공히 두려움과 공포를 야기하는 일이다. 영화도 테러리즘도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끔찍한 이미지의 시각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맥을 달리하지만 9‧11 이후의 파운드-풋티지 호러 역시 관음‧감시와 노출‧전시 사이의 그 어디쯤에 있다. 이 영화들은 누군가가 찍은 동영상을 관찰하는 관객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관음의 욕망을 부추긴다. 이러한 슈도-다큐멘터리(pseudo-documentary) 스타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만 9‧11 이후 이런 스타일의 만연은 이 ‘사건’과 분리시킬 수 없다. “호러영화는 자율적인 텍스트로서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대 문화에 대한 신중한 참여를 함유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음‧전시의 욕망을 최악의 극단으로 밀어붙인 것이 <쏘 Saw>(2004), <호스텔 Hostel>(2005)과 그 후속편들일 것이다. 이 고문 포르노들은 명백하게 9‧11 이후 관타나모(Guantanamo)와 아부 그라이브(Abu Ghraib)에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미군의 고문을 암시한다. 물론 이는 테러리스트들이 인질과 미군에게 행한 고문에 대한 일종의 ‘복수’로 이루어졌다. <쏘>에서 비디오 영상으로 재현되는 희생자는 9‧11 이후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퍼진 테러리스트들의 인질 동영상을 반향 한다. <쏘>, <호스텔> 등의 영화에서 평범한 사람은 고문‧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이들은 잔혹한 가해자로 변모한다. 이러한 행위는 그들이 당한 일 때문에 정당화 된다(9‧11 피해자의 정당한 복수). 고문에 대한 미국 정부의 완곡한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강화된 심문(enhanced interrogation)일 뿐이다.
이러한 동시대 사회문화적 토대 위에서 두채니는 현대 세계의 호러가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새로운 지각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제 『공포의 불꽃』에 대한 비판과 제언으로 결론을 대신하려고 한다. 호러영화를 사회사적으로 탐구한 것의 기원이 지그리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의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 독일 영화의 심리학적 역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문화사적 관점의 호러영화 연구는 주류였다고 말하기 어렵다. 호러영화 연구가 장르연구에서 웨스턴, 갱스터, 멜로드라마 연구에 이어 급부상하는 계기는 무엇보다도 영화이론에 미친 정신분석학의 영향으로 설명 가능하다.
이 책은 테크놀로지를 SF의 전유물로 여겼던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테크놀로지로 읽는 호러영화의 사회문화사라는 점에서 그 독창성을 지닌다. 그러나 여러 곳에서 빈틈과 약점 역시 노출된다. 역사적 흐름에 치중한 탓인지 테크놀로지와 호러영화를 꿰뚫는 통찰력 있는 이론적 개념이 없다는 것은 아쉽다. 이를테면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1970~80년대 호러영화를 ‘억압된 것의 귀환’으로 설명한 로빈 우드는 ‘비균질성(incoherence)’이라는 개념으로 B급 호러영화, 특히 <텍사스 전기톱 학살>이나 조지 로메로(George Romero)의 ‘좀비 3부작’, 래리 코헨(Larry Cohen) 영화의 저항성을 끄집어냈다.
이러한 약점은 이 책이 본인의 뚜렷한 자기주장보다 많은 부분 기존연구의 인용으로 대체되거나 인용되는 맥락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두채니는 모던 호러를 ‘성격의 호러(Horror of Personality)’, ‘묵시록의 호러(Horror of Apocalypse)’, ‘악마의 호러(Horror of Demonic)’ 등으로 분류한 찰스 데리(Charles Derry)의 논의
둘째로 호러와 SF의 경계를 지우고 유연한 장르 관점을 취하는 것은 환영받아 마땅하나 지나치게 외연의 확대로 나아가는 문제가 지적될 수 있다. 1950년대 SF호러 하이브리드야 그렇다 하더라도 동시대 영화에서 호러라고 보기 어려운 SF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언급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갖고 있는 할리우드 중심성이다. 물론 이는 진부한 비판이다. 저자는 미국인이며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할리우드가 단지 미국영화가 아니듯, 호러영화가 곧 할리우드의 산물인 것도 아니다. 그는 <메트로폴리스>나 <고지라 ゴジラ>(1954), <링> 등 미국 밖의 (SF)호러영화를 간간이 언급하지만 이 영화들이 갖고 있는 고유의 사회문화적 맥락은 호러영화와 미국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보완재 그 이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는 <싸이코>의 영국 태생 ‘쌍생아’로서 <피핑 톰>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면서도 같은 시기 영국에선 왜 모던 호러가 아닌 해머(Hammer) 영화사의 ‘드라큘라’ 시리즈 등 고딕 호러 사이클이 그토록 인기 있었는지, 왜 그것은 일국적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장르란 개별 텍스트가 아닌 사이클이며, 사회를 설명하는 것은 무엇보다 사이클의 원심력인데도 말이다. 이탈리아 지알로 영화(cinema giallo)와 할리우드 슬래셔의 관계, 2000년대 J-호러와 할리우드의 리메이크 등 호러장르의 트랜스내셔널한 측면을 상기한다면 이는 아쉬운 부분이다.
이러한 비판점에도 불구하고 『공포의 불꽃』은 유용한 책이다. 이 책 자체가 놀라운 이론적 통찰을 전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호러영화와 사회를 둘러싼 수많은 쟁점들을 제기하고 또 돌아보게 만든다. 본 논문이 로빈 우드, 더글라스 켈너(Douglas Kellner), 마크 얀코비치, 배리 키스 그랜트, 케빈 J. 웻모어(Kevin J. Wetmore) 등 테크놀로지와 무관하게 호러영화를 사회사로 설명했던 논자들을 대거 끌어들인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기존 연구 성과에 기초해 테크놀로지라는, 어찌 보면 호러와 대립하는 것으로 보이는 개념으로 그 역사를 재정리한 것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더 나아가 테크놀로지 진보에 대한 기대와 공포가 점점 우리의 일상적 삶과 불가분의 관계가 되고 있는 오늘날 그것은 더 없이 필요하고 시의적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