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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 의학사 교육을 통한 의학전문직업성 함양의 한 가지 방법 History?in?Lives:?A?Way?of?Cultivating?Medical?Professionalism?through?Medical?History?Education
ABSTRACT
인물사: 의학사 교육을 통한 의학전문직업성 함양의 한 가지 방법
KEYWORD
Historical figures , History of medicine , Professionalism
  • 서 론

    최근 국내외 많은 대학에서 의료인문학 또는 인문사회의학을 교육하고 있다. 좋은 의사를 양성하는 데 있어, 구체적으로는 의학전문직업성을 함양하는 데 있어 의료인문학이 필수적이라는 데 중지가 모인 결과이다[1-3]. 2009년 의학 교육을 혁신하기 위해 결성된 PRIME (Project to Rebalance and Integrate Medical Education)은 몇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의료인문학 교육의 필요성을 되새기고 교육목표를 제시했으며[1-3],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과대학협의회는 ‘의학 교육에서 인문학이 맡은 핵심적 역할’(FRAHME, Fundamental Role of the Arts and Humanities in Medical Education)이라는 개념을 창안하고 의료인문학을 교육에 활용할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한 바 있다[4].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의학 교육 평가인증기준인 ASK 2019에 의료인문학을 포함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5].

    이러한 흐름은 길게는 “좋은 의사는 또한 철학자이어야 한다”라고 역설한 고대의 갈레노스(Claudius Galenus, 129-c. 126) [6] 또는 의학 전(pre-medical) 교육에서 인문학 교육을 강조했던 근대의 플렉스너(Abraham Flexner, 1866–1959)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으나[7,8], 현대로 논의를 국한하면 1960년대부터 새롭게 부상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의 반문화 운동은 기성 질서 전반을 공격했고, 의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체를 단순히 기계적인 개입이 가능한 생물학적인 존재로 바라보고, 모든 문제를 의학적인 차원으로 환원하는 생의학적 가정 일체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9]. 이에 따라 일군의 의학자와 인문학자는 의학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주문하였다. 1969년 에드먼드 펠레그리노(Edmund Pellegrino, 1920–2013) 등을 중심으로 조직된 ‘건강과 인간 가치 모임’ (Society for Health and Human Values)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미국 내 의과대학의 의료인문학 교육현황을 조사하고, 의료인문학 교육의 확대를 촉구하였다[10-12].

    의학사는 이러한 의료인문학 교육에서 빠지지 않는 영역이다. 이른바 ‘문사철’로 통용되는 인문학의 핵심 분야일 뿐 아니라 반성적 성찰을 기본으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의학사, 특히 반문화 운동의 자장 아래 형성된 20세기 후반의 의학사는 의학 역시 사회의 일부이며, 일견 당연해 보이고 변할 것 같지 않은 현실 또한 역사의 산물임을 강조한다[13]. 많은 의학사 연구자는 이러한 역사학의 특징이 좋은 의사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14,15], 최근에는 의학 교육계에서도 의학전문직업성을 함양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의학사 교육에 주목하고 있다[2,16].

    현재 한국의 의학사 교육은 기반을 다지는 단계이다. 서양의학사와 한국의학사 각각을 개괄할 수 있는 교과서가 번역되고 집필되었으며[17-20], 2010년을 기준으로 전체 41개 의과대학 가운데 절반이 넘는 23개 의과대학에서 의학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20]. 2010년에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사연구소에서 발간한 “연세의사학”에 의과대학과 치과대학, 한의과대학 등의 의학사 교육현황이 자세하게 보고되기도 했다[21-25]. 현재 상황은 자세하게 파악되지 않지만, 가톨릭대학교, 강원대학교, 건양대학교, 경희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동아대학교, 전남대학교, 제주대학교, 차의과학대학교 등 2010년 이후 의학사 강의 또는 의학사를 포함한 교육과정이 시작된 의과대학이 다수인 점을 고려할 때, 의학사 교육의 기반은 더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반의 확장에도 구체적인 교육방법론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실제 교육현장에서 의학사 교육을 의학전문직업성의 함양에 활용하려면 어떤 식으로 수업을 구성하고 진행해야 하는가? 의학사 교육은 대개 서양의학사와 한국의학사 전반을 통시적으로 강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역사학의 전통적인 교수법으로, 장구한 흐름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현실의 위치를 깨닫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하다. 학문으로서의 의학사를 개괄하는 데에는 좋지만, 이것이 의학전문직업성의 함양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러한 측면에서 의학사는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에 도입하기 까다로운 분야로 지목되기도 한다[26].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인물사를 활용한 교육을 한 가지 방법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연구대상 및 방법

       1. 연구 개요

    본 연구는 인물사를 활용한 의학사 교육과 의학전문직업성 함양의 교육방법론을 개발하고, 이를 실제 교육에 적용하여 효과와 한계를 분석하고자 한다. 새로이 개발된 교육방법론은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예과 1학년을 대상으로 매주 2시간, 15주간 진행된 강의인 ‘치유자리더십’에 적용되었다. 교육에 대한 만족도와 건의사항은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MASTER의학교육지원센터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동 기관에서 작성한 교과목 운영평가서를 참고하였으며, 각각에 대한 정량적 분석과 정성적 분석을 시행하였다. 본 연구는 CMC임상연구심사위원회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연구윤리사무국의 승인을 받았다(IRB no., 2022-0032-0001).

       2. 연구방법: 교육방법론의 개발과 적용

    본 연구는 상기한 바와 같이 새로운 교육방법론의 개발과 적용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이론사적 검토를 통해, 지금까지 활용되어 왔던 인물사 교육방법론의 의의와 한계를 확인하였다. 인물사는 역사를 서술하는 오래된 방식이자, ‘좋은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예전부터 이용되었던 방법이다. 그러하기에 인물사를 활용한 연구와 교육은 역사기술(歷史記述, historiography)과 의학 교육이라는 상호 교차하는 두 가지 맥락 속에서 꾸준히 비판받고 재조명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역사학과 의학 교육학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인물사 교육방법론을 개발하였다.

    다음으로, 개발된 교육방법론을 실제 교육에 적용하고, 효과와 한계를 확인하였다. 인물사 교육방법론이 적용된 강의는 치유자리더십의 후반부 과정인 ‘인물탐구’이다. 치유자리더십의 전체 교육과정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구성된다. 전반기 7주 동안은 질병, 고통, 치유, 치유자의 의미를 확인하고, 치유와 사회정의의 관계와 치유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돌아보며, 후반기 6주 동안 진행되는 인물탐구 과정에서는 구체적인 인물의 사례를 논의한다.

    전반기 수업이 의료 전반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의료인이 갖추어야 할 의학전문직업성의 여러 요소를 제시한다면, 후반기 인물탐구 과정에서는 개별 인물의 삶을 통해 여러 사회적, 개인적 맥락에서 의학전문직업성이 탐색되고 구현되는 과정을 살핀다. 인물탐구 과정의 학습성과는 다음과 같다. (1) 한 인물의 생애를 탐구하여, 개인적, 사회적 성장배경 및 업적을 찾아내고 역사적 의미와 교훈을 찾아낼 수 있다. (2) 대상 인물의 생애에서 의료인의 사회적 역할 및 책임을 구체적으로 도출해낼 수 있다. (3) 자신이 미래에 되고자 하는 의사상을 구체화할 수 있다.

       3. 자료 수집

    먼저 새로운 인물사 교육방법론의 개발을 위해, 역사 일반과 의학사, 의학 교육의 맥락에서 인물사에 내려진 평가를 조사하였다. 다음으로 방법론의 효과와 한계를 확인하기 위해,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MASTER의학교육지원센터에서 작성한 교과목 운영평가서를 검토하였다. 이는 동 기관에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학기가 종결된 이후 학생의 강의평가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성한 문서이다. 수업 전반에 대하여 모두 13개의 객관식 문항이 제시되었으며, 이에 더해 인물탐구를 포함한 수업 섹션별로 4개의 객관식 문항과 1개의 주관식 문항이 추가로 제시되었다. 객관식 문항에 대한 응답은 모두 5점 척도로 이루어졌으며, 수업에 관한 자유로운 의견을 요청한 주관식 문항에 대해서는 단답형부터 서술형까지 다양한 형식의 응답이 제출되었다.

       4. 자료 분석

    인물사를 다룬 문헌과 교과목 운영평가서에 수록된 강의평가에 대한 정성적, 정량적 분석을 시행하였다. 5점 척도로 제출된 객관식 설문에 대한 응답결과는 연도별로 집계하여 평균값과 표준편차를 산출하였으며, 이를 위해 R ver. 4.1.2. (2021; The R Foundation for Statistical Computing, Vienna, Austria)를 사용하였다. 개방형 질문으로 제시된 설문의 응답결과에 대해서는 전통적 내용분석을 적용하여, 강의의 장단점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개 연도에 걸쳐 작성된 응답을 만족과 건의사항의 대분류에 따라 분류한 뒤, 내용에 따라 다시 정리하였다.

    결 과

       1. 인물사 교육방법론의 이론사적 검토

    인물사는 역사학의 전통적인 연구방법론 가운데 하나이다. 고대의 “사기”(史記)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비롯하여 이후의 많은 역사서가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역사는 수많은 전기의 정수로 이루어진다는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의 말은 인물사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인물사의 가치를 낮게 보던 이들도 없지 않다.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로 대표되는 실증주의 역사가, 그리고 개인보다는 구조를 강조하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와 아날학파 역사가 등에게 인물사는 지나치게 주관적이거나 개인적인 기록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후 개인의 삶을 다시금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미시사의 등장과 ‘두터운 기술’(thick description)을 강조하는 인류학의 영향, 여기에 공적 기록을 남길 수 없는 이들의 삶에 주목하는 탈식민주의 역사학, 페미니스트 역사학 등의 부상과 함께 이른바 ‘전기적 전환’(biographical turn)이 일어나면서, 인물사는 유력한 역사 연구방법론으로 다시 조명 받고 있다[27].

    한편, 의학 교육에서 인물사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윌리엄 오슬러(William Osler, 1849–1919)와 같은 이들은 의학 교육이 과학적인 측면에만 집중할 경우 ‘좋은 의사’가 아닌 ‘의료 기술자’를 양성할 뿐이라 우려했다. 그가 내어놓은 대안은 인물사를 통해 바람직한 의사상을 제시하는 이른바 ‘오슬러 방법’(Oslerian method)이었다. 오슬러는 토머스 리너커(Thomas Linacre, c. 1460–1524),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 토머스 시드넘(Thomas Sydenham, 1624–1689) 등의 삶으로부터 “오래된, 하지만 여전히 생생하고 새로운 이상”을 길어 올릴 수 있으며, 학생에게 이를 제시함으로써 좋은 의사를 양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28,29].

    그러나 최근의 의학 교육 또는 의학사 교육에서 인물사의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인물사의 강조가 자칫 ‘휘그주의적’(Whiggish) 의학사로 이어질 가능성 탓이다. 오슬러와 같이 여러 위대한 의사, 특히 백인 남성 의사의 삶에 집중하는 방식의 역사 서술과 교육은 자칫 의학사의 주체를 기득권으로 한정하고, 의학사를 진보의 연속으로 기술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30]. 이는 의학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크다. 터스키기 매독실험 사건이나 731부대의 생체실험의 예가 보여주듯, 의학사는 진보의 역사가 아니다. 더 나아가 ‘아래로부터의 역사’에 주목한 이들이 보여준 것처럼, 의학사의 행위자 역시 의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의사가 아닌 의료인이나 넓은 의미의 치유자, 더 나아가 환자 모두가 의학과 상호작용하는 적극적인 주체이다[31].

    또 다른 이유는 오슬러 방법이 맥락을 사상(捨象)하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오래된, 하지만 여전히 생생하고 새로운 이상”이라는 문장에서도 보이듯, 오슬러는 여러 인물의 삶에서 맥락을 초월한 항구적인 가치를 길어 올리고자 했다. 이러한 방식은 의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선명하게 제시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학습자가 이러한 덕목을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하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이는 상황 학습과 경험학습을 강조하는 의학 교육이론의 견지에서 보았을 때, 적지 않은 한계이다[32]. 롤 모델링을 활용한 교수법이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지닌 현대사회에 걸맞지 않다는 비판은 오슬러 방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33].

    그렇다면 인물사는 폐기되어야 할 방법인가? 그렇지 않다. 오슬러 방법은 인물사를 활용하는 유일한 방식이 아니다. 다음의 두 가지 대안을 통해 오슬러 방법의 한계를 극복한다면, 인물사는 여전히 유용한 방법론일 수 있다. 하나는 사회적 맥락의 강조이다. 다시 말해 오슬러 방법에서처럼 인물로부터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읽어 내기보다는 인물 각각이 구체적인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루돌프 피르호 (Rudolf Virchow, 1821–1902)의 삶 속에서 단순히 사회를 향한 관심이라는 덕목을 강조하기보다는 피르호가 어떻게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social determinants of health)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강조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입체적이고 다양한 인물의 선정이다. 일부 위대한 의사, 주로 백인 남성 의사에 집중하는 오슬러 방법은 의학사의 다양한 주체를 반영하지 못한다. 이러한 한계는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행위자, 이를테면 여성 의사나 소수 인종의 의사, 또는 의사가 아닌 의료인을 인물사의 대상으로 선택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인물의 공과(功過)를 모두 드러내어야 한다. 상기한 바와 같이 인물의 위대함에만 집중하는 오슬러 방법은 자칫 의학의 역사가 진보의 역사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일견 인물의 한계와 단점을 드러내는 일은 의학전문직업성의 함양에 해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현실의 복잡다단함과 행위의 무거움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2. 치유자리더십 인물탐구 교육과정 개발

    1) 인물 선정

    인물사 교육방법론에 관한 이론사적 고찰을 바탕으로, 치유자리더십 인물탐구 교육과정을 새롭게 개발하였다. 먼저 수업의 응집성을 위해 여러 인물을 무작위로 배치하기보다는 주마다 하나의 주제를 할당하고 주제별로 3명 또는 4명의 인물을 배치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먼저 인물탐구 1주 차 전인치료에서는 환자라는 존재를 생물학적, 정신적, 사회적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바라본 이들, 2주 차 사회의학에서는 건강의 결정요인을 사회로 확장한 이들, 3주 차 의학의 지평에서는 질병을 넘어 건강 자체, 죽음, 발병 가능성을 의학 연구의 대상으로 새롭게 조명한 이들, 4주 차 한계와 도전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는 흑인, 식민지인이라는 이유로 받아야 했던 차별을 극복한 이들, 5주 차 국제보건에서는 나라의 국경을 넘어 세계의 건강문제에 투신했던 이들을 다루기로 하였다.

    주제를 선정한 다음에는 인물을 선정하였다. 기준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하나는 시대이다. 히포크라테스를 제외한 모든 이를 근현대의 인물로 선택했다. 보통의 인물사 수업은 대부분 전근대의 인물을 활용한다. 이미 역사적 평가가 어느 정도 완료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맥락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인물을 선택할 경우, 학생이 시간적 거리감을 느낄 뿐 아니라 인물의 삶에서 배운 바를 자신의 상황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따라 치유자리더십 인물탐구에서는 동시대의 인물 또는 가까운 과거의 인물에 집중하였다. 물론 여전히 평가가 진행 중인 인물이 대부분이라 안전하지 못한 선택일 수도 있으나, 동시대성이 주는 활력과 이에 따른 교육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하였다.

    두 번째는 성비이다. 오슬러 방법이 그러하듯, 인물사는 대개 남성을 위주로 교육된다. 이는 역사가 자신이 사회의 젠더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실제로 여성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에 여성 입학이 허가된 것은 1945년의 일이다. 그러나 현실의 젠더 불평등을 수업에서 반복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임상, 연구, 사회활동 전면에서 활약한 여성을 적극적으로 다룸으로써,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총 17명의 인물 가운데 절반이 넘는 10명을 여성으로 선정하였다.

    마지막은 인물의 범위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최근의 의학사는 치유자의 범위를 의사로 한정하지 않는다. 의사가 아닌 이들도 광의의 치유는 물론 의사의 일이라 생각되는 협의의 치료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의사뿐 아니라 비의사 의료인, 또는 비의사 연구자를 수업에 활용하고자 하였다. 현재는 17명의 인물 가운데 BRCA1 유전자와 유방암 발병의 관계를 규명한 메리 클레어 킹(Mary Claire King, 1946–)이 여기에 해당한다. 향후 인물을 추가하고 변경하면서 이 부분을 좀 더 보강할 계획이다.

    2) 수업 및 평가방식

    학생의 능동적인 참여를 위해 각 인물에 대한 조별 발표를 중심으로 강의를 설계하였다. 교수자는 조별 발표에 대한 보충 설명을 제시하고, 각 주의 주제에 관련된 인문사회의학 개념을 강의하였다. 먼저 조별 발표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모두 17명으로, 이 가운데 함께 활동했던 부부와 모녀를 하나로 묶으면 모두 15개 조가 발표할 분량이 된다. 학생은 6–7명이 한 조를 이루어 이들 인물 가운데 하나를 자율적으로 선택해 조별 발표를 진행하였다. 발표는 한 주당 세 조씩 이루어지며, 각 주에 발표되는 3–4명의 인물은 하나의 주제로 포괄된다. 즉 총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해 한 주제당 3개 조의 발표가 이루어졌다.

    발표에 필요한 자료는 교수자가 미리 제시하였다. 자료는 크게 세 종류, 인물이 직접 쓴 일차 자료와 인물의 삶을 추린 짧은 전기, 그리고 인물에 대한 평가를 담은 연구논문으로 구성된다. 일부 인물은 테드나 영화 같은 영상자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다만 이렇게 교수자가 자료를 제시할 경우 인물에 관한 선입견을 형성할 우려가 있어, 이를 막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였다. 먼저 전기와 연구논문의 경우 당대의 시대 상황과 인물의 과오를 고루 담은 것으로 선정하였으며, 더 나아가 탐구대상이 작성한 일차 문헌을 제시함으로써 학생 스스로 인물을 판단할 수 있게 하였다.

    매시간 세 조의 인물 발표가 끝난 뒤, 교수자는 주별 주제에 따른 인문사회의학의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를테면 전인치료를 다루는 인물탐구 1주차에서는 건강과 질병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법인 생의학 모형(biomedical model)과 생정신사회 모형(biopsychosocial model)을 살펴보고, 전자의 한계와 후자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는 각 조가 발표한 구체적인 사례를 개념으로 정리하여, 의학전문직업성의 기초가 되는 의학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려는 의도이다. 각 주의 주제와 선정 인물, 개념은 부록 1로 정리하였다.

    다섯 번의 조별 발표 이후에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글쓰기 방법을 교수했다. 이는 일차적으로 개별 보고서의 작성요령을 강의하는 시간이지만, 넓게는 인문학적 글쓰기의 기초를 교육하는 시간에 해당한다. 인물에 관한 문헌정보를 검색하고, 이렇게 파악한 인물의 삶에서 나름의 문제의식을 길어 올리며, 이를 중심으로 인물의 삶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재구성하고 평가하는 방법, 그리고 더 나아가 서론과 본론, 결론을 구성하는 방법과 완성된 글을 퇴고하는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교수했다.

    마지막으로 평가는 강의시간에 진행되는 조별 발표와 5,000자 분량으로 작성된 조별 보고서, 그리고 3,000자 분량으로 작성된 개별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조별 보고서는 발표내용을 정리하고, 이에 관한 교수자의 보충설명을 반영하여 작성하도록 지도하였다. 또한 개별 보고서는 조별 발표에서 다루지 않았던 인물을 주제로, 자신이 미래에 되고자 하는 의사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추도록 하였다.

    3) 수업 사례: 메리 클레어 킹

    새로운 교육방법론의 실행을 메리 클레어 킹이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3주차에 다루는 인물인 킹은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유전학을 전공한 유전학자이다. 유방암의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BRCA1 유전자를 최초로 발견하였으며, 다양한 질병과 유전자의 연관성을 연구하였다. 킹의 연구는 이후 BRCA1 유전자 변이 검사를 일반적인 건강검진 항목에 포함해야 하는지, BRCA1 유전자 변이가 발견될 경우 예방적 유방 및 난소 절제술을 시행해야 하는지 등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으로 이어졌으며, 킹 역시 직접 논쟁에 참여하였다.

    킹은 또한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시기부터 사회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여, 유전학자로 자리 잡은 이후에도 꾸준히 사회 현안에 대한 발언과 개입을 이어나갔다. 특히 1984년부터는 인권단체 ‘마요 광장의 할머니’(Abuelas de Plaza de Mayo)와 협력하며, 미토콘드리아 DNA와 사람백혈구항원(human leukocyte antigen) 분석을 통해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이 벌어지는 동안 아르헨티나 군부에 의해 납치되어 실종된 아동의 신원을 파악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킹의 사례를 통해 유도한 학습효과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비판적 탐구정신의 강조이다. 킹이 본격적으로 유전자 연구에 착수한 197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암과 유전자의 연관성은 분명치 않았다. 오히려 대다수는 이미 많은 성과를 내어놓은 미생물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암을 유발하는 병원체를 찾는 데 집중했다. 킹은 이러한 상식에 도전하여 유전자 변이에서 비롯한 질병의 가능성에 주목함으로써 의학의 연구영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의학의 지평을 넓힌 킹의 삶을 통해 학생들이 오늘날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태도를 함양할 수 있도록 하였다.

    두 번째는 기술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성찰이다. 킹이 발전시킨 유전자 분석기술의 함의는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는 ‘마요 광장의 할머니’와의 협력이 보여주듯 사회적 고통을 덜어주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으며, 유전자 변이 검사를 둘러싼 논쟁이 보여주듯 사회에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킹은 유전자 검사를 확대함으로써 유방암과 난소암 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어떤 이들은 유전자 검사의 확대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했다. 질병관리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불필요한 검사를 시행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생명공학 기업의 이익에 복무하리라는 지적이었다. 이러한 논쟁은 학생들이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좋은 소재에 해당한다.

    의도한 학습효과를 충실히 실현하기 위해, 세 가지 장치가 계획되고 실행되었다. 하나는 균형 잡힌 읽을거리의 선정이다. 킹이 BRCA1 유전자의 발견과정과 아르헨티나에서의 활동 각각에 대해 직접 서술한 두 편의 글[34,35]과 킹의 생애를 3쪽 분량으로 서술한 간단한 전기[36], 그리고 유전자 검사의 확대를 둘러싼 찬반 양측 각각의 글[37,38]을 수업에 앞서 자료실에 올려두었다. 이를 통해 킹이 어떠한 맥락 속에서 유전자 연구와 사회활동에 투신하게 되었는지, 또 유전자 검사의 확대가 어떠한 사회적 영향을 가져올지에 대해 폭넓게 읽어보게 하였다. 이에 더해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킹과 실제 유방암 환자의 일화를 다룬 스티븐 번스타인 감독의 영화, ‘애니를 위하여’(2013)를 추가로 제시하였다.

    두 번째는 발표에 대한 보충설명이다. 학생과 교수자의 상호작용은 역동적인 과정이다. 같은 인물에 대한 발표라고 하더라도 해마다 발표의 내용은 조금씩 달라진다. 인물의 삶에서 어떠한 부분을 강조할 것인지, 조마다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떤 해의 경우 킹의 인권운동에 비중을 두는 반면, 또 다른 해의 경우 유전자 검사를 둘러싼 논쟁 또는 새로운 연구영역의 개척에 주목한다. 교수자는 각 조가 초점을 맞춘 내용을 심화하고 미진하게 다루어진 부분을 보충함으로써, 학습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마지막은 개념과 이론의 소개이다. 킹의 BRCA1 유전자 연구가 촉발한 논쟁은 넓게 보면 의료화(medicalization)와 생의료화(biomedicalization)를 둘러싼 논의의 일부이다. 조별 발표와 이에 대한 보충설명이 끝난 뒤, 의료사회학과 의료인류학, 과학기술학 등이 제시하는 의료화의 순기능과 역기능, 의료화에서 생의료화로의 전환 등을 강의함으로써 킹의 사례를 현대사회의 맥락에서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이에 더하여 심화학습이 가능하도록 의료화와 생의료화를 이론적으로 분석한 읽을거리를 추가로 제시하고[39,40], 의문이 생길 경우 이메일 등을 통한 질의응답이 가능함을 고지하였다.

       3. 학생 평가

    학기가 종결된 이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MASTER의학교육지원센터에서 강의에 대한 학생의 만족도를 조사하였다. 전반기, 후반기 수업 전반에 대하여 모두 13개 문항이 제시되었고, 후반기 인물탐구에 대해서는 별도로 4개의 문항이 제시되었다. 이들 문항에 대한 응답은 5점 척도로 이루어졌으며, 이에 더해 좋았던 점과 개선·보완해야 할 점에 대한 주관식 설문을 추가로 시행하였다. 인물탐구 수업에 대한 최근 3년의 설문결과를 보면, 2019년 평균 4.54, 2020년 평균 4.69, 2021년 평균 4.73으로 전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Table 1).

    [Table 1.] Students’ assessment of the class (5-point sc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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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ents’ assessment of the class (5-point scale)

    강의에 대한 주관식 평가 역시 긍정적이었다. 시대와 성비를 고려한 인물 선정, 발표 준비과정, 발표에 대한 보충설명, 주별 개념 설명 모두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가 이루어졌다. 각각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근현대 인물을 선정하신 이유가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여성 등 사회적 차별을 극복하고 성공한 의사들의 업적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자료를 정리해서 다 올려주신 점이 정말 좋았습니다. 또 개인 보고서를 쓸 때 지켜야 하는 부분들을 정리해주신 점도 좋았습니다.”

    “발표를 일일이 다 귀담아 들어주시고 마음을 다해 조언해주시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고 감사했습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좋은 의료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발표 준비과정에서도 오랜만에 영어로 된 긴 텍스트를 읽고 요약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데 강의내용 면에서도, 발표 등에 관련해 배운 것들의 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강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사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수업 후반부에서 세 사람의 의의를 말씀해주시고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짚어주셔서 수업을 듣는 맛이 났다.”

    다만 조별 보고서 5,000자와 개별 보고서 3,000자인 보고서의 분량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지 않았다.

    “보고서 분량이 너무 많아요! 그러나 의미 있는 수업이었습니다.”

    “과제 글자 수가 너무 많아요.”

    고 찰

    의학사는 어떻게 의학전문직업성 함양에 활용될 수 있는가. ‘좋은 의사’를 양성해야 하는 의과대학의 교육목표를 고려할 때, 이는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이 연구는 그 한 가지 방법으로 인물사를 활용한 교육을 제시한다. 다만 이것이 오래된 오슬러 방법으로의 회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오슬러 방법은 의학사의 주체를 일부 기득권 의사로 한정하고, 의학사를 진보의 연속으로 바라보게 하는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맥락을 사상한 추상적인 덕목을 제시하여 학습한 바를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인물사가 의학 교육에 그리 활발하게 활용되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나 인물사는 의학전문직업성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생생하게 전달할 힘을 가진 방법이다. 대안은 오슬러 방법과 인물사교육의 등식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인물사 교육방법론을 고안하여 활용하는 것이다. 새로운 방법론의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초시대적인 덕목보다는 인물을 둘러싼 구체적인 맥락과 그 속에서 내려지는 선택을 강조함으로써 학생이 ‘나는 어떤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입체적이고 다양한 인물을 선택함으로써 역사의 숨겨진 행위자와 역사의 명암을 모두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예과 1학년을 대상으로 진행된 치유자리더십의 인물탐구 과정은 이러한 인물사 교육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적용한 예이다. 인물사를 이용한 인물탐구 수업의 성과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인물을 바라보는 역사학의 방법론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치유자리더십 인물탐구 강의는 예과 2학년 과정의 의학사 강의와 연결되는 일종의 선수 과목으로 기능한다. 구체적인 시대상 속에서 인물의 삶을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경험이 행위의 사회적 맥락을 강조하는 역사학의 연구방법론과 조응하기 때문이다. 학생은 이렇게 학습하고 익힌 역사학의 연구방법론을 이용하여 자신이 발 디딘 현대 한국의 맥락을 돌아볼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의학전문직업성의 함양에 필수적인 사회에 대한 성찰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현대사회와 의학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학습하는 것이다. 의학전문직업성을 함양해 나가는 정체성 형성과정의 핵심에는 사회적 가치의 내면화가 놓여 있다[34]. 이는 사회와 사회 속의 의학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조별 발표에 이어지는 인문사회의학의 주요 개념에 관한 강의에서는 앞서 언급한 질병에 대한 생의학 모형과 생정신사회 모형에 더하여,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의료화와 생의료화, 젠더 편향과 젠더 혁신, 공중보건과 국제보건 등의 개념을 소개하며, 이는 현대사회와 의료를 이해하는 기초적인 틀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인물의 삶으로부터 의학전문직업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의사상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여러 층위로 구현된다. 하나는 인물 선정의 과정이다. 학생은 주어진 17명의 인물 가운데 조별 발표와 개별 보고서 작성을 위해 두 명의 인물을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이때 두 명은 수동적인 무작위 배정이 아닌 각 조와 개인의 능동적 판단에 따라 선정된다. 학생은 미리 제시된 각 인물의 간략한 소개를 참고하여 인물을 선택하며, 일부 학생은 이 과정에서 의과대학 진학 이전에 품었던 의사상을 점검하고 발전시키기도 했다. 이를테면 학생 1은 루돌프 피르호의 예를 통해 고등학생 시절에 품었던 질병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재확인하였으며, 학생 2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삶을 바탕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의사라는 목표를 발전시켰다.

    또 다른 층위는 조별 발표가 진행되고 개별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본격적으로 자신과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의학전문직업성을 향한 정체성 형성에 돌입한다. 일부 학생의 경우, 주어진 인물의 삶에 비추어 자신의 단점과 사회의 문제를 살피고, 이를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의사상을 정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학생 3은 조규상(曺圭常, 1925–2013)의 삶을 통해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 침묵하는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고, 사회정의를 향한 관심과 실천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더 나아가 같은 맥락에서 일부 학생은 사회구조에서 비롯한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이에 대한 극복과 구조 개선을 향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학생 4와 5의 경우, 여성으로서 받은 차별을 극복해 나간 인물을 개별 보고서 주제로 선정하고, 현대에 지속하는 젠더 불평등의 문제를 지적하며 개선을 다짐했다.

    물론 어떤 구체적인 의사상을 제시하기보다는 향후 몇 년의 학습 계획을 서술한 학생도 있었다. 학생 6은 인물탐구 수업을 통해 의료가 여러 차원에 걸친 복합적인 실천임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학업을 통해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고민해볼 것이라 썼다. 이는 정체성 형성의 실패라기보다는 의학 전(pre-medical) 단계에서 진행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보인다. 많은 논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정체성 형성과정은 단계적으로 구성된다[41]. 특히 의과대학에서는 예과에 해당하는 의학 전 과정과 임상실습을 나가기 전과 후가 다를 수 있다. 아직 의과대학에 입학한 지 한 학기가 지나지 않은 학생이 수업을 통해 자아탐색의 필요성을 느끼고, 의학의 사회성에 대한 인식을 획득하였다면, 그것만으로도 의학전문직업성의 형성과정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개선할 지점도 없지 않다. 하나는 강의규모이다. 백여 명에 달하는 예과 1학년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이기 때문에 조별 발표와 조별 보고서에 대한 피드백은 가능하지만, 개별 보고서에 대한 피드백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교수자를 추가하거나 분반 수업의 형식으로 같은 수업을 여러 명이 동시에 개설하는 대안을 고려할 수 있으나, 피드백과 수업의 내용이 균일하지 못하다는 한계가 예상된다. 다른 대안으로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 학습공동체 제도인 ‘셀’(cell)을 활용하여, 담당 지도교수가 개별 보고서를 바탕으로 학생 지도를 수행하는 방식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담당 지도교수에게 의학전문직업성의 교육과정을 충분히 설명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장기적 계획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정체성 형성과정은 의학 전과 임상실습 전, 임상실습, 더 나아가 수련과정과 그 이후로 이어지는 연속적 과정이다. 따라서 예과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치유자리더십 인물탐구 강의에 이어 추가로 정체성 형성에 초점을 맞춘 교육과정이 설계되고, 이들 과정의 유기적 연계 속에서 정체성 형성과정을 지속하여 추적할 필요가 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인문사회의학 교육과정인 옴니버스 교육과정이 시행되 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의학전문직업성의 형성을 유도하고 있다. 다만 치유자리더십 이후 정체성 형성과정을 추적하는 종적 연구가 부재하므로 추후 이를 보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은 지속적인 교육방법론 개발의 필요성이다. 확인한 바와 같이 인물사 교육방법론은 의학사를 통해 의학전문직업성을 함양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다. 그러나 이것이 의학사를 활용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역사교육학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인물학습에 더하여 사건학습, 개념학습, 주제학습 등의 교수법을 역사 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42]. 의학사 교육도 마찬가지로, 의학전문직업성을 함양할 수 있는 여러 사건과 주제를 중심으로 강의를 구성하는 방법 등이 가능할 것이다. 비단 치유자리더십 인물탐구 과정이 아니더라도 역사를 활용하는 다양한 과정에 이를 이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는 추후의 과제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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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Table 1. ]  Students’ assessment of the class (5-point scale)
    Students’ assessment of the class (5-point sc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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