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전체 메뉴
PDF
맨 위로
OA 학술지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번역과 해석 그리고 냉전의 문학지(文學知) Translation and Interpretation of What is Literature in Korea as Cold War Literary Discourse
ABSTRACT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번역과 해석 그리고 냉전의 문학지(文學知)
Summary

Sartre's literary theory, which included a discussion of the writer's responsibilities as an intellectual, and the social role of literature, has had a great impact worldwide. His book, What is Literature is a text that focuses on this subject. In the 1950∼60s literary field of Korea, this book was the only theoretical resource that can be used in situations where the artist's participation in society should be discussed with avoiding the leftist theory, and also was the object of criticism of literary critic who internalized the anti- communism through the experience of Korean war. Therefore, by examining the history of the translation and interpretation of a book titled What is Literature, we can grasp the aspect of Korean transformation of literary knowledge in the Cold War.

In this paper, we pay special attention to the attitude of Kim Bung-gu, who translated What is Literature. His translations resulted in the omission of the main chapter. Sartre's theory of participatory literature was introduced, and at the same time distorted, by him. In addition, he presented the skepticism that it was difficult to apply the theory to Korean literature, at the “Writers and Society” seminar hosted by the Korean Committee of Congress of Cultural Freedom(CCF). His criticism of Sartre was completed the logic by constructing a history of Korean participatory literature which was different from Sartre’s theory. These discussions are the result of his experiential anti- communism and his response to the tension of Cold War. The literary theory of What is Literature, criticized and refracted by Kim Bung-gu, was restored and reinterpreted by critics of the next generation.

KEYWORD
사르트르 , 문학이란 무엇인가 , 김붕구 , 문화냉전 , 작가와 사회 논쟁 , 번역 , 참여
  • 1. 서론

    1967년 10월 12일 ‘작가와 사회’ 세미나에서 김붕구가 작가의 사회참여를 비판하며 평단의 논쟁을 촉발한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문학사의 한 장면이다. 최근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위원회 소식지 『춘추』에 실린 세미나 속기록이 새롭게 참조되고 김붕구의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위원회 기획위원 활동 내역 등이 소상히 밝혀지면서, 이 장면은 문화냉전의 주체였던 남한 지식인이 그 과정에서 신념화한 문화적 자유라는 이상을 표명한 냉전문화사의 한 장면으로 다시 읽히고 있다.1

    잡지야말로 지난 세기 전 세계에 걸쳐 전개된 문화냉전의 실체를 확인하게 하는 매개물이다. 『인카운터』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수종의 잡지가 세계문화자유회의와의 직·간접적인 관련 하에 발간되었으며,2 그 비용의 일부를 CIA가 지원했다는 사실도 이미 밝혀진 바 있다.3 1961년 결성된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위원회와 그 소식지 『춘추』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받고 있다.4 잡지를 매개로 한 냉전기 세계 문화 지식의 교류에 대한 선행 연구들은, 이 시기 주체들의 글쓰기를 문화냉전의 장력이 작동하는 거대한 장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거듭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장력을 염두에 두고 ‘작가와 사회’ 세미나 발표문의 논지와 토론 내용을 재검토하고자 한다. 이 글은 장 폴 사르트르 문학론에 대한 비판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런데 김붕구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번역하는 등 이른바 전신자(傳信者)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해볼 수 있다. 그 자신이 사르트르 문학 사상을 국내에 소개한 문학지의 매개자였으면서도 그 “전유와 폐기” 사이에서 고민했던 김붕구의 내면의 역설을 추적해보는 일은, 비단 사르트르 수용사만이 아니라 당대 지식 장과 그 안에서 고투한 한 문학적 주체의 의식/무의식에 영향을 미친 냉전의 역학을 탐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과제다.5

    번역과 냉전의 관계에 관해서는 『사상계』 수록 번역물을 통해 당대 지식 장과 대표적 문화냉전 기구인 세계문화자유회의의 관련성을 살핀 연구,6 그리고 국내 사르트르 번역에서의 누락과 왜곡 사례에 대한 분석을 통해 냉전적 문학 지식의 유통 과정을 살핀 연구7 등이 이미 상세하다. 본고는 이러한 연구들을 기반으로 삼아, 이와 같은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위원회의 활동과 냉전적 문학지로서의 사르트르 문학(론) 번역 유통의 구체적 사례로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텍스트가 국내에서 번역·해석되었던 과정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논의를 검토하고자 한다.

    2. 『문학이란 무엇인가』 4장의 행방

    사르트르의 저작들은 “번역장에 작동하는 반공주의라는 검열 원칙이 입체적으로 적용된 텍스트”로, 해방 이후 남한에서의 번역과 해석의 과정에서 숱한 굴절을 겪었다.8 그렇다면, 그 가운데 사르트르의 주요 저서로 꼽히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번역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책의 번역본은 김붕구에 의해 1958년 신태양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 이후 1972년 문예출판사에서 재출간되어 1998년 정명환에 의해 완역본이 발간될 때까지 국내에서 주로 참조되던 판본이었다.9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김붕구가 이 책에서 프랑스어 동사 s’engager를 일관되게 ‘구속되다’로 번역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르트르는 이 책에서, 작가는 언어를 통해 상황에 구속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나아가 작가는 언어를 통해 자신을 그 상황 안에 끌어넣음으로써, 즉 그 상황에 참여함으로써 상황에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논하고 있다. 이때 전자는 자연발생적 참여, 후자는 의식적 참여에 각각 해당한다. 그러나 김붕구는 ‘구속되다’와 ‘(자신을)끌어넣다’는 의미를 모두 갖는 s’engager에 대한역어로 ‘구속되다’만을 일관되게 선택함으로써, 자연발생적 참여를 옹호하고 의식적 참여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10

    또 김붕구의 번역본에는 모두 4장으로 이루어진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마지막 장이 빠져 있다. 「역서(譯序)」에서 김붕구는 4장 ‘1947년의 작가 상황’은 “一九四七年이라는 특정한 時期와 狀況에 적용한 것이므로” 생략한다고 밝혀놓았다.11 사르트르의 이 책은 1, 2장에서는 각각 시와 산문의 본질, 그리고 그 가운데 산문의 작가와 독자가 맺는 관계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3장에서는 프랑스 문학에서의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 대해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을 전제로 하여 4장 ‘1947년의 작가 상황’에서 당대 프랑스 문학의 작가와 독자가 맺어야 할 관계에 대해 논하는 대목이야말로 이 책의 본론에 해당한다. 이 책의 집필 당시 원제가 ‘상황’인 것을 상기해 보더라도, 당대의 상황과 그에 대한 작가의 참여를 말하고 있는 이 장이 누락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수 있다. 김붕구 스스로 “오직 同時代人을 위한 당장의 문학”12이라고 이책의 내용을 요약한 바 있음을 볼 때, 그 역시 작가의 참여에 대한 시의적(時議的) 논의에 해당하는 4장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장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붕구는 이 책에 1∼3장만을 번역하여 수록하였고, “여기 收錄된 것이야말로 싸르트르의 『文學原論』이라고 보아 무방할것”이라고 그 의미에 관해 첨언하고 있다. 시의적 논의가 원론으로 그 의미가 바뀐 것이다.

    이 책의 2장에서 사르트르는, 산문 작가는 대타적 존재라고 논의하고 있다. 작가는 독자를 위하여 쓴다. 그리고 독자는 작가의 도움으로 자유를 얻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와 독자는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변혁적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4장에서는 당대 작가의 의무에 대해 논하고 있다. 1947년의 작가들은 이전 세대 작가들이 가졌던 부르주아적 태도를 버리고 노동자 계급의 독자와 그들의 자유를 위하여 써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그러나 이 시대 작가들의 현실적 독자는 어디까지나 중산층이나 중하위 계층에 속하며, 노동자 계급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잠재적 독자로 남아 있었다. 더구나 작가는 이들과 차단되어 있었는데, 1947년의 프랑스에서 공산당을 매개로 하지 않고는 작가가 노동자 계급의 독자들과 직접 만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르트르는 당대 작가들은 새로 떠오르기 시작한 대중 매체를 활용하여 독자들을 만나야 하며, 이들에게서 사회 변혁에 대한 공감대를 끌어내,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 혁명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4장은 이 책에서 가장 정치적인 장이기도 하며, 이렇게 본다면 4장의 생략은 국내에서 현실적으로 출간이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김붕구의 본의가 무엇이었든, 이러한 생략은 결과적으로 텍스트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셈이 되었다. 사르트르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전의 입장에서 선회하여 참여문학론을 표명하였으며, 이 시기의 대표적인 텍스트가 바로 『현대』지, 즉 『레땅모데른(les Temps Modernes)』의 창간사(1945)와 『문학이란 무엇인가』(1947)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현대』 창간사에 쏟아진 비판들에 대한 사르트르의 재반박을 담은 글로,13 처음 1장의 서두가 “아니다. 우리는 회화와 조각도 음악도 ‘역시 참여시키려는’ 것이 아니다”와 같이 시작되고 있다.14 『현대』 창간사의 내용에 대해 문학을 참여의 도구로 삼는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1장에서 유명한 시/산문의 구분론을 펼쳐, 산문만을 참여의 영역으로 선포하고, 시는 다른 예술들과 함께 순수의 영역에 남겨두는 전략을 폈는데, 이러한 재반박의 맥락이 “아니다”라는 첫 문장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4장이 삭제되는 경우, 참여론을 펴면서도 모종의 타협안을 찾고자 했던 사르트르의 전략, 즉 순수파와 그들에 의한 문학사를 옹호함으로써 자신이 그(것)들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충분히 밝힌 다음 태세 전환을 하여 다시 자신의 참여론을 펼쳐나가려고 했던 전략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재반론을 위한 포석으로서의 일반론만이 오히려 그의 “문학원론”으로 소개되면서 그가 문학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입장에 섰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사르트르는 같은 이유로 이 책의 3장에서 이전 시대 프랑스의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 대해 논하면서, 특히 부르주아 문학의극치에 해당하는 초현실주의 문학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다. 이는 4장에서 새로운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기 위한 예비적 논의 였으나, 번역본에서 4장이 누락되면서 역시 전 시대 문학에 대한 옹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왜곡의 양상은 몇 년 전 발간된 이어령의 『저항의 문학』에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4장 제목인 ‘1947년의 작가 상황’을 빌려 표제로 삼은 ‘1956년의 작가 상황’, ‘1957년의 작가 상황(1, 2)’, ‘1958년의 작가 상황(1, 2)’과 같은 글들이 실려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어령은 이 비평집에 같이 수록된 「현대 작가의 책임」(『자유문학』, 1958.4), 「작가의 현실참여」(『문학평론』, 1959.1) 등에서 사르트르 문학론을 경유하여 동시대의 상황에 대한 참여로서의 문학론을 편 바 있다. 그리고 “얼마나 한국의 작가가 한국의 현실에 몰감한가”15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등, 동시대 작가의 책임을 역설하였다. 이처럼 한편에서는 이 책의 4장이 인용으로 흔적을 남기며 비평적 논리의 구축에 원용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4장이 누락되면서 그 안에 담긴 참여문학론의 가능성 역시 엄폐되었다는 사실은 당대 한국 비평 장에서 사르트르 이해가 첨예하게 갈렸음을 확인하게 한다.

    이 시기 번역이나 인용은 문학 지식의 선별과 재편을 통해 냉전의 문화정치를 수행하는 장치가 되기도 하였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이러한 문화정치적 감각의 관여에 의해 서로 다른 입장과 맥락에서 번역되고 해석되었으며, 때로는 좌파 이론을 인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문학과 현실의 관계를 논할 때 참조 가능한 거의 유일한 이론적 자원으로, 때로는 문학의 자율성을 말하는 사르트르라는 오인을 불러일으키는 오해된 ‘문학원론’으로서 국내 독자들에게 상이한 방식으로 소개되었다.

    3. 『문학이란 무엇인가』 비판과 체험적 논리

    ‘작가와 사회’ 세미나는 세계문화자유회의를 사이에 두고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두 지식인이 엇갈리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냉전 현실 속에서 미소 양쪽을 거부하며 사회주의 유럽이라는 이상을 지켰던 비공산주의 좌파로서, 또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는 열렬한 친공 인사로 변모하여 세계문화자유회의와도 불화하였던 사르트르와, 한국전쟁을 경험한 남한의 반공 지식인으로서, 세계문화자유회의 한국위원회의 어엿한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한국전 이후 공산당을 탈퇴한 카뮈와는 다른 친소적 행보를 보이며 카뮈와도 결별한 사르트르를 끝내 옹호할 수 없었던 김붕구 사이의 사상적 불화는 한국 지식 장에서의 문화냉전을 간접적으로 무대화한다.16

    김붕구는 ‘작가와 사회’ 발제와 토론에서 사르트르의 좌경화를 비판하는 논지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변곡점에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놓여 있다고 판단, 이 책의 내용 분석을 통해 그가 좌경화에 이르게 된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사르트르는 이 책에서 자연발생적 참여가 아닌 의식적 참여를 논하였고, 의식적 참여는 이론적 참여―지식인 작가는 노동자 계급을 독자 대중으로 삼아 이들을 혁명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이 책의 결론이 바로 그 ‘이론’의 내용에 해당한다―로, 그리고 다시 이념적 참여, 즉 한국전쟁 이후의 친공적 행보로 이어지게 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사르트르가 1964년 출간된 『말』에서 스스로 문학적 패배를 자인하였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러한 의식적 참여-이론적참여-이념적 참여라는 회로를 통한 작가의 참여 시도는 결국 실패로 귀착하게 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17

    김붕구가 사르트르의 의식적 참여의 개념을 거부하고 자연발생적 참여를 옹호하는 것 역시 그래서이다.18 사르트르는 1945년 『현대』 지 창간사에서 상황에 ‘구속되다’ 또는 ‘연루되다’라는 뜻으로 처음 s’engager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표현이 파스칼이 사용했던 (상황이라는) ‘배에 타고 있다’는 뜻의 s’embarquer라는 표현과 무엇이 다른지 알수 없다는 비판을 받자,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두 표현을 다시 언급하며 전자를 ‘자신을 끌어넣다’로 해석하여 의식적 참여를 의미하는 말로 삼고, 후자를 자연발생적 참여를 뜻하는 말로 삼아 그 의미를 구분하였다.19 김붕구는 발제문에서 사르트르가 처음 의식적 참여 개념을 제시하였던 이 장면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이미 회피하거나 또는 선택할 여지없도록 역사의 배에 올라타고 있는데 새삼스레 ‘끌어넣기’는 무엇을 끌어넣는단 말인가”20라고 의식적 참여의 개념을 비판하고 자연발생적 참여의 개념을 상대적 우위에 두고 있다.

    그런데 이날 세미나에서 토론자인 박희진 시인이 의식적 참여가 필연적으로 좌경화한다는 말에 대한 보충 설명을 요청하자 김붕구는 “저 6·25 체험을 통해 한국의 식자라면 누구나 뼈저리게 실감한 바 있을” 것이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하고 있다. 박 시인은 사르트르의 사례를 ‘이념적 참여는 좌경화한다’는 하나의 명제로 일반화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요청한 것인데, 이에 김붕구는 체험의 영역에 대한 환기로써 답변한 것이다.21 자신의 발제문을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을 인용하며 세련된 이데올로기 비판으로 마무리하였던 그가,22 토론이라는 구어적인 상황에서는 체험적 반공주의―감각이나 정념의 영역에 가까우며 레드 콤플렉스라는 말로 대체될 수 있는―를 앞세우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볼 수 있다.

    그 뒤에도 김붕구의 발제에 대해 토론자들의 질문이나 비판은 계속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김붕구와 일종의 협공 태세를 취하고 있는 논자가 선우휘이다. 그는 전 해인 1966년 사르트르의 방일 당시 일본 현지에서 그의 베트남전 반대 발언을 들은 이후 그와의 결별을 선언한 바 있었다.23 그는 ‘작가와 사회’ 세미나 원탁토론에서도 “월남파병도 선진국가의 지식인들이 하듯이 물론 보편성이라는 것이 있겠지요. 전쟁에 대한 반대…… 럿셀이나 싸르트르와 같이 나가야 되느냐 현실 자체에서 한 지식인으로서는 예민해야 되는데요 이 문제가 있고……”(띄어쓰기-인용자)24라고 사르트르의 이 발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25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작가는 (자기 계층의 독자가 아니라) 노동자 독자를 위하여 써야한다고 논하였던 것의 연장선상에서, 사르트르는 방일 강연에서도 지식인은 보편적 계급인 노동자 계급과 연대하여 그들을 억압하는 지배 계급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인간의 보편화”26를 지향하는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당시 반전 발언에서도 이러한 보편성의 문제를 언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선우휘는 ‘작가와 사회’ 세미나 원탁토론에서, 사르트르가 이야기하는 보편성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문제라고 지적하였던 것이다.

    또 선우휘는 ‘작가와 사회’ 세미나 며칠 뒤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조선일보』, 1967.10.19)라는 칼럼을 써서, ““의식적인 사회참여를 극단적으로 밀고나가면 결국 프롤레타리아혁명까지 가고야 만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반론도 나왔지만, 나는 ‘비공산주의적 사회체제에 있어서’라는 것과 ‘사르트르를 추종할 때에’라는 전제를 붙여서 그 의견에는 찬성이다. 현실에 대해서 부정적인 작가의 생리로 보아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고 사르트르가 자기의 행동철학의 근거를 마르크시즘에 두고 있다는 명백한 의사표시로 보아 그렇다”(띄어쓰기-인용자)라고 김붕구의 의견에 대해 재차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디까지나 “끝까지 사르트르에 추종하느냐, 언젠가 가서 사르트르와 결별하느냐”가 문제라고 씀으로써 사르트르와의 결별을 주장하는 듯한 논조로써 이 글을 마무리하였다.27

    사르트르 방일 이후 일본에서는 지식인들과 대중들 사이에 사르트르 열풍이 일어났고, 그 열기는 1960년 중후반 내내 계속되었다.28 당시 일본에서의 담론이 국내에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섬세한 재구가 필요하겠으나, 김붕구가 다른 글에서 “우리 문화계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해방 전과 다름없이 ‘매스콤’을 타는 일본 지식층의 영향을 받던(차라리 추종하던) 터라, 우리 지식계와 문단의 일각에서도 그를(사르트르를-인용자) 사상적인 先導者로 떠받들고 있었다”(띄어쓰기-인용자)29고 말하기도 했던 것이나, 세미나 발제문에서 “그저 외국에서 수입한 유행사조에 휘말려 뇌동”30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계론을 펼쳤던 것을 보더라도, 그가 ‘작가와 사회’라는 논제에 대해 사르트르 참여문학론 비판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된 것이 사르트르 방일이라는 계기와 관련되어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31

    사르트르의 정치적 변모에 대한 두 사람의 강렬한 거부 반응에는 “월남전은 남의 일이 아니다”32라는 위기감이 개재해 있다. 이러한 감각은 한국전쟁 체험세대로서의 현실 감각을 대변하는 것이자, 문화냉전 주체로서의 남한 반공 지식인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문화자유회의라는 이름으로 연대해 있었다 하더라도, 냉전의 한가운데 있었던 유럽 지식인과, 열전(熱戰)의 경험/기억에 의해 반공주의를 내면화하고 또 지속적으로 강화해갔던 한국 지식인의 입장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33 김붕구가 이른바 ‘증인 문학론’에서, “내가 뼈저리게 느끼고 내 폐부를 찌르는 것, 내가 몸소 체험한 그 무엇 앞에는 萬人을 설복할 그럴듯한 논리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다는 것”34을 강조한 데도 이러한 사정이 개재해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김붕구의 사르트르 비판은 체험 우위의 논리, 그리고 월남과 열전을 경유하여 형성된 한국적 냉전 감각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러한 체험적 반공주의가 문화냉전의 장력과 만나 냉전기 유럽 지식인과의 사상적 불화를 보여준 것이 바로 ‘작가와 사회’라는 논제에 그가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 비판을 들고 나왔던 장면이라 할 수 있다.35

    4. 단행본 『작가와 사회』와 한국식 참여의 계보

    김붕구는 몇 년 뒤 단행본 『작가와 사회』(1973)에서 사르트르 비판을 보다 구체적으로 논리화하고 있다. 우선 사르트르의 입장에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은 자신의 예술지상주의자 시절, 즉 ‘문학의 성직자’ 시절에 대한 회한의 표현이자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거나 독일 점령군에 대항하여 싸운 레지스탕스 작가들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라는 것이다. 김붕구는 이를 “이차대전에서 풀지 못한 그 회한과 열등콤플렉스의 복수이자 해독제로서의 펜의 앙가주망”36이라고 신랄하게 논평하였다. 그리고 『말』에서 사르트르 자신이 참여론의 무력을 시인하고 있다는 사실도 재차 언급하면서,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은 결국 한때의 자기 정당화 논리였을 뿐이라고 공박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김붕구는 그의 “作家는 자기 時代 안에 狀況 속에 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반향을 가진다. 沈默 또한 그러하다”라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한 대목을 인용하고, 이번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들어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서구 현실에서만 통용되는 저서임을 논하고 있다.

     

      여기서도 우리는 그 作家가 들어 있는 현실적 상황(社會)의 성격 여하에 따라서는, 그 沈默의 뜻이 正反對일 수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중략…) 가령, 彈壓을 모면하기 위하여 거짓 發言으로 활발하게 발언함으로써 權力에 영합하다가, 진짜 發言을 하기 위하여 國外로 亡命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頑强하게 ‘沈默을 택함으로써’ 최소한 良心과 內面의 自由(싸르트르가 否認하고 배제하는 <內面的 隱身處>)를 固守하는 作家의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싸르트르의 이 大前提가 타당성을 가진다면, 그것은 그가 살고 있는 西歐 自由社會 안에서이며, 결코 어느 사회에서나 타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37

     

    사르트르 문학론의 핵심이 당대 상황에 대한 작가의 참여로 요약될 수 있다면, 그 상황에 따라 참여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위 인용문에서는 “沈默을 지킬 自由”마저 없었던 월남민의 북한 공산주의 사회의 체험을 앞세워,38 이러한 “절박한 상황의 경험이 없”었고, 그 때문에 맹점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서구나 일본 식의 참여문학 논의가 국내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39

    이처럼 김붕구는 한국문학에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데에 이어, 한국식 참여론에 해당하는 독자적 논의를 시도하고 있다. 이광수를 “東西를 통해 철저한 參與作家”40로, 심훈을 “韓國的 參與文學의 代表者”로 거명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사르트르에 반대하여 의식적 참여보다 자연발생적 참여를 옹호하는 그는, 이광수의 계몽적 참여, 즉 의식적 참여라 할 수 있지만 사르트르의 그것에 비해서는 관념성이 약한 민족주의적 참여41와 심훈의 양심적 참여, 그야말로 자연발생적 참여에 해당하는, 작가의 양심의 폭발에 의한 자기희생적 참여를 높이 사고 있다. 심훈의 문학이야말로 관념 이전의 현실 자체에 충실한 문학이라는 평가다.42 그에 따르면 이 작가들에 의한 “우리 農民文學”이야말로 “전적으로 韓國에서 自然發生的으로 형성된 土産文學으로, 그 내용과 성격 또한 전적으로 고유한 특질을 담고 있”는 문학이라 할 수 있다.43 이처럼 김붕구는 자연발생적 참여라 할 수 있는 농민문학을 중심으로 한국식 참여문학의 계보를 구성함으로써, 한국문학에는 사르트르 식의 의식적 참여가 맞지 않는다는 거부를 문학사적으로 논리화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와 사회』는, 사르트르의 소개자이면서도 4·19 이후 참여의식이 고조되고 앙가주망론의 선풍이 불자 이로 인한 이념적 편향에 대한 불안 때문에 그 참여문학론의 가능성을 엄폐하고자 직접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했던 김붕구의 사르트르 비판론의 결정판에 해당한다.44 부분적 소개와 비판적 해석에 이어 그는 문학사적 논의를 통해 대항적 논리를 창안함으로써 사르트르에 대한 냉전적 번역을 완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작가와 사회』는 세계 문화냉전의 자장 하에서 활동하였으면서도 냉전의 문학지를 변용하여 한국문학이라는 상황에 맞는 독자적인 논리를 펴나갔던 한국 지식인, 즉 변방이자 열전지(熱戰地) 출신 냉전적 주체의 고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5. 결론

    ‘작가와 사회’ 세미나 전 해인 1966년 1월, 백낙청은 『창작과비평』 창간사에 해당하는 글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적극 인용하며 새로운 문학적 세대의 출사표를 던졌다.45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예비적 판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르트르의 『현대』 창간사인 「현대의 상황과 지성」도 번역하여 함께 창간호에 싣는다. 창간사에서 그는 특히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번역본에서 누락된 4장을 주로 참조하고 있다.46 4장의 핵심 내용에 해당하는, 작가는 현실적 독자는 물론 잠재적 독자를 위해 써야 한다는 주장을 끌어와 당대 한국문학의 현실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 독자가 거의 부재하다시피 하는 상황인 만큼 잠재적 독자를 현실적 독자로 만드는 일이 한국 작가들에게 주어진 시급한 임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47 그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경계해야 할 좌경화의 논리가 물론 아니었으며, 오히려 당대 한국문학의 참조점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48

    몇 년 뒤 백낙청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한 김붕구의 비판론에 찬성을 표한 바 있는 선우휘와 「작가와 평론가의 대결-문학의 현실참여를 중심으로」(『사상계』, 1968.2)라는 제목의 대담을 한다. 예의 좌경화론이 화제에 올랐을 때 백낙청은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르트르 문학론의 해석을 제시한다. “(…전략…) 문학의 본질이 자유니까 문학은 자유에 대한 억압을 물리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고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속박에 대한 하나의 반항이 된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자유로워야지 문학을 할 수 있고 독자도 자유로워야지 그 문학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런 문학의 가치를 주장하고 그런 문학을 만든다는 것이 곧 억압적인 사회에 대한 비판 및 저항과 직결된다는 것이지요. 특히 싸르트르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도구화하는, 그가 살고 있는 기존사회 즉 서구 자본주의사회를 부인하고 한층 자유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노력이 안 되려야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49 이와 같이 자유에 대한 지향을 강조하는 사르트르 해석의 전략을 통해 백낙청은 선우휘로부터도 일단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다소 시차가 있지만 김현 역시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숨겨진 참조를 통해 『한국문학의 위상』(1973)을 쓴다. 문학은 무용하지만 대신 현실의 부정적인 면을 폭로하는 역할을 한다는 대목을 참조하여 문학은 억압하지 않으며 억압을 추문화한다는 유명한 문학관으로 재해석해내기도 한다.50 김현이 자신의 스승이기도 했던 김붕구와 어떻게 같고 다른 방식으로 사르트르에 대한 전유를 이어갔는지는 별고를 요하는 과제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4·19세대 비평가들에 이르러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냉전적 해석의 틀에서 벗어나 동시대 문학의 가능성을 심문하는 텍스트로 재해석될 수 있었으며, 지식인 작가의 임무와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논의의 원천으로서 한동안 한국문학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텍스트가 한국문학의장에서 번역되고 해석되어 온 양상을 짚어보았다. 사르트르가 냉전의 문화정치 안에서 복잡한 의미들을 동시에 지니는 이름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 저서의 번역과 해석의 과정은 문화냉전의 지속적인 장력과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힘 사이에서 문학지가 복수적인 것으로 구성되어나간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OAK XML 통계
이미지 / 테이블
(우)06579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Tel. 02-537-6389 | Fax. 02-590-0571 | 문의 : oak2014@korea.kr
Copyright(c) National Library of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