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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학술지
맑스와 뒤르케임의 딜레마와 자연주의 사회과학의 가능성* Marx and Durkheim’s Dilemma and Possibility of Naturalist Social Science
  • 비영리 CC BY-NC
ABSTRACT
맑스와 뒤르케임의 딜레마와 자연주의 사회과학의 가능성*

This paper reconceptualizes the dichotomous interpretative structure and the epistemological dilemma regarding Marx and Durkheim’s methodologies raised by the positivist view of science as in the “Marx and Durkheim’s Dilemma”. Positivist interpretations of Marx and Durkheim have made these two theories incompatible. However, this incompatibility reflects the epistemic limitations of Positivism as an ideology, instead of actual incompatibility between perspectives of Marx and Durkheim. By re-examining Marx and Durkheim through the view of critical realism these perspectives can be understood as complementary, not contradictory. Such a perspective has been expressed as “human naturalism” by Marx and “sociological naturalism” by Durkheim.

KEYWORD
맑스와 뒤르케임의 딜레마 , 사회과학방법론 , 비판적 실재론 , 자연주의 사회과학
  • Ⅰ. 문제의 제기

    맑스와 뒤르케임은 자연주의 사회과학의 선구자이자 고전 사회학의 사회실재론의 입장을 통상 대표하지만, 1930년대 이후 표준적인 사회과학모델로 기능해온 실증주의 과학철학의 헤게모니 속에서 양자의 사회과학방법론의 공약가능성은 학문적 논의의 장에서 주변화되었다. 이 글은 실증주의 과학관으로 쉽사리 이해될 수 없었던 맑스와 뒤르케임의 자연주의 사회과학1)을 비판적 실재론의 과학관이 보다 잘 설명한다는 점을 드러내 보이는데 주요한 목적이 있다. 오늘날 많은 한국 사회과학 연구자들의 암묵적인 준거가 어떤 방식으로든, 맑스와 뒤르케임의 사회과학 패러다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양자의 과학방법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사회과학의 과학성은 물론, 한국 사회(과)학의 과학성에 대한 성찰과 직결되어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맑스와 뒤르케임 이론의 고갈되지 않은 잠재력과 설명력이 현실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이론적 현실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였다. 이 글은 그 하나의 단서를 과학방법론의 차원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방법론의 차원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사회과학적 연구도 암묵적으로 이론적 함의를 지니고 있으며 그 이론은 어떤 사회과학 방법에 의거할 수밖에 없고, 다시 그 방법은 특정한 존재론과 인식론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은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에 전제되어 있는 견해와 판단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하지 않고 있다. 즉 사회라는 대상은 어떤 것인가, 사회는 어떤 방법으로 탐구할 수 있는가, 또 왜 탐구하는가와 같이 과학적 작업에 필수적인 ‘과학적 지식 자체에 대한 과학적 지식’에 대한 논의를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것으로 취급하며 의식적으로 배제해 왔던 것이다(이기홍, 2006: 224). 거꾸로 이러한 관행의 암묵적인 이론적 근거는 거꾸로 ‘실증주의’라 부를 수 있는 인식론적 입장이다. 여기서 과학적 지식의 생산은 방법, 즉 신뢰할만한 경험적 지식의 연구조사 기법의 문제와 동일시되고, 과학적 지식은 철학에서 독립한 지식이나 철학을 배제한 지식이라고 간주된다.2) 하지만 모든 과학은 암묵적으로 철학을 전제하며, 사회과학 또한 철학적 전제가정들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학문이다. 철학적 가정이 사회과학의 관심 초점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Trigg, 2013: 355). 그러나 이 모든 이론이 전제하고 있는 메타이론적 차원에 대한 무관심과 성찰의 부재는 오랜 시간 맑스와 뒤르케임의 과학 각각에 대한 그릇된 통념은 물론 양자의 불필요한 반목을 지속·재생산하는데 작용해 왔는 바, 이는 맑스와 뒤르케임의 사회과학방법론에 관한 학문적 비교작업이 전 무한 국내의 이론사적 공백에서 그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3)

    한편 뒤르케임의 자유방임주의 비판의 급진성과 고갈되지 않은 잠재력이 맑시즘 을 성찰하는 바로미터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급진적 뒤르케임Radical Durkheim(Pearce, 2001)의 주장이나, 최근 위기에 처한 맑시즘의 재구성의 핵심은 사회성(the social) 개념의 회복에 있다고 제안하는 임운택(2009)의 논의는 잘못된 반목을 극복하기 위한 맑시즘 내의 성찰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학’을 표방한 두 사상가의 이론적 화해만으로 문제가 해소될 수 없는 까닭은, 두 사상가의 과학방법론에 대한 곡해를 체계적으로 재생산해온 실증주의 과학 패러다임의 지속적인 헤게모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1970년대 과학철학 논쟁 이후 사회이론으로서의 실증주의 또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방법론적 실증주의는 사회학 내부의 일상적·제도적 실천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 부르디외가 말한 - “독사”(doxa)라고 할 수 있는데(채오병, 2007: 254), 하나의 독사로서 실증주의는 잘못된 이분법의 오류들에 근거해 체계적으로 재생산되는 특징을 보인다. 물론 이 이원론과 이분법들은 단독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면서 결합하여 작동하며 의미와 연상이 하나로부터 다음 것으로 “스며든다.”(Sayer, 1999: 44) 이제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이분법은 맑스와 뒤르케임의 과학방법론을 둘러싼 이분법적 해석의 구조를 규정하며, 이 글에서 ‘맑스와 뒤르케임의 딜레마’로 쟁점화한 해석의 혼란들을 야기한다.

    결국 본 글에서 문제 삼는 ‘맑스와 뒤르케임의 딜레마’는 (맑스와 뒤르케임 ‘자신의’ 딜레마가 아니라) 실증주의 과학철학이 부과한 이분법적 해석의 구조와 인식론적 딜레마를 지칭하는 것으로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는 다음의 세 차원을 포함한다. 첫째, 청년 맑스와 노년 맑스, 초기 뒤르케임과 후기 뒤르케임에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는 ‘두 명의 맑스’, ‘두 명의 뒤르케임’의 딜레마가 그것이다. 이는 관념론과 유물론, 자원론과 결정론, 철학과 과학의 이분법적 교환에 의해 뒷받침되며 미국의 개인주의 사회학과 맑스주의 내부의 실증주의가 상당부분 공유하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둘째, 그 대상과 ‘과학적 방법’에 있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관계를 둘러싼 이분법적 딜레마로, 주로 맑스와 뒤르케임의 방법론에 대한 과잉자연주의적 해석과 반자연주의 해석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셋째, 사회과학의 위상과 역할에 있어 사실과 가치, 과학과 비판의 이분법적 딜레마로 이는 표준과학모델이 이상으로 삼는 가치중립 교의가 역설적으로 과학과 비판,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통합하고자 했던 맑스와 뒤르케임의 사회과학방법론의 ‘과학성’을 평가하는 암묵적인 준거로 기능함으로써 야기 되는 연구자들의 해석의 딜레마를 지칭한다. 그리고 이 이분법적 딜레마의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각각을 통합하고자 했던 맑스와 뒤르케임의 과학성의 핵심을 읽어낼 수 없게 만들고, 양자의 차이에 주목하게 하는 기능을 담당해 왔다는 점이다.

    반면 오늘날 실증주의 과학관의 오류를 정정하고 주류 과학철학의 실패에 대한 대안으로 그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비판적 실재론은 기존의 이분법적 오류를 해소할 인식론적 돌파구를 열어줌으로써, 맑스와 뒤르케임의 사회과학방법론의 생산성과 공약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차원을 제공한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첫째, 맑스와 뒤르케임을 둘러싼 실증주의 과학관의 이분법과 이에 대한 유의미한 비판을 모색해온 비판적 실재론의 해법을 간략히 살펴본 후(Ⅱ장), 둘째, 양자의 초기 저술을 중심으로 근대철학의 이원론적 분열의 극복을 과제로 삼았던 맑스와 뒤르케임 자신의 자연주의 사회과학의 전제들을 복원할 것이다(Ⅲ장). 궁극적으로 사회과학 내부에 자리한 자연주의의 전통을 새롭게 불러오는 작업은 오늘날 현실 개입력을 상실한 사회과학의 위기에 효과적으로 개입할 이론의 능력을 제고하기 위함이다(Ⅳ장).

    1사회과학에서 자연주의는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사회와 역사현상의 탐구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사회가 자연세계의 일부라는 믿음에 기초해있다. 사회과학 내부에서 ‘자연주의’는 사회적 삶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반(反)자연주의는 사회생활의 독특한 특성 때문에 사회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면서 양 진영 간의 대립은 사회과학방법론 논쟁의 핵심을 이루어왔다. 본고에서 말하는 ‘자연주의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연구대상 및 방법의 통일성과 차이를 아울러 고려하는 ‘비판적 자연주의’(Bhaskar, 2007)와 내용을 같이하지만, 용어상의 철학적 확장에 제한을 가하고 사회과학철학 내의 논점을 분명히 하고자 ‘자연주의 사회과학’이란 용어를 사용하겠다.  2그러나 과학은 인식 이전에 존재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출발한다. 즉 과학은 늘 무엇인가에 ‘대한’ 과학이며 과학적 인식은 암묵적인 존재론을 전제하며 필요로 하지만, 주류 과학철학의 실증주의의 인식론은 존재론의 문제를 과학적 방법에 대한 논의로 환원시켜왔던 것이다. 이를테면 과학 또한 그와 관련된 철학의 하위분야로 존재론, 인식론(지식이론), 방법론(혹은 논리학), 가치론(윤리학)의 차원을 갖는다. 철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대안적인 견해는 ‘조수’ 견해로 불린다. 실재론의 철학은 사회에 대한 연구에 더 적절한 인식론을 제공하는데서 유익한 조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연구의 정당성을 옹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Benton and Craib, 2014: 15-23, 221).  3맑스 이론의 핵심이 그의 과학방법론에 있다는 많은 논자들의 통찰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맑스 과학방법론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은 영역으로 남아 있다. 뒤르케임 연구도 다르지 않다.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뒤르케임의 이론 및 방법론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 패러다임 속에서 전세계적으로 ‘얽혀있는 실타래처럼’ 혼란스러운 양상을 띠었고(민문홍, 2001; 김광기, 2009; Lukes, 1973; Rawls, 1996 참조), 1970년대까지 표준적인 사회과학모델로 기능해 온 실증주의 과학철학 및 구조기능주의의 헤게모니 속에서 정당하게 평가되지 못했다. 1950-60년대 미국 사회과학 전반을 양분하고 있던 기능주의-갈등주의의 이분법적 도식에서 기능주의의 핵심적인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학자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뒤르케임 사회학의 규범적 지향은 갈등과 변화보다는 통합과 안정을 추구하는 이념적 보수주의로 오랜 기간 각인되어왔다(김태수, 2008: 290). 즉 많은 맑스주의자들과 사회학자들이 두 담론 사이에 근본적인 대립이 있다고 이해해 왔던 것이다.

    Ⅱ. 맑스와 뒤르케임의 딜레마와 비판적 실재론의 해법

       1. 맑스와 뒤르케임의 딜레마: 이분법적 해석의 오류들

    1950년대 이후 최근까지 맑스와 뒤르케임의 방법론에 대한 해석의 동향은 실증주의-탈실증주의, 과잉자주의-반자연주의의 대립 구도 속에서 실증주의 논쟁 및 자연주의 논쟁의 쟁점들이 착종·변형되어 전개되는 국면을 보여준다. 사회과학철학에서 ‘실증주의 논쟁’이 ‘과학적 인식’의 성격을 둘러싼 것이라면, ‘자연주의 논쟁’은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가능성에 관한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이기홍, 2008a: 224). 두 논쟁은 주류 사회과학철학의 실패와 변형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실증주의 과학철학은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사회현상의 설명에 확대 적용하자는 입장, 즉 자연주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므로, 자연을 연구하는 방법이 사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사회학을 사회물리학으로 호칭했던 꽁트의 고전적 실증주의를 통해 잘 드러난다. 그러나 마하(E. Mach) 이후의 신실증주의, 이른바 논리경험주의 또는 논리실증주의는 세계가 층화되어 있다는 것을 - 그러므로 정신을 물질로 인간을 자연으로 환원해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놓침으로써 - 궁극적으로 과잉자연주의의 문제를 야기해왔다. 이에 반대하여 반(反)자연주의 전통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그 대상의 차이에 따라 연구방법 또한 상이하다고 주장한다. 이 전통의 철학적 뿌리는 자연과학과 정신과학, 사실과 가치의 분리를 정초한 19세기 말 신칸트주의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베버, 딜타이 등을 위시로 한 인간과학 내부의 해석적 패러다임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 러한 입장은 인간과 자연, 자연 현상과 사회·역사 현상을 폭력적으로 구분하고 후자를 자연필연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의 자발적 활동으로 서술하게 되므로, 자원적 행위이론으로 귀결될 위험에 놓인다(김진업, 2010 참조).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과잉자연주의와 반자연주의적 입장의 공통된 특징은, 흄의 법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실증주의적 ‘(자연)과학’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실증주의적 과학관이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인간-자연, 주체-객체, 관념-물질 등의 이원론적 존재론의 가정은, 방법론적 차원에서 이론-경험[역사]의 이분법과 가치론의 차원에서 과학-비판, 사실-가치와 같은 사회과학 내부의 고질적인 이분법과 결합되어 서로를 강화하며 재생산되는 특징을 보인다.

    마찬가지로, 맑스와 뒤르케임 방법론에 대한 실증주의적 해석이 주류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과잉자연주의와 환원주의적 해석의 문제를 야기해왔다면, 이에 대한 반향으로 등장한 반자연주의적 해석은 맑스 이후 맑스주의 진영의 경우 루카치, 사르트르, 프랑크푸르트학파로 이어지는 인간주의적 맑스주의 전통에서, 뒤르케임 이후 뒤르케임 사회학의 계보에서 방법론적 상호작용론이나 최근 부상하고 있는 신기능주의의 자원론적 해석에서 그 변형들을 발견할 수 있다.4)

    예컨대 고전사회학 - 맑스와 뒤르케임 - 의 안티노미를 사회학적 유물론과 사회학적 관념론, 결정론과 자원론의 갈등으로 분할한 알렉산더(Alexander, 1982)의 정식화나 사회학적 유물론과 사회학적 관념론의 도식에 입각해 맑스와 뒤르케임 사이에 배타적 차이를 설정하는 테르본(Therborn, 1989)의 사례는 유물론과 관념론의 이원론적 도식으로 환원되지 않는 양자의 사회적 존재론의 문제설정을 간과한다. 실증주의 과학관으로부터 야기된 인식론적 딜레마는 실증주의와 자연과학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맑스와 뒤르케임의 ‘과학적 방법’을 경험적 규칙성의 추구로 이해하거나, 규칙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원인의 추구를 ‘역사형이상학’ 또는 ‘사회학주의’로 판별하는 모순된 비판을 통해 드러난다. 이는 구체적으로 ‘법칙’ 개념을 둘러싸고 맑스의 역사이론이 경험적으로 확증되지 않았기에 기각되어야 한다거나 맑스의 과학성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로 이어졌다. 뒤르케임의 경우 ‘사회적 사실’ 개념을 둘러싼 ‘실증주의’와 ‘사회학주의’의 긴장과 충돌은 해석자들에게 논리적 비일관성으로 이해되고, 한편에서는 실증주의적 의미에서 엄밀하게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비판과 다른 한편에서는 지나치게 사회학적 결정론 또는 ‘과학주의’라는 모순된 비판으로 이어졌다. 가치론의 차원에서는 표준과학모델과 베버가 공유한 가치중립/가치자유테제에 의거해 맑스와 뒤르케임의 ‘사회과학’의 과학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 착종된 해석들이 주류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김명희, 2014: 9-55).

    이 이분법들이 실증주의 과학관에 의해 뒷받침되고 상호 재생산된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 실증주의 과학관이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경험주의적 존재론 때문이다. 경험주의적 존재론은 경험적으로 그것의 존재가 확인되는 객체만이 존재한다고 상정하는 존재론적 입장을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경험적’ 실재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는 실제에 있어서는 ‘경험’(되는 것)만이 존재한다는 존재론적 가정과, 모든 지식은 경험으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인식론적 가정을 독단적으로 수용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런데 더 근원적으로 본다면, ‘경험’은 인간의 의식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것에 대해서만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의식 속에 있는 것에 대해서만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을 뜻한다.5) 이러한 점에서 경험적 실재론은 곧 ‘초월적 관념론’이다. 즉 경험적 실재론은 경험주의적 해석 및 관념론적 해석 둘 다 허용하는 역설을 발생시킨다(이기홍, 2006: 225; Bhaskar, 2007: 113). 이른바 과학이란 ‘객관적인’ 사실에 관한 것으로, ‘주관적인’ 가치 판단은 과학 이외의 형이상학 혹은 윤리학의 영역으로 엄격히 분할해왔던 가치 중립테제 역시 이러한 경험적 실재론에 그 뿌리를 갖고 있다.6) 다시 말해 유물론-관념론, 결정론-자원론, 경험(역사)-이론, 사실-가치, 과학-비판 등의 이분법이 상호 호환구조를 갖는 이유는 어느 한 쪽을 객관에 속한 것으로, 어느 한 쪽을 주관에 속한 것으로 정향 짓게 하는 평면적인 인식론과 존재론 - 이른바 바스카가 인식적 오류7)라고 부른 것 - 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맑스와 뒤르케임에 대한 탈실증주의적 해석은 이 ‘이분법’이 동시에 의존하고 있는 제3항, 즉 메타이론적인 전제가 정들을 기각하지 않고, 맑스와 뒤르케임에 대한 실증주의적 해석을 지양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8)

    새로운 과학철학의 지원은 이로부터 요청된다. 맑스와 뒤르케임에 대한 실증주의적 해석을 기각하지 않고 맑스와 뒤르케임의 과학을 재구성하거나 실증주의적 해석에 반대했던 노력들이 한계를 갖는 것처럼, 실증주의 과학관을 해소하지 않고 맑스와 뒤르케임에 대한 실증주의적 해석을 기각할 수는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해졌다. 비판적 실재론의 과학관은 통상 지식 추구의 인식론적 절차로만 이해되어왔던 과학의 - 암묵적인 - 존재론의 차원을 불러옴으로써, 실증주의의 잘못된 과학관을 바로잡고자 한다.

       2. 비판적 실재론의 해법: 초월적 실재론과 비판적 자연주의

    앞서 말했듯 비판적 실재론은 실증주의가 자연과학을 근본적으로 오해했다고 주장하고, 인식주체와 세계의 관계를 되물음으로써 과학적 인식이라는 주제에 의해 뒷전으로 추방되어왔던 존재론의 문제를 복원한다(Bhaskar, 2007: 29). 그 용법에 있어 비판적 실재론은 과학철학 일반을 지칭하는 초월적 실재론(transcendental realism)과 사회과학철학을 지칭하는 비판적 자연주의(critical naturalism)라는 용어를 축약한 것이다. 비판적 실재론의 과학관을 간략히 요약하면 첫째, 초월적 실재론은 자동성, 층화, 초사실성9)이라는 세 형태의 존재론적 깊이를 옹호함으로써, 경험적 실재론의 이분법적 순환을 해소하고 사회과학에서 반실증주의적 자연주의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세계는 평평하게 구성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층화되어있고, 다수의 인과기제의 결합과 연쇄로 운동하는 개방체계이며, 우리의 앎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지식의 자동적 차원 - 실재하는 객체 - 과 지식 속의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타동적차원 - 사유 속의 객체 - 을 동시에 갖는다. 비판적 실재론이 실증주의 과학철학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지식의 자동적 차원과 타동적 차원의 구분을 통해 실재하는 세계와 인식된 세계를 융합해 버리는 실증주의의 암묵적인 존재론, 경험적 실재론을 효과적으로 반박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경험적 실재론의 차원에서는 해소될 수 없는 객관과 주관, 이론과 경험,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이분법적 순환이 모두 (자동적 대상을 전제로) 타동적 차원에 위치한 지식 탐구의 구분되는 두 계기라는 점 또한 분명해진다.

    둘째, 초월적 실재론이 “과학이 가능하려면 세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질문한다면, 비판적 자연주의는 “과학이 가능하려면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질문한다(Bhaskar, 2005: 103). 즉 사회세계의 존재론적 특성에 대한 고찰을 통해 사회과학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들을 초월적으로 연역해 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비판적 자연주의는 공리주의적 사회이론을 대표 사례로 하는 개인주의적 견해 및 집단 개념을 강조하는 집합주의적 견해를 지양함과 동시에 물상화와 자원론 각각으로 환원되지 않는 제3의 사회적 존재론을 제시한다. 이는 관계적 사회패러다임으로 정식화된다. 그 전형적인 사례로 맑스의 사회적 존재론이 제시된다. 바스카는 사회에 대한 관계적 개념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Grundrisse』(1857)의 논의를 끌어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회는 개인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의 총합, 즉 이 개인들이 그 안에 위치하고 있는 관계들을 표현한다.”(Marx, 2000: 264) 즉 우리의 사회적 존재는 관계들에 의해 구성되고 사회적 행위는 관계들을 전제한다. 이로부터 도출된 사회구조의 존재론적 특성은 사회과학에서 자연주의의 제한과 가능성을 동시에 규정한다. 바스카는 자연적 객체와 구분되는 사회적 객체의 몇 가지 발현적 속성을 행위의존성, 개념 의존성, 시공간적 의존성으로 정리한다(Bhaskar, 2007: 156-158, 184-189).

    이러한 사회적 객체의 존재론적 특성으로부터, 중요한 관계적·비판적 차이가 도출된다.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은 그것이 탐구하는 영역 자체의 일부라는 점에서 사회과학이 채용하는 설명적 이론들의 개념과 법칙에 입각한 설명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 사회구조가 자연구조와 달리 행위 의존적이며 개념 의존적라는 사실로부터, ‘사회 없는 사회과학이 불가능한 것과 똑같이 사회과학 없는 사회도 상상할 수 없다’는 사정이 발생하는 것이다(Bhaskar, 2007: 168).10) 즉 비판적 실재론은 “개념성이 사회적 삶의 특징이라는 점을, 그것이 사회적 삶의 전부라고 상정하지 않으면서, 인정”한다(Bhaskar, 2005: 23). 사회과학적 지식의 대상들이 존재론적으로 자동적이지만, 인과적으로 그것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식과 상호의존적이라는 관계적 차이는, 결정적으로 설명적 비판이라는 개념의 발전을 통하여 표준적인 사실/가치, 이론/실천의 구분의 붕괴를 촉발하는 것으로 나아간다.11)

    간단히 요약하면, 비판적 자연주의는 인간과학을 지배해 온 이분법과 이원론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12) 이를 통해 전통적인 지식이론의 존재론, 인식(방법)론, 가치론(윤리학)의 분할을 새롭게 종합하는 사회과학적 설명모델과 사회과학의 과학성 또한 확보하고자 한다. 이를 표로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경험적 실재론과 비판적 실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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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적 실재론과 비판적 실재론

    4따라서 사회과학방법론 논쟁에서 자연주의 대 반자연주의 그리고 실증주의 대 관념론의 이분법적 틀은 배타적이지 않으며 상호 연쇄되어 있는 다양한 이분법과 함께 작동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이분법들과 그 기초로서 객관-주관의 이분법은 근대철학에서 중요한 분야가 된 인식론의 중요한 특징으로, 대부분의 현대 사회이론의 메타이론적 가정들로 자리하고 있다(Keat and Urry, 1993: 14; 이기홍, 2008a). 이 이분법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유사성과 차이에 대한 논의들의 배후에 늘 자리하고 있는 개념틀로, 상식 속에 내재되어 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영·미의 철학 및 사회과학 문헌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 이원론과 이분법들은 세계와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에 문제를 야기한다(Sayer, 1999: 43-51). 한국에서 맑스와 뒤르케임의 과학방법론을 해석하는 틀로 기능해온 이분법적 메타가정들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김명희(2014)의 Ⅱ장을 참고하라.  5예컨대 사회과학의 실제 연구에서 널리 사용되는 방법인 질문지 조사와 그것의 통계적 처리는, 사회라는 객체가 개인들(의 관념)로 구성되며, 따라서 개인들(의 관념)을 파악하면 사회를 탐구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의미있는 과학적 방법이다(이기홍, 2006: 225).  6이는 ‘경험적 탐구’를 본령으로 하는 경험과학은 가치중립적이어야 하며, 가치는 과학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가치자유테제의 공존을 통해 잘 드러난다.  7인식적 오류(epistemic fallacy)는 존재를 지식에 입각하여 정의하는 오류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지각된 세계’보다 크다는 전제를 놓침으로써 존재론의 문제를 인식론의 문제로 환원하는 오류를 말한다(Bhaskar, 2007: 302, 344-345).  8현대 사회이론의 역사에서 ‘뒤르케임에 대한 실증주의적 해석’을 기각하지 않고, ‘실증주의에 반대하는’ 전략들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는 김광기(2009)를, 맑스 역사이론에 대한 경험론적 문제설정을 기각하지 않고 “주관성과 객관성의 문제 역시 인식론의 차원에서 해체”하려는 시도의 한계에 대해서는 채오병(1998)을 참고하라.  9초사실성(transfactuality)은 구조의 인과적 힘의 행사로 인한 발생 메카니즘의 작동을 일컫는다. 실재적인 것의 영역은 현실적인 것의 영역과 구별되며 이 영역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Bhaskar, 2005: 19).  10여기서 사회과학은 종교 및 상식, 통념과 같은 원시과학적 이론 및 이데올로기적 이론을 아우른다.  11설명적 비판이론은 사회세계는 사회적 객체들과 아울러 사회적 객체들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들로 구성되며 따라서 사회세계를 탐구하여 설명하는 연구는 그 자체로 ‘비판’을 내포하고 가치와 행위에 대한 판단을 수반한다는 주장이다. 사회과학의 요체로서 설명적 비판은 비판 없는 설명과 설명 없는 비판을 지양하고 사회과학적 설명과 사회이론적 비판을 통합하고자 한다.  121) 가장 중요한 이분법은 실증주의의 과잉자연주의와 이에 대한 반향으로 등장한 해석학의 반자연주의의 이분법이며 실증주의에 대한 보다 타당한 비판을 제시함으로써 양자의 대립을 해소하고자 한다. 2) 개인주의와 집합주의의 이분법은 사회를 관계적이며 발현적인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해결한다. 3) 자원론과 물상화의 이분법은 구조와 행위주체에 관한 논쟁을 포함한다. 이는 변형적 사회활동모델에 의해 극복된다. 4) 흄에 의해 정초되고 베버에 의해 체계화된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이 있다. 이는 설명적 비판이론에서 논박된다. 5) 이러한 이분법들은 대부분 정신과 육체 사이의 이원론에 기초하고 있는데, 비판적 자연주의는 발현적 힘의 유물론에서 정신을 물질의 발현적 힘으로 파악함으로써 극복하고자 한다. 이 글이 다루는 범위를 벗어나지만, 이 외에도 6) 실증주의/해석학 논쟁을 가속화하는 이유와 원인의 이분법이 있다. 비판적 자연주의는 이 이분법을, 흄의 인과성 개념을 기각하면 이유도 비판적 실재론적 인과성 개념에 근거하여 독자적인(sui generis) 원인일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해결한다(Bhaskar, 2005: 21).

    Ⅲ. 맑스와 뒤르케임의 자연주의 사회과학: 초기 저술을 중심으로

    이상 비판적 실재론에 대한 간략한 개괄을 마치고 맑스와 뒤르케임 자신의 사회과학철학으로 돌아오자. 주목해야할 지점은, 흥미롭게도 맑스와 뒤르케임을 둘러싼 많은 이분법은 이미 그들이 돌파하고자 했던 쟁점들이라는 점이다. 동시에 이는 최근 유럽에서의 새 과학철학의 요청이 새롭게 돌파하고자 시도하고 있는 이분법이라는 점에서 19세기 과학철학의 현재성과 공시성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하겠다.13) 이러한 맥락에서 ‘발현의 사회학’의 가능성을 모색해온 소여는, 고전 사회과학의 딜레마가 사회적 발현 이론을 이해하지 못한 현대 사회학자들에 의해 ‘딜레마’로 읽혀왔던 데 기인한다고 말한다(Sawyer, 2002: 227).

    이 절에서는 맑스와 뒤르케임의 초기 저술을 중심으로 전통적 철학의 낡은 이항대립을 기각하면서 그 골격을 구축한 맑스와 뒤르케임의 자연주의 사회과학의 전제들을 살펴본다. 여기서 초기 저술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까닭은 맑스와 뒤르케임의 인식론적 발전을 초기-후기로 나누어 관념론과 유물론, 자원론과 결정론, 철학과 과학으로 양분해온 기존 견해와 달리, 또한 초기-후기 저술의 연속성을 입증함으로서 두 명의 맑스, 두 명의 뒤르케임 테제를 기각하고자 했던 기존의 시도와 달리, ‘근대철학의 이원론적 분열 그 자체를 문제시했던’ 양자의 사회과학의 출발점 - 존재론적 전제들 - 과 실재론적 과학관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곧 양자의 초기 저술은 실증주의 과학관의 일면적 관점에서 형이상학, 혹은 비(非)과학적인 것으로 치부되어왔던 맑스와 뒤르케임의 존재론과 인식론, 그리고 가치론적 전제가정들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바, 이러한 입장은 맑스에겐 ‘역사과학’(1846)과 ‘인간적 자연주의’(1844)로, 뒤르케임에겐 ‘도덕과학’(1893)과 ‘사회학적 자연주의’(1898; 1900)의 입장으로 표현된다.

       1. 맑스의 인간적 자연주의: 관념론과 유물론의 이항대립을 넘어

    맑스의 비판적 자연주의의 관점은 『경제학-철학 수고』(1844)에서 시사되고, ‘관념론과 유물론의 낡은 안티테제’를 지양하는 역사과학에 대한 견해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는 『독일이데올로기』(1846)에 잘 드러나 있다. 엥겔스가 회고하듯, 헤겔 이후에도 헤겔의 영향력은 지대했고 그 변형된 형태로 철학적 관념론과 철학적 유물론이 양극단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대립은 사유와 존재, 정신과 자연의 대립이라는 낡은 철학의 근본문제를 둘러싼 대립이었다. 데카르트로부터 헤겔까지 그리고 홉스부터 포이 에르바하까지 이 오랜 기간 동안 철학자들을 앞으로 추동한 것은 순수사상의 힘만이 아닌, 빠르게 발전하는 자연과학과 산업의 진보였다. 유물론자들의 경우 이 점이 이미 표면에 드러났지만, 관념론적 체계들도 더욱더 유물론적 내용으로 채워졌고 정신과 물질의 대립을 범신론적으로 화해시키려 했다. 그런 점에서 결국 헤겔의 체계는 방법과 내용면에서 관념론적으로 거꾸로 선 유물론을 의미할 뿐이었다. 청년 학파의 해체 과정에서 청년 헤겔파의 많은 주요 인물들이 헤겔에 대한 반향으로 영국-프랑스 유물론으로 떠밀려 갔고, 포이에르바하는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물질이 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정신이야말로 물질의 최고 생산물일 뿐이라는 선언은 맑스를 비롯한 많은 청년헤겔학파들을 열광하게 했다. 포이에르바하의 발전 과정은 한 헤겔주의자가 유물론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며 일정한 단계에서 선행자들의 관념론적 단계와 완전한 단절이 필요한 발전이었다. 그러나 이후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체계적으로 비판되듯,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은 ‘역사’를 사고할 수 없었다.14) 이 점에서 고전적인프랑스 유물론도 다르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인식론적 문제에 멈추지 않았다. 1844년 이래 프랑스에서 수입되어 독일에서 전염병처럼 번진 ‘진정한 사회주의’는 포이에르바하의 이러한 약점과 관련되어 있었고 계급투쟁이 아닌 ‘사랑’을 매개로 한 인류의 해방을 예찬할 뿐이었다(Engels, 1991: 251-260).

    따라서 “포이에르바하의 새로운 종교의 핵을 이룬 추상적 인간에 대한 숭배는 실제 인간과 그의 역사적 발전에 관한 과학으로 바뀌어야 했다.”(Engels, 1991: 271)이 시기 반환원주의적 유물론에 기초한 맑스의 비판적 자연주의는 서로 연관된 세가지 쟁점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인간-자연의 이원론적 편견을 기각하는 인간관이 피력되며, 둘째, ‘자연과 인간의 본질통일로서의 사회’ 개념과 함께 자연과학과 인간과학의 통일에 대한 전망이 제시되고, 셋째, 경험론과 관념론을 비판적으로 종합하는 동시에 자연과학과 역사과학의 통일성과 차이를 아울러 고려하는 역사과학방법론의 단초가 시사된다.

    첫째, 많은 철학자들에게 인간에 대한 설명은 여타의 존재, 즉 자연과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해석을 포함하기에 그 사상체계의 중요한 일부를 이룬다. 맑스의 과학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학이 중요한 이유는 본질적으로 인간활동인 과학활동에 있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인간의 이원론을 넘어서는 맑스의 인간적 자연주의는 유적 존재라는 개념에 잘 드러나 있으며, 국민경제학 및 헤겔 관념론을 비판하는 부분에서 명료해진다. “국민경제학은 노동자를 노동동물로만, 문자 그대로 육체적 욕구로 환원되는 동물로만 알고 있”으며(Marx, 2006: 26), 헤겔은 인간을 자기의식으로만 간주한다는 것이다.

    고전 정치경제학이 인간을 노동하는 동물로만 환원함으로써 인간 소외를 은폐한다면, 헤겔은 인간 노동을 추상적·정신적 노동으로만 상정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소외를 보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대상의 규정적 성격이 파악될 수 없기에 헤겔 또한 잠정적으로 국민경제학의 입장에 서 있는 셈이다(Marx, 2006: 193-202). 고전 정치경제학의 유물론과 헤겔의 비대상적 유심론 각각을 지양하면서 맑스는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발현적 속성을 ‘유적 존재’라는 개념을 통해 포착한다. 맑스에게 유적 존재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지만, 인간의 고유한 생활은 동물의 생명활동과 구분되는 사회적 존재로서 자유를 갖고 있음을 지시하는 개념이다.15) 맑스의 비판적 자연주의의 인간관은 『경제학-철학 수고』(1844)에서 ‘욕구의 인간적 본성’을 보지 못하기에 사유재산의 저열한 현상형태에 멈춘다는 ‘조야한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이나(Marx, 2006: 127), 『철학의 빈곤』(1847)의 주제였던 프루동의 사회주의 및 당대 정치경제학자들에 대한 비판과도 연속성을 갖고 있다.16)

    둘째, ‘인간과 자연의 본질통일’로서의 사회 개념과 함께 자연과학과 인간과학의 통일이라는 하나의 과학에 대한 전망을 맑스는 “자연주의 또는 인간주의”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이는 헤겔 및 헤겔 이후의 철학, 즉 관념론 및 유물론의 이항대립의 지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회”를 또다시 추상으로서 개인에 대립시켜 고정시키는 일을 피해야 한다. 개인은 사회적 존재이다.”(Marx, 2006: 131) 즉 인간은 자연의 일부인 동시에 그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본성을 갖는다. 이를 통해 맑스는 “사유와 존재는 구별되기는 하지만, 동시에 서로 통일”되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Marx, 2006: 132). 이는 맑스의 사회과학으로의 이행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만일 사유와 존재의 구별만을 강조하면 이원론의 경로를 답습하게 되고, 사유와 존재의 동일성만을 인정하면 기존 헤겔의 한계, 바스카가 말한 존재론적 일가성17)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 맑스는 사회적 존재의 층위, 즉 발현적 속성을 사고함으로써 양자를 ‘구별’하되 ‘통일’하는 비판적 자연주의의 경로를 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산업과 인간, 자연과학과 인간과학의 외면적 발전을 지양함으로써 인간해방에 기여하는 하나의 과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Marx, 2006: 139-140 참조).

    이 맥락에서 중요한 쟁점은, 정치경제학 비판을 시작하던 파리 시절부터 그가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깊이 받아들였고, 전체 지성사의 맥락 속에 그 혁명적 측면을 통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맑스는 엥겔스와의 첫 공동저술인 『신성가족』(1845)에서 영국의 유물론과 모든 근대 실험 과학의 진정한 창시자는 베이컨이라고 말한다. 베이 컨이 말하듯 모든 과학은 ‘경험’에 기초하고 있으며, 각각에 의해 얻어진 자료에 ‘합리적 연구방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귀납, 분석, 비교, 관찰, 실험 등은 그 합리적 방법의 중요한 형식들이다.”(Marx and Engels, 1990a: 205-206) 맑스가 베이컨과 로크에게서 찾아낸 과학적 유물론의 원리는 비판적 실재론자 중 하나인 콜리어(A. Collier)에 의해 실험과학의 선구적 원리로 잘 부각된 바 있다.18) 과학은 곧 관념론또는 경험론의 일면적 발전과 상호 대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합리주의와 경험주의가 결합된 지적 활동이다.

    셋째, 맑스의 비판적 자연주의적 전제들은 역사과학의 기획을 처음 포괄적으로 시사한 『독일이데올로기』(1846)에서 구체화된다. 1장의 제목이 말해주듯, 포이에르바 하 비판 또한 “유물론적 견해와 관념론적 견해의 대립”의 지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쟁점은 1) 정신-물질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을 기각하고, 2) 이데올로기 비판 방법론으로서 역사과학방법론의 단초가 시사된다는 점이다.

    1) 관념론과 유물론이 공유한 정신과 물질의 이항대립은 인간의 의식이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처음부터 물질에 직접적으로 묶여있다는 사실을 인지함으로써 극복된다. 언어를 통해 동물과 달리 처음부터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며, 그런점에서 의식은 사회적 생산물이다.

    경험론과 관념론의 일면성에 대한 비판은 1841년 역사법학파의 실증주의 및 1843-1844년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이미 시작된 것으로, 맑스 ‘비판’의 핵심적인 두축을 구성한다. 물론 여기서는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연구기술이 제시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와 대립해서 사용하는 이 추상들의 사용’과 ‘역사적 실례를 통한 설명’19)이라는 진술을 통해 이후 1857년 「서설」과 『자본론』(1867)의 방법론과 연속성을 갖는 맑스 역사방법론의 기본 윤곽이 시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특정한 역사적 발전 과정 속에 있는 인간 - 사회 속의 인간 - 이라는 전제는 표상과 사유에서 출발하는 기존의 관념론적 접근방식과 구분되는 출발점이다. 다른 한 편 이는 죽은 사실들의 집적으로 역사를 다루는 경험론의 접근방식과도 구분된다. 이로부터 “현실적이고 실증적인 과학, 인간들의 실천적 실행 및 실천적 발전 과정의 서술이 시작”된다(Marx and Engels, 1990b: 220). 실증 과학 - 추상들의 사용과 실례를 통한 설명 - 을 통해 자립적인 철학의 자리는 비로소 현실적인 앎으로 대체된다. 생산양식과 교류형태, 즉 시민사회를 역사 전체의 기초로서 파악하고 모든 관념들의 형성과정을 시민사회로부터 추적하는 새로운 역사 파악은 사태를 그 총체성 속에서 표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역사과학은 연역이나 귀납이 아니라 현실적 관계들 - 즉, 사회구조 - 의 전제에서 출발해 대상을 고찰할 때 혁명적 실천에 기여할 수 있으며, 자연사와 역사의 대립 또한 해소될 수 있다(Marx and Engels, 1990b: 220-222). 또한 이론과 실천의 긴밀한 매듭은 곧 ‘설명적 비판’의 기본 전제인 바, 관념론과 경험론 각각을 지양하는 실재론적 관점이 구체적인 사회적 관계에 대한 설명을 과제로 역사연구방법론과 접목되는 계기를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즉 맑스에게 경험론과 관념론 각각을 지양하는 과학 방법은 곧 이데올로기 비판의 방법론이 된다.

    맑스는 『자본론』(1867)에서도 자연과학의 추상적 유물론이 역사와 사회에 바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비코(G.Vico)가 말하듯, “인간의 역사는 우리가 만들었지만 자연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양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의 추상적 유물론 - 즉, 역사와 역사 적 과정을 배제하는 유물론 - 의 결함은, 그 대변자들이 일단 자기의 전문영역 밖으로 나왔을 때에 발표하는 추상적이며 관념론적인 견해에서 곧 드러난다.”(Marx, 2004: 501)

    나아가 “자연에 대한 특정한 이러한 태도는 사회 형태에 의해 조건 지어지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 자연과 인간의 통일성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협소한 태도가 인간 상호간의 협소한 토대를 조건 짓고 인간 상호간의 협소한 태도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협소한 태도를 조건 짓는 식으로 나타나는 바, 이는 바로 자연이 역사적으로는 별반 변모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라는 맑스의 방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Marx and Engels, 1990b: 211). 즉 사회적 존재가 자연적 존재와 달리 관계의존적이며 시공간 의존적이라는 비판적 실재론의 사회적 존재론과, 관념론과 유물론, 자원론과 결정론 그 어느 쪽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관계적 사회실재론의 관점을 선취하고 있는 것이다.

       2. 뒤르케임의 사회학적 자연주의: 도덕론과 경제학의 이항대립을 넘어

    이제 뒤르케임의 사회학적 자연주의의 전제들을 살펴보자. 많은 해석자들이 뒤르케임의 철학적 관점에 대한 오해의 중요한 원인으로 초기 논문들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점과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이하 『규칙들』)의 지나친 강조를 들고 있는데 이는 일견 타당한 지적이라 보인다(Wallwork, 1972; 한영혜, 1983: 28; Miller, 1996: 47).20) 이는 앞서 말했듯 초기부터 분명하게 설정된 모든 “이원론적 편견”의 극복이라는 문제의식 자체의 명료함 때문이다. 맑스에게 관념론과 유물론의 낡은 안티테제로 표현되었던 인간과 자연의 분열은 뒤르케임의 맥락에서 칸트주의와 공리주의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이는 경제학의 유물론, 도덕론의 관념론의 이항대립의 다른 표현이었고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철학적 논쟁이 과학적 논쟁으로 확대되는 국면의 자연주의-정신주의, 환원주의-반환원주의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1870-1871년 보불 전쟁에서의 굴욕적인 패배 이후 프랑스의 문제들에 대한 실재론적 사회학의 접근이 요청되었고, 프랑스의 주도적 과학자들은 환원주의에 대항해 유사한 형태의 ‘정성적 자연주의(qualified naturalism)’에 도달하고 있었다.21) 뒤르케임 또한 모든 형태의 전통적인 환원주의에 반대하면서, 자연과학의 정신적 태도로 접근하되 “다른 영역으로 사회 영역을 흡수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의 독특함을 유지하는 실천들”을 “사회학적 자연주의”라고 불렀다(Durkheim, 1973: 18). 익히 알려져 있듯, ‘환원 불가능한 실재’에 대한 탐구는 뒤르케임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된다.

    왜 프랑스에서 이러한 형태의 사회학의 전통이 가능했는가? 뒤르케임은 과학에 앞서 행위하는 인간이 있었음을,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실천이 있었다는 점을 확고히 한다. “프랑스혁명의 원리들은 과학에 의해, 과학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바로 삶의 실천들의 결과였다.”(Durkheim, 1978b: 35) 사회학은 “혁명의 폭풍우가 지나갔을 때 마치 마법처럼 형성되었다.”(Durkheim, 1973: 6) 그러나 스펜서와 에피나스의 유기체적 사유를 거쳐 타르드의 명목론에 이르러 필연성을 부정하는 새로운 조류가 발생했다. 이러한 조류는 “인간과 사회들을 자연 밖에 놓아두려는 일반적 경향”이었고, “인간 삶의 과학의 분리된 분과들을 만드는 것”이었다(Durkheim, 1973: 5). 이는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의 지위에 대한 위협인 동시에 역사적으로 진전된 합리성의 심각한 퇴행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신비주의는 지적 영역에서 몽상(fantasy)의 지배 속에 있기 때문에, 실천적 영역에서는 아나키의 지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Durkheim, 1978c: 188). 다시 말해 전통주의의 약화와 합리주의의 정신 속에서 혁명은 진전되지 않았고, 이성에 대한 회의에 직면해 합리주의는 재구성되어야만 했다.22) 이성의 법칙에 사회적 사실들의 영역을 복속시키기 위해서는 데카르트와 함께 데카르트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뒤르케임은 자신의 시대를 ‘비판의 시기(critical period)’라고 불렀다.23)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원론적 편견들이 우선 극복되어야만 했고, 방법에 대한 새로운 재정립이 요청되었다.

    이제 모든 ‘이원론적 편견(dualist prejudice)’의 극복은 뒤르케임 사회학의 핵심 과제로 설정된다.24)

    초기 저술에 시사된 뒤르케임의 비판적 자연주의 또한 서로 연관되어 있는 세 가지 쟁점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당대 칸트주의 도덕론과 공리주의 경제학이 공유한 인간과 자연 사이에 설정된 이원론적 편견에 대한 비판, 둘째, 방법론의 자율성과 통일을 아울러 고려하는 실재론적 과학관, 셋째, 공리주의 경제학 및 칸트주의 도덕론이 공유한 방법론적 개인주의 비판에서 윤곽을 드러내는 도덕과학, 곧 자연주의 윤리학의 문제의식이다.

    첫째, 도덕과 경제, 인간과 자연에 단절을 설정하는 이원론적 편견에 대한 비판은당시 프랑스 학계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학자로 뒤르케임의 평판을 정초했던, 1885-1886년 독일유학의 성과를 집필한 『독일에서 도덕에 대한 실증과학La science positive de la morale en Allemagne』 (1887)의 중심 논제가 된다.25) 많은 논자들이 강조한 바 있듯, 뒤르케임의 사회학적 문제설정은 프랑스의 정치경제학과 그것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스펜서의 자유주의적 조류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였다. 프랑 스 제3공화정의 출발점에서 공화주의적 신념을 가진 지식인들이 우선적으로 시작한 작업은, 사회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개인적 이익추구행위를 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공익이 실현된다는 것을 주장하는 자유방임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것은 영미식 사회발전 모델에 대한 비판이었고, 뒤르케임 역시 당대 학계를 휩쓸고 있던 영국의 고전경제학과 싸워야 했다. 영국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대화가 그로 하여금 그 학문의 접근 방법에 동의할 수 없게 했고, 마침내 거기에 맞서는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세우도록 이끌어 갔다고 할 수 있다(홍태영, 2001; 박영신, 2008: 13-14; 민문홍, 2012: 77-78 참조). 뒤르케임이 독일 경제학자들의 사회경제학을 검토한 이유 또한 사회를 사적 이해관심의 총합으로만 이해하는 공리주의를 공략하기 위한 것이었고, 경제와 도덕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통찰을 프랑스의 제 문제들에 접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26) 간단히 말해 그가 독일 경제학자들로부터 발견한 사회실재론의 중요한 함의는 경제가 더 이상 도덕으로부터 분리된 자율적인 영역으로 이해될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Durkheim, 1993: 58-59).

    도덕과 경제 사이에 설정된 이분법은 자연-인간의 이원론적 편견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당대 도덕 이론에 잘 표현된다. 뒤르케임은 “프랑스에서는 오직 두 가지 형태의 도덕 이론 - 한편에서는 관념론자들과 칸트주의자의 그것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공리주의자의 그것”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Durkheim, 1993: 57). 양자 공히존재의 연속적인 층에 엄격한 단절을 설정한다. 결국 그들에게 “자연Nature이라는 단어는 인간(humanity)을 뺀 자연을 지시”한다는 것이다(Durkheim, 1993: 77). 정통 경제학자들과 칸트학파의 도덕론자들이 정치경제를 도덕 밖에 놓아둔다면, 이는 이 두 과학이 어떤 연결도 없는 두 세계를 연구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릇과 내용물의 관계처럼, “만일 우리가 경제 발전에 개입하는 도덕적 원인을 무시한다면, 경제 발전에 대한 완전히 그릇된 관념을 갖는 것이다.”(Durkheim, 1993: 67)

    이는 『사회주의와 생시몽Socialism and Saint-Simon』(1896)에서도 당대 정치경제학 및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논거가 된다. 뒤르케임이 볼 때 경제학과 사회주의는 동 일한 사회 상태와 원천 - 산업주의의 사회적 조건 - 을 공유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산업 생활을 단지 산업적 이해관계의 산물로 환원한다면, 생시몽에게 경제생활은 곧 사회적 사물(social thing)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생시몽은 “산업이 사회화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산업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뒤르케임은 여기서 어떻게 “산업주의가 논리적으로 사회주의로 귀결되는지”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Durkheim, 1958: 141). 그러나 뒤르케임은 생시몽의 과학적 전제, 즉 자연주의의 전망에 동의하지만 산업이 그 자체로 해방의 동력이라는 생시몽의 실천적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생시몽은 인간 존재가 동물의 욕구로 환원되지 않는 다른 발현적 속성을 지닌다는 점을 놓침으로써(Durkheim, 1958: 197-203 참조),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산업주의라는 해결책의 불충분함을 깨닫지 못했다는 비판이다.27)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차이점은 ‘언어’와 그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 ‘제도’에 있다. 언어는 사고가 입은 옷과 같아서, 개별적 의식과 사회적 의식의 가능조건이 된다. 제도와 언어는 특수한 자연으로서 인간의 존재론적 속성을 구성하며, 언어의 개념성과 보편성은 사회성의 조건이 된다.28) 뒤르케임은 『규칙들』 제2판 서문(1901)에 서 사회학을 “제도와 제도의 발생, 제도의 기능에 관한 과학”으로 재정의한다. 여기서 제도(institution)라는 말은, 집합체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믿음과 행위양식을 지칭한다(Durkheim, 2001: 44). 뒤르케임에 따르면 사회의식을 마음에 품는 것은 ‘믿음(faith)’ 때문이다.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상징들의 변화를 통해 개별의식들은 서로에게 침투하고 우리는 어떤 연대의 감각을 갖는다(Durkheim, 1978a: 107). 뒤르케임의 사회적 존재론은 「셰플레에 대한 리뷰Review of Albert Schäffle, Bau und Leben des Sozialen Körpers: Erster Band」(1885)에서 풍부하게 드러나는 바, 그가 셰플레에 깊이 공감했던 것은 사회의 본성은 연대에 있다는 그의 도덕적 실재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뒤르케임은 셰플레(A. Schäffle)를 생물학의 직접적 적용으로 평하는 푸예(A. Fouillée)를 논박하며 유기체적 ‘유추’는 단지 ‘은유’일 뿐 셰플레가 명백히 실재론자임을 지적한다.29) 스펜서와 에피나스가 단지 인간과 동물의 정도의 차이만을 보는 지점에서, 셰플레는 개별 유기체와 사회 유기체의 대비를 본다. 맑스의 초기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드러나듯, 동물과 인간 사이의 연속선상을 보면 환원주의의 오류에 빠지게 되고, 양자 사이의 단절만을 보면 자원주의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사회라는 실재만을 인정하면 실체론적 사회실재론의 오류에 빠지게 되고, 개인만을 인정하면 사회명목론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뒤르케임 또한 셰플레의 존재론으로부터 양 극단의 오류에 빠지지 않은 관계적 사회실재론30)과 사회학적 자 연주의의 기본 구도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뒤르케임 또한 사회적 객체가 관계·행위·개념·시공간 의존적이며, 따라서 믿음 의존적이라는 비판적 자연주의의 관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뒤르케임의 전 작업을 관통하는 방법론의 통일 및 자율성에 대한 모색은 1883-1884년 상스(Sens)에서의 철학교사 시절부터 일찍이 시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맑스에 비해 뒤르케임은 프랑스의 지적 전통 속에서 과학적 실재론에 빨리 도달했고, Sens에서의 논의는 18세기 프랑스 아카데미 철학을 지배했던 쿠쟁(V. Cousin)의 절충주의(eclecticism) 및 회의주의의 유산과의 대결이 핵심적인 주제가 되고 있다. 철학의 기준으로 ‘상식’을 제시하는 절충주의에 대항해 뒤르케임은 실험생리학의 선구자인 베르나르(C. Bernard)를 따라 진정한 철학의 방법은 ‘실험’이라고 주장한다. 실험은 정신이 진실이라 가정하는 것을 확고히 하기 위해 사전에 형성된 관념을 확인하기 위한 목표로 관찰을 행하는 것이다. 이는 연역적 방법과 경험적[귀납적] 방법의 중간 경로를 취하는 것이다. 관념론자들에겐 정신이 모든 것이다. 경험론자들에 따르면 관찰이 모든 것이다. 그러나 철학은 하나의 과학이며, 진정한 과학은 관찰에 의해서만 지탱될 수 없다. 정신은 방법의 혼이며, 사실들을 존중하는 것에 실패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철학과 과학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관계 속에 위치한다. 실증과학에 의해 연구되는 대상들을 관통하는 지식의 법칙들을 연구하는 것이 철학이다. 이 관계를 부정하면, 모든 실증과학은 주관성에 처한다. 철학은 실증과학이 의존하는 설명적 절차를 연구하며, 이것이 우리가 방법론이라고 부르는 논리 연구의 중요한 일부이다(Durkheim, 2004: 37-44).

    여기서 그가 말하는 개별 과학을 아우르는 방법론으로서의 철학은, 현대적 용어로 과학철학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를 통해 뒤르케임의 본격적인 학문 활동 이전부터 실재론적 과학관의 얼개가 제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학은 설명을 통해 삶을 개선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활동이다. 이러한 점에서 “과학은 지성적 존재(intelligence)와 사물들 사이의 투쟁”이라 할 수 있다(Durkheim, 2004: 41). 극단적인 명목론을 거부하면서, 버클리보다는 콩디야크를 출발점으로 택해 과학은 언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스펜서와 밀의 경험론에 대항해 그는 이러한 개념들이 외적 경험으로부터 구성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내적 경험으로부터 범주들을 끌어내고자 하는 시도 또한 거부한다. 또한 비랑(Maine de Biran)을 따라 흄의 인과성 개념에 반대한다(Durkheim, 2004: 57-59). 뒤르케임은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외부 세계가 실재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실재론적 독트린”이라고 말한다(Durkheim, 2004: 85). 뒤르케임의 일관된 ‘실재론’, ‘합리주의’의 입장은 “관념작용(ideation)의 능력”이 “조건과 원인이 발견될 수 있는 자연적 능력”이라는 생각에 있었다(Durkheim, 1953b: 96). 다시 말해 정신 현상은 자연 현상의 일부이며, 새로운 종합을 형성하는 특수한 자연 현상이다. 이러한 전제는 과학활동의 가능성과 이상에 대한 탐구를 가능케 하는 도덕과학의 기획을 구성한다. 이념과 이상도 실재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아직 여기서 뒤르케임은 관념작용의 조건을 사회에서 찾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정신 현상, 가령 종교 현상을 사회현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은 두해 뒤에 쓴 「스펜서에 대한 리뷰Review of H. Spencer, Ecclesiastical Institutions」 (1886)에서도 분명히 시사된다. 관념론과 경험론 각각의 불가능성에 기초해 사회과학적 탐구 방법을 수립하는 논증은 26년 뒤에 쓰여진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1912)의 서론에서도 연속성을 갖고 있다.31)

    셋째, 사회과학의 자율성에 대한 모색은 당대 경제학의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명확해진다. 경제학자들이 통상 행하는 방법은 정치경제학의 정확한 대상을 폐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강단사회주의자들을 반박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집합적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필수적으로 입증해야 했고, 이를 위해 우선 사회는 개인들의 집합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는 것이다(Durkheim, 1993: 65-66). 따라서 경제학자들이 사건들 사이에 설정한 ‘법칙’은 꽁트의 ‘자연법칙’ 개념이 아니라, 사실들의 관계와 무관한 개념들 사이에 순수한 논리적 연결일 뿐이다. 이는 정당한 ‘추상’의 방법이 될 수 없다. “추상은 실재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재의 일부를 고립시키는 것에 그 특징이 있다.”(Durkheim, 1993: 66) 뒤르케임은 사회학의 특정 분야에서 두드러진 이러한 관념적 방법이야말로 ‘이데올로기적 방법’이라고 말한다(Durkheim, 1978b: 37; 1982a: 168; 2001: 78). 이 때 맑스와 마찬가지로 뒤르케임의 용법에서 관찰될 사실들에 기초한 ‘추상’과 ‘이데올로기적 방법’사이의 대비는 뚜렷해진다.

    왜 사회과학에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방법이 유행하는가? 뒤르케임은 이도라(Idora)의 작용에 있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도라는 물리학의 시초에도 문제가 되었지만, “관념이 자신의 삶에 필요한 조건”인 인간의 경우 “편견과 우상이 사실에 대한 연구를 대신”하는 위협에 사회과학은 더 쉽게 노출된다는 것이다(Durkheim, 2001: 73).32) 마치 맑스가 헤겔의 역사철학을 향해 논리학이 현실의 사회관계에 대한 분석을 대신함으로서 ‘자의적 추상화’에 빠졌다고 비판하듯, 뒤르케임 또한 당대 경제학 및 도덕론이 인식적 오류에 빠지게 되는 메커니즘을 비판한다. 이들에게 사회생활은 기본적으로 자발적인(spontaneous) 것이고 사회는 자연적인 현상이라 할지라도, 이는 사회의 특수한 성격을 발견했기 때문이아니라 개인의 성격 속에 그 토대가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Durkheim, 1978b: 186). 이러한 방법론적 오류는 또 다른 중대한 실천적 결과를 야기하는 바, 경제학자들과 도덕론자들이 행하는 방식으로는 “인간이 참여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인간을 재건하는 것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과 도덕론자들은 완고한 개인주의(intransigent individualism)를 공유한다. 역사적 선례도, 사회적 환경도 없는 추상적인 자율적 개인이라는 관념은 결코 입증되지 않았고, 입증될 수 없다. 만일 인간이 본질적으로 하나의 총체, 한 개인, 그리고 이기적인 존재라면, 바스티아(C. Bastiat)가 말하듯 욕구의 만족 외에 인간이 어떤 다른 목표를 갖고 있지 않다면 사회는 자연에 대항하는 어떤 것으로,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에 위해를 가하는 폭력으로 나타난다. 사회는 개인들에 대한 전쟁 기계, 오직 편견의 힘으로 지탱되고 조만간 사 라질 운명인 야만의 잔여물이다(Durkheim, 1978b: 39-40). 이러한 맥락에서 뒤르케임은 『규칙들』 2판 서문(1901)에서 “인간 중심의 편견이 남긴 잔재들이 다른 곳처럼 과학의 길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Durkheim, 2001: 45). 뒤르케임은 도덕과학의 기획의 근저에 자리한 “실천적 관심”을 숨기지 않는다. 이는 논리적 모순이 증명되자마자 도덕적 신념을 포기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합리주의’를 그 적들로부터 방어하는 최선의 안전장치라는 것이다(Durkheim, 1993: 134).

    도덕과학의 구상이 역사비교방법론과 결합되는 계기도 여기서 만들어진다. 결국 뒤르케임의 도덕과학 역시 자연과 정신의 이원론에 기초한 선험철학의 존재론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뒤르케임이 칸트적 문법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를 ‘사회학적 칸트주의’나 ‘신칸트주의’의 아류로 특징짓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셈이다.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칸트 이후의 난제들과 잘못된 이항대립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뒤르케임의 도덕과학, 자연주의 윤리학의 기획을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사회분업론』(1893)에서도 연속성을 갖고 있는 바,33) 『사회분업론』에서의 논증은 분업과 연대의 동시적 발전이라는 자유주의의 주장을 유지하면서 분업이 어떻게 자연적 사실인 동시에 도덕적 사실일 수 있는가, 개인성과 사회성의 유기적인 발전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쟁점으로 전개된다. 뒤르케임의 관계적 도덕 실재론의 입장에서 “도덕적 성찰은 곧 기예인 동시에 과학”인 것이다(Durkheim, 1978d: 193).

    13프랑스 현재 과학철학의 논쟁 속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19세기 과학철학의 현재적 측면에 대해서는 M. Heidelberger(2010), C. Chimisso(2010)를 참고하라. 영미권 철학자들에게 프랑스 과학철학은 자율적인 것으로 이해되지 않고 있지만, 꽁트의 전통에서부터 프랑스 과학철학은 논리실증주의와 확연히 달랐다는 것이다.  14이는 “포이에르바하가 유물론자인 한 그에게는 역사가 나타나지 않으며, 그가 역사를 고찰하는한 그는 유물론자가 아니다”라는 말로 잘 알려져 있다(Marx and Engels, 1990b: 207).  15“인간이 바로 하나의 유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는 의식적 존재일 뿐이며, 다시 말해 그의 고유한 생활은 그에게 대상인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의 활동은 자유로운 활동이다.”(Marx, 2006: 93) 이는 1845년 3월 쓰여진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6번 테제를 통해 더욱 명료해진다.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본질을 인간의 본질로 용해시킨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은 각각의 개체 속에 내재하는 추상물이 아니다. 인간의 본질은 그 현실에 있어서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ensemble이다.”(Marx, 1990a: 186).  16프루동의 사회주의는 계급투쟁의 정치적 차원을 경제문제로 환원함으로써 노동자의 단결을 금지하는 경제학자들과 연합전선을 핀 것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이다. “경제학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다음 한 가지 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그것은 단결을 비난한다는 점이다. 다만 그들은 비난의 이유를 서로 다르게 낼 뿐이다.”(Marx, 1990b: 293).  17존재론적 일가성(ontological monovalence)은 존재를 현존 또는 순수한 실정성(positivity)으로 가정하는 인식론적 태도를 일컫는 것으로 바스카가 헤겔의 주어-술어 전도를 비판하며 제시하는 개념이다. 이 때 존재론적·인식론적 우연성은 가려지게 된다. 그 결과 지식의 긍정적 성격을 지나치게 강화함으로써 그 지식을 독단에 흐르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고 존재가 지식에 관한 진술로 환원되는 인식적 오류를 동반한다(Bhaskar, 1993: xvii, 377; 고창택, 2008: 6-7참조).  18즉 17세기의 고전적 경험주의의 선조인 베이컨과 로크는 버클리와 흄으로 대표되는 근대 경험주의의 전형에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베이컨은 벌의 비유를 통해 지식과 관련한 능동적인 작업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초월적 실재론의 선조라는 것이다(Collier, 2010: 115). 맑스에 따르면, 전면적 발전의 맹아를 담고 있던 베이컨의 유물론은 홉스에 이르러 일면적이 된다. 즉 “모든 인간의 지식과 관념이 감각의 세계에서 기원한다는 베이컨의 기본원리를 입증하지는 못했다. 이 원리를 입증한 것은 로크의 『인간오성론』”이었다는 것이다(Marx and Engels, 1990a: 207-208).  19여기서 맑스가 이데올로기적 방법에 대립해서 사용하는 ‘실증과학’의 용법이 분명해진다. “자립적인 철학은 현실의 서술과 더불어 그 존재 매개를 상실한다. …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가 이데올로기와 대립해서 사용하는 이 추상들 중의 몇 가지를 뽑아서, 그것들을 역사적 실례에 비추어 설명할 것이다.”(Marx and Engels, 1990b: 203. 강조는 필자)  20「셰플레에 대한 리뷰Review of Albert Schäffle, Bau und Leben des Sozialen Körpers: Erster Band」(1885)와 『독일에서 도덕에 대한 실증과학La science positive de la morale en Allemagne』(1887) 등의 저술을 통해 뒤르케임의 사회적 존재론에서 중요한 지위를 점하는 인간학의 위상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스승 중 한 명인 꿀랑주에게 헌사한 부국가박사학위논문, 「몽테스키와 루소Montesquieu and Rousseau: Forerunners of Sociology」(1892)는 뒤르케임의 초월적 실재론과 비판적 자연주의 골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저술로 『규칙들』에 못지않은 방법론적 가치를 갖고 있다. 통상 양적 방법론의 교과서로 알려진 『자살론』을 비판적 실재론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논의로는 김명희(2012), Pearce(2007)를 참고하라.  21이러한 환원주의에 대항한 부트루(E. Boutroux)의 도약은 괄목할만한 것이었다.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 시절 뒤르케임의 존경하는 스승 부트루는 한편으론 이원론의 환원주의에 대항해 물질적 요소나 생물학적 진화로 환원되거나 설명될 수 없는 이성 또는 정신의 영역이 실재한다고 주장했다. 부트루와 다른 관념론자들은 경험과학의 가정과 방법을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과의 협정을 추구하기 시작했다(Wallwork, 1972: 10). 부트루에게서 그는 상이한 수준의 현상들 간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분석수준에서 다른 분석수준으로 이행할 때 나타나는 새로운 측면들, 즉 발현(emergence)을 강조하는 과학철학에 대한 접근법을 배웠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의 정신주의-자연주의 논쟁에 대해서는 Wallwork(1972: 10-13)을 참고하라.  22뒤르케임의 맥락에서 합리주의는 인식론적 변증법과 동일한 맥락에서 사용된다. “합리주의는 주어진 사건에 대한 지식의 완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합리주의가 전제하는 유일한 것은, 과학의 진보에 제한을 가할 어떠한 것도 없다는 것이다.”(Durkheim, 1961: 265)  23“우리는 지금 비판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 이성의 재앙이 될 지적 소강” 앞에 “과학에 대한 반작용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에 따라 비판의 시기는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고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 때 도래한다”는 것이다(Durkheim, 1973: 22). 생시몽에 뒤이어 꽁트는 인류사회· 문명의 3단계가 다시 ⓛ 유기적 시기와 ② 비판의 시기로 나누어진다고 관찰하고 이론화하였다. ‘유기적 시기’는 각 단계의 개략 전반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사회의 이론적(정신적) 측면과 실제적(실천적) 측면을 비롯해 사회 여러 부문들이 유기적으로 잘 조화된 조직적 시기이다. ‘비판적 시기’는 각 단계의 개략 후반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이론적(정신적) 측면과 실제적(실천적 측면)을 비롯하여 사회조직의 각 부문의 협동과 화합이 해체되고 정신적 지도집단의 비판을 선두로하여 갈등과 비판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해체적 시기이다(서호철, 1999: 50-51; 신용하, 2012: 190-191 참조).  24Pragmatism and Sociology에서도 전통적인 이원론에 대한 반대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주체와 객체, 표상된 것과 표상, 사물과 사유의 특성은 극도로 중요하지만 기능적인 형태의 구분일뿐이고 고전적 이원론에서 표상되어왔던 것처럼 존재론적인(ontological) 것이 아닌 실용적 구분(practical distinction)을 의미한다. 오직 하나의 실재는 두 가지 구분되는 경험의 관점에서 이해된다.”(Durkheim, 1983: 42)  25이하의 논의는 R. T. Hall이 영역한 Ethics and the Sociology of Morals: The Revolution in Modern Science(1993)를 참조한다.  26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 1887년 저술의 1장 “경제학과 사회학자들”에서는 당시 ‘아카데미 사회주의자들’이라고 불렸던 멩거, 슈몰러, 바그너, 셰플레 등의 신경제학파(New Economic School)와 맨체스터 학파(Manchester School)로 불리는 세이, 바스티아 등 정통 경제학(orthodox economics)의 경제이론 및 방법론이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요아스가 적절히 지적하듯, 맑스와 엥겔스의 사유만이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 주의적인 사상적 조류들과 사회학의 초기적 기획들 역시 명백하게 정치경제학에 대한 논쟁적인 관계 속에서 생성된 것이었다. 시장경제의 효과에 어떠한 개입도 허용하지 않는 사회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와 반대로, 독일 국민경제학의 역사학파와 프랑스에서 오귀스트 꽁트의 사회학 프로그램은, 대륙 유럽에서 고전경제학의 속류화된 확산형태가 주장했던 ‘자유방임’ 원칙의 정당성을 제한하고자 하는 실용적-개혁주의적 시도를 표현하고 있었다(Joas, 2002: 83).  27따라서 뒤르케임은 문제가 제기되는 방식 자체가 “과학을 통해 경제적 삶을 규제할 수 있는 도덕적 구속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규제를 통해 이기심을 통제하고 따라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실천적 결론에 도달한다(Durkheim, 1958: 240).  28“이 제도들은 언어의 존재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언어 그 자체는 제도의 한 사례이다(Durkheim, 1982b: 248). “우리는 언어를 학습하면서 말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친 인간의 경험을 요약하고 있는 여러 가지 관념의 분류체계도 배우며 … 언어는 인간이 개념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일관성을 부여해 주며, 우리로 하여금 단순한 감각의 세계에서 넘어 설 수 있도록 해주는 점이다. 따라서 언어가 사회적이라는 것을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Durkheim, 2006: 84).  29존재의 층화를 인정하는 뒤르케임의 입장에서 이러한 “은유와 유추는 과학의 시작 지점에서 이점을 갖고 있었다.”(Durkheim, 1978a: 112) 정당한 과학 방법으로서 유추와 비유의 기능에 대해서는 조인래(2001), 이기홍(2008b)를 참조하라.  30뒤르케임의 맥락에서 관계적 사회실재론은 자연 안에 있는 사회가 관계들의 네트워크로 구축되며 집단적으로 공유된 신념과 규범을 발생시키는 하나의 전체로 존재한다는 가정에 의존한다. 이 속에서 연합된 개인들의 상호작용은 화학적 요소가 새로운 종합을 통해 결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발현적 속성을 일으킨다(Wallwork, 1972: 18). 뒤르케임의 사회적 존재론을 관계적 사회실재론으로 해석한 견해로는 한영혜(1983), 심기천(1992), 김종엽(1997), 정태석(2002), Emirbayer(1996) 등을 참고하라. 정태석이 말하듯 물상화와 자원론의 이분법은 사회실재론 대 사회명목론의 변형이며, 사회와 개인의 이분법 속에서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은 구조와 행위의 이분법으로 해석되면서 사회 구조와 개인 행위 간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결합(association)’을 핵심요소로 하는 뒤르케임의 ‘사회적 사실’이란 단순한 개인들의 총합(total sum)이 아니라 독특한 관계의 양식이며, 물화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 가능한 관계적 사실 또는 관계적 실재라고 할 수 있다(정태석, 2002: 32-40).  31『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1912)의 서론에서 뒤르케임은 추론을 감각적인 경험 자료로 환원하는 경험주의를 비판한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이성을 경험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곧 이성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성의 특징인 보편성과 필연성을 순수한 외관, 다시 말해서 환상으로 환원시키는 것인데 이러한 환상이란 실제적으로 유용할 수는 있지만 실체의 그 어느 것과도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 고전적인 경험주의는 결국 비합리주의로 귀착하게 된다. 아마도 이 비합리주의란 명칭이 그러한 환원을 지칭하는데 적합한 말일 것이다.” 반대로 수정된 “선험주의자들은, 그 명칭에 부여되고 있는 통상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더 존중한다. … 그들은 경험을 초월하고 경험에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에다 무엇을 덧붙이는 어떤 능력을 정신에게 부여해야만한다.”(Durkheim, 1992: 38) 이 경험을 넘어서서 초사실적 논증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의 능력을 뒤르케임은 “범주들의 사회적 기원”에서 찾는다(Durkheim, 1992: 39). 이것이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뒤르케임이 ‘역사’를 관찰하는 이유이다.  32뒤르케임에게 ‘이데올로기’의 용법은 사회적 사실들에 대한 과학으로 사회학의 토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들어온다(Larrain, 1980: 129). “만일 우리가 사실들이 함께 연결되어 있는 진정한 방식을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방법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Durkheim, 1982a: 168).  33이는 『사회분업론』 1판 서문에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다. “과학과 도덕을 화해시키는 것이 도덕과학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우리에게 도덕적 현실을 존중할 것을 가르침과 동시에 그것을 개선할 수단도 제공하기 때문이다.”(Durkheim, 2012: 67). 뒤르케임의 맥락에서 자연주의 윤리학은 도덕적 사실이 곧 자연적 현상의 일부이며, 과학적 연구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인식론적 관점을 지칭한다. “도덕에 대한 인간 과학이 존재한다는 것은 도덕적 사실이 결국 이성을 통해서 만 발현되는 자연적 현상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과학은 그것이 자연에, 말하자면 객관적 실재에 기초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Durkheim, 1961: 121-122). 『사회분업론』의 도덕적 실재론은 사회적 삶이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도덕적 연결 관계를 갖는다는 생각에서 잘 표현된다.

    Ⅳ. 결론 및 전망 : 자연주의 사회과학의 가능성

    이제까지 맑스와 뒤르케임의 초기 저술이 공유하고 있는 존재론, 인식론(방법론), 가치론적 전제가정들이 실증주의 과학관과 상이한 원리에 입각하고 있으며, 비판적 실재론의 관점에서 보다 풍부하게 이해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요약하면 우선 맑스와 뒤르케임의 초기/후기의 이론적 발전과정을 유물론/관념론으로 양분해왔던 기존의 통념과 달리 양자는 현실의 왜곡에 일조하고 있는 당대 철학과 정치경제학의 존재론적 가정, 즉 자연과 인간/정신, 사유와 실재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이원론적 편견을 기각한다. 또한 양자 모두 경험론과 관념론의 불가능성을 승인하는 실재론적과학관의 기본 전제들을 제시한다. 인간과 자연, 관념론과 유물론, 칸트주의(도덕론)와 공리주의(경제학)의 갈등으로 나타난, 모든 이원론적 편견을 봉합하기 위한 두 사람의 해결책은 사회적 층위를 도입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양자 모두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동일한 의미에서 과학일 수 있되, 사회적 객체가 지닌 독특한 속성을 존중하는 사회과학의 경로를 모색했다. 양자의 사회적 존재론은 비판적 실재론에 의해 체계화된 개념과 행위, 역사와 관계에 의존하는 사회적 존재의 발현적 속성에 대한 가정과 관계적 사회 패러다임을 공유한다. 아울러 사회과학의 역할이 곧 설명에 있으며 그것의 지향이 곧 해방에 있다는 가치론적 전제가정과34) 이론과 실천, 과학과기예 사이에 상정한 변증법적 관계는 비판적 실재론이 제시한 설명적 비판 이론의 기본 골격을 공유하고 있다. 이상의 연구결과는 실증주의 과학관이 부과한 ‘두 명의 맑스’, ‘두 명의 뒤르케임’;(Alexander, 1982)이라는 이른바 단절 테제를 기각하는 동시에, 사회학적 유물론과 사회학적 관념론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에 근거해 맑시즘과 사회학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를 설정하는 기존의 통념;(Therborn, 1989) 또한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말해준다. 맑스의 ‘역사유물론’과 뒤르케임의 ‘사회학’은 모두 자연 과 인간의 분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칸트 이후의 안티노미에 대한 논리적 극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바, 이 글은 양자가 오직 하나의 과학, 곧 자연주의 사회과학의 관점을 공유한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간 많은 현대 사회학자들이 맑스와 뒤르케임의 공통점을 보기보다 이론적 차이에 주목해왔던 이유는, 특정한 이론 및 인식론이 전제하고 있는 암묵적인 존재론에 대한 체계적인 무관심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인다. ‘무엇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인식론적 절차에 집중해왔던 실증주의 과학철학과 달리 비판적 실재론의 과학철학은 사회연구가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존재론적·인식론적·가치론적 전제가정에 대한 통합적인 성찰의 차원을 마련함으로써, 맑스와 뒤르케임의 사회과학방법론을 둘러싼 혼란의 원천과 양자의 기여를 새롭게 조명한다. 결론적으로 이 글이 개념화한 ‘맑스와 뒤르케임의 딜레마’는 실증주의 과학철학의 암묵적인 존재론인 경험적 실재론에서 파생된 이분법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으로, 다시 말해 실증주의 과학관의 철학적 전제 가정들 자체가 맑스와 뒤르케임의 과학방법론에 대한 타당한 해석을 차단하는 해석의 패러다임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학활동의 특성에 부합하는 메타이론에 일관되게 견인되는 맑스와 뒤르케임의 자연주의 사회과학을 다시 불러오는 작업은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과학적 탐구의 관행들에 대한 새로운 반성의 공간을 열어내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아울러 오랜 시간 서로 무관한 것으로 이해되었던 맑스와 뒤르케임 사회(과)학의 유기적인 상호 결합의 가능성은 ‘사회적인 것’에 대한 풍부한 존재론적 통찰들을 통해 실재론적 사회학을 발전시킬 자원을 제공하는 한편, 오늘날 여전히 새로운 종교로 기능하고 있는 실증주의 과학철학 및 자유방임주의의 독단에 대한 효과적인 비판을 수행할 가능성을 한국 사회(과)학에 열어주고 있다. 자연주의 사회과학의 전제 위에서 두 이 론가의 주저인 『자본론』과 『자살론』의 현재성과 공약가능성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적 고통을 진단하고 처방할 과학적 사회연구의 자원으로 치밀하게 재구성하는 작업은 이후의 과제이다.

    34“사회학의 역할은 우리를 모든 부분에서 적절히 해방”시키는 것이며, “사물과 직접적으로 접촉 해서 과학만이 줄 수 있는 태도를 이러한 질문을 향해 가정하도록 우리에게 설득함으로서 해방”시키는 것이다;(Durkheim, 2001: 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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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적 실재론과 비판적 실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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