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essay examines the questions that existing high-teen related studies are missing: “What is high-teen?”. It is a foreign language originated from Japanese, spoken only in Japan and Korea among the post-war pan East Asian pop culture scenes. High-teen is based on the ‘teenager’ formed in the United States. It should be understood not just as a subcategory of popular culture but as an important ideological allegory of post-war Japanese politics.
To learn this concept, this essay archeologically researches the origin of high-teen’s meaning and analyses the political meaning of the early high-teen contents of
Existing research regarding high-teen tends to be limited to the peripheral and fragmentary areas. On the other hand, this paper will be the beginning of a discussion on high-teen in a more expanding perspective as an East Asian postwar history.
2010년대 한국 대중문화는 유례없는 초국가적 관심 속에서 만발했다. BTS를 비롯한 케이 팝 열풍과 ‘한드(한국 드라마)’의 글로벌한 인기는 그것이 한국 대중문화의 이례적인 인기를 지칭하던 이천 년대 초중반 한류(Korean wave) 이상의 ‘보편적인’ 의의를 획득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2010년대 대중문화 나아가 한국의 사회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안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대 한국 대중문화가 미래지향의 글로벌 컨텐츠 생산에만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니다. 2010년대 대중문화의 국내적 트렌드를 논하는 데 있어서 1990년대 대중문화로의 회귀를 빼놓을 순 없을 터이다. 2012년 <응답하라 1997>은 세기말 십대 감성을 자극하여 TVN 드라마 전성기를 열었다. 일개 예능프로의 특집에 불과했던 2014년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그 주변부에 ‘하이틴 스타’라는 모호한 조어가 배회하는 중이다. 하이틴 스타는 1990년대까지 당대의 청춘스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한국 대중문화를 톺아보다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당대 최신의 아비투스이자 유행의 첨단으로서 ‘하이틴’을 적잖게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해당시기에 집중하는 다양한 방면의 대중문화 선행연구들이 ‘하이틴’에 주목하는 덴 합당한 이유가 있다. 하이틴에 대한 선행연구들은 각자가 주목하는 장르적 관점에서 1970년대 이래 하이틴 현상을 유의미하게 규명한다.
이 글은 기존의 하이틴 관련 연구들이 누락하고 있는 ‘하이틴이란 무엇인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단순히 하이틴이라는 말의 발생론적 기원을 추적하는 걸 목표로 한다는 말이 아니다. 기존 하이틴 연구들의 구상(vision)보다 논의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서이다. 지금부터 시작될 논거는 한국 대중문화의 하위 장르 정도로 이해되던 하이틴의 표상-이미지를 전후 동아시아 정치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알레고리로 독해하는 작업의 시론이다. 이를 위해 먼저 개념으로서 하이틴이 의미화된 초기의 사례를 고고학적으로 추적한다. 다음으로 일본의 전후 정치·이데올로기와 맞물리며 형성된 하이틴의 표상-이미지의 원시적 형상으로서 우에다 히라오의 소설 『하이틴』과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하이틴>의 정치사회적 의의를 고찰할 것이다.
통상적으로 하이틴은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초중반까지 통용되던
일본에서 하이틴의 ‘의미화’가 이루어진 시기는 1960년대 초이다. 당대의 사회학자 가와이 신고(河合慎吾)에 따르면, ‘하이틴은 10대 후반을 일컫는 말’이지만, 단순히 해당시기 생물학적 주기를 지칭하는 일반명사는 아니다. 그것은 1941년에서 1945년 사이에 출생하여 유아기에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그리고 패전을 경험한 특정 세대를 지칭한다.
가와이의 분석은 하이틴을 다룬 전후 일본사회 세대 분류의 유의미한 초기사례로서 중요하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로 대표되는, 극단적 반항과 일탈의 태양족 세대와 준별되는 세대라는 진단은 특히 주목을 요한다. 전후 3세대로서 하이틴은 전후 2세대와 마찬가지로 미국화시대의 문화적 자장 아래 정체성을 형성한 세대다. 그러나 세대적 맥락은 사뭇 다르다. 태양족세대는 전전 파시즘 체제 하에 교육을 받다가 패전 후 이와 전적으로 상충하는 GHQ체제 하에서의 미국식 ‘민주화 교육‘을 받아야만 했던 아노미 세대였다. 이에 반해 하이틴은 종래의 중앙 통치적 교육체제 부형회(父兄会)가 미국식 교육체제인 PTA 제도로 대치
이러한 정황은 일본의 하이틴 현상을 전후 일본사회 전반에 걸친 미국화 기조 속에서 이해해야 함을 암시한다. 하이틴의 틴에서 알 수 있듯 그것은 당대 미국사회의 신조어 ‘틴에이저’의 일본적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1950년대 미국에서 잠시 유행했던 십대 소설 장르 번역서 몇몇의 제목에 하이틴이 사용된 데서도 그 영향관계를 짐작해볼 수 있다.
전후 미국 신문화의 표상으로서 ‘틴에이저’의 기원은 1930년대 대두된 도시 청소년(adolescent)들의 거리문화에 대한 기성세대의 대상화에서 비롯됐다. 대공황으로 청소년 훈육의 거점인 가정과 학교가 붕괴된 가운데, 일부 청소년들은 도시 주변을 배회하며 나름의 또래문화를 형성해나가기 시작했다. 기성세대들은 이를 대공황이 가져온 사회불안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기성세대들은 나치에서 차용한 유겐트식 훈육부터 존 듀이식 진보교육의 이념까지 거리의 청소년들의 또래문화를 통제하기 위한 온갖 시도를 감행했다.
이 최초의 틴에이저를 논할 때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안이 있는데 2차 대전 참전의 주축세대라는 것이다. 파시즘에 대한 미국의 승리는 이들에게 사회적 발언권과 문화적 자신감을 안겨줬다. 거리의 또래문화에서부터 시작되어 마케팅으로 주조된 틴에이저세대의 신화는 기성세대의 위선적인 문화를 대체하는 미국식 팝문화의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부상하여 1950년대에 이른다.
틴에이저 현상은 전후 호황이 본격화된 1950년대에 이르러 소비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여 새로운 삶의 방식(new life style)을 추구하는 소비자주의와 영합한다.
여성의 경우는 남성과는 달랐다. 또래 남성들이 참전한 가운데 발생한 내수시장과 노동의 빈자리 상당수를 여성이 채우기 시작하면서 십대여성 시장이 독자적인 카테고리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여성향 십대 문화의 라이프 스타일은 주로 특정시기 여성적 육체의 가치를 물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가사와 패션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남성에 의해 대상화된 ‘아름다운 몸’을 여성적 미덕으로 물화해나간 이십세기 초 여성향 대중문화의 연장선상이었다.
‘예비신부’의 꿈을 자극하면서 시작된 여성향 십대문화의 소비주의적 신생활 양식은 1950년대 중반에 들어서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도착적인 사랑과 성애관계를 암시하는 이미지로 가시화된다. 그것은 바로 중년 이상의 성인남성과 ‘아름다운’ 십대여성 간의 사랑을 이미지화하는 관습(convention)이었다.
냉전체제기 동아시아 자유진영은 미국 주도의 반공라인 아래서 각자의 역사적 맥락에 따른 사회문화적 미국화를 경험했다. 반공 이념과 내셔널리즘이 착종된 가운데 나타난 동아시아 각 지역의 미국화는 비정치적인 영역인 동아시아 문화시장의 초국가적 공통성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로 이해된다.
전후 일본의 하이틴 현상은 이러한 기조의 일례이다. 그러나 단순히 미국대중문화의 틴에이저와 ‘젊음’을 일방적으로 추수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우에다 히라오(上田平雄)의 하이틴 표상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에다 히라오는 1923년 태어나 교토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이후 고향인 효고(兵庫)현에서 고교교사로 재직하면서 다수의 청소년 교육관련 저서를 남겼다. 그의 저작들 대부분은 부모 혹은 선생들과 같은 기성세대들을 위한 훈육서와 청소년 소설이었다.
소설 『하이틴』은 고교교사 ‘우에다(上田)’
소설에서 남학생들의 탈선문제는 위와 같이 전쟁으로 인한 편모슬하 가정문제와 주로 연관된다.
흥미로운 건 마쓰다 히로코(松田弘子)의 경우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시미즈의 경우와 달리, 마쓰다의 탈선은 이보다는 덜 심각하고 귀엽게(かわいい) 보이기까지 한다. 마쓰다의 문제는 스승인 ‘우에다’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는 데 있다. 마쓰다는 태평양 전쟁통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랐음을 ‘우에다’에게 고백한다. ‘우에다’는 이를 그녀의 불안한 성격과 과도하게 나이 많은 남자어른에 끌리는 성향의 원인으로 추측한다.
나는 그녀[마쓰다]를 알면 알수록 그녀가 불쌍해서 견딜 수 없었다. 대체로 전쟁 전에 태어나 성격형성기에 전후(戰後)를 맞이하여 패전의 혼란을 어린 안목으로 보아온 그녀의 동년배 학생들 중에는 자칫 무궤도한 행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더해 그녀는 가장 사랑하는 육친을 잃고 전전하며 가정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동정하는 동시에 어떻게든 훌륭하게 만들어주려고 절실히 생각한 것이다.
자신을 호의적으로 대하는 ‘우에다’에게 마쓰다는 러브레터를 보내고 영화를 보러가자고 조르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데이트를 신청한다. ‘우에다’는 일단 이를 수락한다. 마쓰다의 마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를 확실히 타이를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영화가 끝나고 밖에 나온 우에다는 지금까지 마쓰다의 행동을 점잖게 타이르고 그의 마음을 확실하게 거절한다.
마쓰다에 대한 ‘우에다’의 태도는 여타의 탈선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스승인 ‘우에다’를 대하는 마쓰다의 감정과 태도가 여타 학생들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다를 비롯한 탈선 청소년과 ‘우에다’와의 관계는 철저한 사제관계이다. 그러나 마쓰다의 문제는 선생과 학생 간의 선을 넘어 사제관계를 훼손하려 한다는 데 있다. 위의 인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에다’는 마쓰다를 진심으로 동정한다. 그러나 ‘우에다’의 동정심은 마쓰다의 기대와 달리 교사가 학생을 대하는 마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마쓰다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게다가 만약 ‘우에다’와 마쓰다 사이의 관계가 무너진다고 한다면, 다시 말해 ‘우에다’와 마쓰다의 관계에서 마쓰다의 연정이 관계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면 ‘우에다‘는 더 이상 훈육자의 위치에 설 수 없게 된다. 마쓰다의 마음을 거절하는 것은 마쓰다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에다’ 자신의 위치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우에다’가 마쓰다와 끝끝내 유지하고자하는 거리(gap)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일차적으로 교사로서 학생을 대해야하는 직업윤리와 연관될 터이다. 이러한 직업윤리는 정신분석학에서 관찰자가 환자와의 전이(transference)를 경계해야 하는 태도와 유사하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는 분석가에게 자신의 가장 내밀한 욕망과 감정을 대화로 표출하여 무의식적 억압을 의식으로 대체하는 과정을 거쳐 교정된다. 이를 유도하기 위해 분석가는 환자를 최대한 감정적으로 편안한 상태로 유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분석가와 자신이 감정적으로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고 착각하는 전이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분석가는 환자가 분석가에게 품는 특별한 감정에 휘말리지 않은 채 분석가의 위치를 끝까지 고수해야 한다.
마쓰다를 대하는 교사 ‘우에다’의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우에다’는 관찰을 통해 마쓰다의 애정결핍이 유년기의 불안한 상황에 따른 무의식적 억압의 반복(repetition)임을 이미 간파한 상태이다. 다음으로 그가 해야 하는 일은 관찰자로서 마쓰다 스스로 전이에서 빠져나오도록 거리를 유지한 채 훈육하는 것뿐이다. 이는 물리적인 훈육과 ‘올바른’ 고교생의 정신적인 덕목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것으로는 문제아들을 교정할 수 없다는 교육학자로서 우에다의 지론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청년기.
그것은 희망과 불안이 교착하는 나이이다. 어느덧 티내기 시작하는 성의식과 그 에너지. 그 바로 뒤로는 싸늘하게 다가오는 불안과 초조. 안으로, 밖으로 폭발하는 자아의식—청년기는 인생의 위기라고 일컬어진다. 끊임없이 정신적인 불안과 동요를 반복하고 있다. 청년기에의 불안과 동요는 때때로 무궤도한 행위나 비행으로 나타나 사회의 빈축을 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 외면에 나타나는 행위만 비난하고, 집 안에 숨겨진 청년기의 고뇌를 보지 않으려 한다. 그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어떻게 고민하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청년기의 비행은 그 원인을, 혼탁한 어른들의 사회가 짊어져야 할 경우가 얼마나 많단 말인가. 억압하는 가정적, 사회적 여러 요소를 제거하고, 청년들에게 훌륭한 청춘기를 보내게 할 순 없는 걸까— 이것이 본서를 쓴 직접적인 동기였다.
1950년대 일본사회 ‘하이틴’의 문제를 ‘청년기(靑年期)’로 일반화하는 우에다의 문제의식은 주목을 요한다. 여기서의 ‘청년기’란, 종결되지 않는 미래적 가치와 진보를 표상하는 근대 일본의 ‘청년’과 단절된,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형성된 청년 담론을 암시한다.
일본의 ‘청년’은 『국민지우(國民之友)』를 만든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에 의해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존재로서 처음 창출됐다. 전근대 지식인의 전형인 장사(壯士)의 사회적 역할이 축소되는 가운데, 청년은 근대교육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젊음’으로 일신한 이들을 표상하는 상징적 형식이었다.
청년들의 양재는 이후 일본제국의 형성과 결부된 유기체적 국가주의와 만나 ‘일본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동원(mobilization) 논리가 된다. 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으로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된 확전상황 가운데 청년을 동원하는 ‘일본정신’은 야마토다마시(大和魂), 신주불멸(神州不滅) 같은 수사를 내세워 물질계를 초월한 절대적 가치에 청년을 투신하게 하는 파시즘으로 변질되기에 이른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1952년 점령체제를 끝낸 일본은 한국전쟁 발발을 계기로 미국의 동아시아 냉전 전략의 의뢰국가(client state)
우에다가 ‘청년기’의 형상으로 호명한 하이틴은 미국화시대 일본식 틴에이저이자 진무경기 시대 나타난 새로운 ‘청년’의 형상이었다. ‘청년’을 국가에 동원하던 전전의 ‘일본정신’이 파산한 상태에서, 하이틴은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냉전질서의 의뢰국가로서 기능한 결과인,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태어난 신인간 이었다. 55년 체제 이후 일본의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동원됐던 것처럼 영원불멸한 ‘일본적’ 가치를 중심으로 이들을 동원할 순 없었다. 자신들을 동원했던 ‘일본적’ 가치의 논리가 패전으로 파산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 전후의 일본을 ‘지속’해야만 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하이틴의 출현은 전후 기성세대들이 처한 이 난감한 상황과 맞물린다. 하이틴은 막연하게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전이적 단계(liminal level)
이 같은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우에다의 소설 『하이틴』의 영화화 결과
가장 일신한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면면이다. 새 시대 하이틴의 ‘건전함’을 구현하는 주인공격 인물로서 원작의 마쓰다가 오카다 사나에(丘田早苗)로 대체됐다. 원작에서 마쓰다가 문제적인 하이틴 유형 중 하나에 그치는 반면에, 사나에는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이다. 그는 ‘우에다’ 대신 등장하는 선생 테라자키(寺崎)를 하이틴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에서 테라자키와 사나에 관계의 구도와 이미지는 원작에 없는 독특한 긴장을 이미지화한다.
#111밤의 길가(하숙집 앞)
다가오는 테라자키, 후우 하는 한숨과 함께, 전등으로 손을 내민다
테라자키: 헉!
사나에: 선생님!
어둠 속에서 날아 들어와 안기는 사나에
테라자키: 누구냐…‥이 자식……뭐 하는 거야!
사나에: (필사적으로 안기며) 선생님 좋아해! 나, 선생님 좋아해!
테라자키: 바보……떨어져!……그만해!
(중략)
사나에: 싫어! 싫어! 싫어! 떨어지지 마 선생님! 떨어지지 마!
테라자키: 야, 그만둬!……그만 해!
사나에: 붙잡아줘 나를! 안아줘! 꼭 안아줘 선생님! (운다)
테라자키: 오카다 군!
사나에: 그렇게 부르지 마 선생님! 어째서 좋아하면 안 돼! 선생님의 것이 될래 나!
테라자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이리 와! 이리 와!
휙 떠나가는 사나에
사나에와의 관계에서 전이를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테라사키의 몸짓-이미지는 소설 원작에선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일인칭 소설 형식과 이미지 영사매체인 영화 형식 간의 차이 때문에 발생할 터이다. ‘우에다’는 학생과의 전이를 거절하는 저의와 그에 관한 이유를 내적 독백이라는 소설적 장치로 합리화한다. 반면에 스크린에 평평하게 투사되는 테라자키에게 이런 장치는 주어지지 않는다. 사나에의 ‘하이틴스러운’ 돌발행동에 저항하는 필사적인 몸짓으로 막연한 ‘거절’을 전시할 따름이다. 학생의 구애를 거절하는 원작 소설과 영화 간의 현격한 표현상의 차이는 “구경거리를 더 장엄한 것으로, 시위적인 행동을 더 기괴한 것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테크놀로지에 의해 지탱되는 시각의 의의를 강조“
영화매체가 관객에게 쾌감을 전달하는 특유의 방식의 산물일 ‘씬 111’의 존재는 <하이틴>의 가장 주요한 의의이다. ‘우에다’의 내면이 강조된 원작소설에서 하이틴들은 기성세대-선생의 관점으로 일방적으로 대상화된다. 그러나 영화에선 그렇지 않다. 그것은 테라자키와 사나에 사이의 미묘한 정동(affect)의 몸짓, 즉 사나에의 돌발행동에 허둥거리는 테라자키의 몸짓과 당황하는 말투라는 두 사람 간의 상호작용으로 가시화된다. 테라자키와 사나에 사이에 발생한 이 상호작용의 이미지는 졸업식을 맞이하여 자신들의 좌충우돌 고교시절과 결별하는 영화 전체 내러티브의 부차적인 어트랙션이다. 테라자키를 향한 사나에의 강렬한 감정은 아무런 설명 없이 졸업직전에 ‘건전함’으로 수렴되며 사라진다.
‘씬 111’이라는 잉여-이미지에는 내러티브적 차원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하이틴 표상의 정동이 가시화되어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현대정치문화에서 대중(mass)에 대한 발리바르의 통찰을 빌리고 싶다. 발리바르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 이후 지식인들에게 팽배했던, 근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미덕인 개인(individual)의 안티테제로 대중을 발견하는 관점을 비판한다. 발리바르는 통상적인 관점과는 전혀 다른 대중론을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 대중이란, 헤게모니로 구축된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승인하는 인민들(people)이 자신들이 행한 피지배상태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역량의 물질적인 결과이다.
발리바르의 대중에 대한 통찰은 영화에서 하이틴을 구성하는 정동-이미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서사-과정의 잉여로서 ‘씬 111’은 전후 일본의 십대로서 하이틴이 단순히 일방적인 대상화의 산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영화의 끝에서 사나에는 ‘건전한’ 십대를 규정하는 사회적 헤게모니를 ‘능동적으로’ 수용한다. 이는 기성세대가 구성한 사회적 헤게모니가 유지되고 전승되기 위해서는 사나에와 같은 후속세대의 ‘자발적 수용’이 관건임을 암시한다. 이 메커니즘이 완수되기까지 테라자키는 전적으로 수동적인 위치에서 두 사람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필사적으로 유지해야만 한다. <하이틴>에 나타난 테라자키의 필사적인 ‘저항’의 몸짓은 철저하게 수동적인 위치에서 후속세대의 ‘능동성’에 의지해야만 하는 불안과 공포의 정동적 이미지-효과(effect)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에다 히라오의 ‘하이틴’ 표상을 다음과 같이 재고하고 싶다. 의뢰국가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인 채 고도성장이라는 물질적 풍요로 막연하게 유지-재생산되는 일본사회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원시적 이미지로서 말이다. 기존의 정신적인 가치가 파산한 상태에서, 일본의 전후 기성세대는 물질적 풍요로 유지되는 ‘일본국’의 전승을 위해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며 후속세대의 능동성에 모든 것을 내맡긴 채 테라자키와 같이 버텨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하이틴>은 사나에의 통제될 수 없는 능동성이 ‘한때의’ 반항으로 축소되고, 그녀가 ‘건전한’ 일본인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암시한 채 종료된다. 하이틴의 표상-이미지를 둘러싼 이러한 서사-과정은 전후 일본 기성세대에게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임과 동시에 일본국의 ‘미래’를 표상하는 전후 정치문화의 양가적 알레고리로서 하이틴의 의의를 재고하게 한다.
일본에서 하이틴이라는 조어는 이후 스사노오(スサノオ)나 사카모토 료마 같은, 신화적 인물의 십대시절을 다루는 교육물
하이틴의 형태학적 기원의 정확한 실질은 알려진 바 없다. 그 용례와 출처를 따져보았을 때 전후 범 동아시아 팝 문화 씬 권역 중 일본과 한국에서만 통용된 틴에이저에 대한 일본식 조어로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전후 미국에서 형성된 틴에이저 문화와 맥을 같이 한다. 미국의 틴에이저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에 따른 청년세대의 사회적 영향력 확대와 호황기에 맞물려 등장했다. 미국의 틴에이저 현상은 자본주의 진영의 맹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전후 미국의 문화적 자부심과 새로운 시대의 소비문화적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사회적 불안을 동시에 내표하는 양가성의 표상이다.
하이틴은 패전 후 미국화 시대를 거치면서 나타난 일본의 틴에이저 현상이었다. 가와이 신고는 일본의 하이틴을 1940-1945년 사이에 출생한 일본 전후 제3세대로 분류했다. 전후 제2세대로 분류되는 태양족까지의 일본인이 ‘대일본제국’의 가치와 문화를 체감했던 것과 달리, 하이틴은 전후 ‘일본국’의 가치와 문화적 자양만으로 성인 문턱에 다다른 최초의 일본인 세대이다.
교토대 출신의 엘리트 고교고사이자 교육학자인 우에다 히라오의 일련의 하이틴물은 오늘날 통용되는 대중문화적 표상-이미지로서 하이틴의 유력한 기원이다. 그가 제기한 전후 청년기의 표상으로서 하이틴은 ‘일본적인 것’을 구성하는 정신적·추상적인 청년의 가치체계가 완전히 붕괴된 상황 속에서 ‘일본국’이 전승되는 새로운 청년동원의 알레고리이다. 우에다의 하이틴물에서 ‘청년기’로 대상화되는 고교생들은 여러 형태의 전형적인 반항 끝에 청년시절과 결별하여 ‘건전한’ 성인이 된다. 하이틴의 막연한 ‘건전함’은 기성의 ‘일본적’ 가치가 무너진 상황에서 새로운 세대에게 내세울 ‘가치’가 부재한 가운데 일본사회를 유지·전승해하는 기성세대의 불안과 공포에 대한 봉합의 기제이다. 우에다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하이틴>은 전후 일본사회가 유지되는 가운데서 발생하는 불안과 공포의 물질적인 잔여로서 하이틴의 이미지를 가시화한다.
우에다 히라오 하이틴물에 나타난 표상-이미지는 단순히 일본식 십대물의 장르 컨벤션을 이해하는 시금석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55년 체제 이래 전후를 ‘극복’하고 새로운 주권국으로 일신하여 번영과 풍요를 구가하는 일본국의 정치적·이데올로기와 연동하는 소비문화 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